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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Apr 15. 2021

주일 퇴근길엔 동생 생각이 난다.

벌써 작년, 겨울의 일이다.

지금은 하나의 업무가 돼버린 새벽기도 때문에 늦어도 밤 11시엔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나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난 흔히 말하는 올빼미족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글을 쓰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계는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로감에 물을 마시러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어디서 작은 소리가 나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불 꺼진 마루로 나가보니 열한 시에 잔다고 인사한 늦둥이 동생이 마루 소파에 부자연스럽게 누워있었다.

허술하게 안경까지 낀 채로 말이다.

'안 자는구나'

나도 어릴 때 몰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다 인기척이 나면 샥-하고 자는 척을 한 적이 있기에 이내 알 수 있었다.

동생에게 한소리 하려다 그래 내일부터 주말이니깐 그냥 넘겼는데 

결국 아침에 사달이 났다.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엄마랑 동생이랑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사실 자식과 부모가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은 그러고 있었다.

약속을 했으니 가야 한다는 엄마와 피곤해서 가지 않겠다는 동생.

당연히 동생의 잘못이고, 어리광이었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안 되겠다 싶어 거실로 나가 어제 못했던 잔소리까지 합쳐 혼을 냈다.

동생엔 뭐가 잠이 덜 깬 건지, 흥분을 한 건지 평소엔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고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이번엔 심상치가 않다.

나한테까지 발악 발악 소리를 치며 대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잠을 얼마 못 잔 상태였고, 평소답지 않은 동생 반응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그렇게 행동할 거면 나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씩씩대며 진짜 나간다.

복도에서도 씩씩 거리면서 소리치길래 따라나가 옷을 잡고 동생 방으로 데려가 호되게 뭐라 했다.

순간 얼마나 흥분했는지 손까지 떨렸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대꾸하더니 결국 처음 진심으로 화내는 오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동생은 결국 숨까지 헐떡거렸다.

그 순간 아차! 싶어 세수하고 엄마랑 나갔다 오던지 방에서 반성하라고 말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맞다.


손의 떨림도 계속되고, 심장도 너무 뛰어 나도 크게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 만에 이렇게 화를 낸 것인지. 아무리 동생이 잘못을 했어도 그렇게 화를 내며 혼내는 건 아니었는데.

사실 말이 혼내는 것이었지, 언어폭력적이었다.


'오빠, 나갔다 올게.'

그렇게 방에서 혼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결국 동생은 훌쩍거리면서도 인사를 하고 엄마와 함께 나갔다.

가까스로 떨림이 멈추니 이번엔 맘 너무 불편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혼낸 것만으로도 맘이 불편한데, 잘못된 방법으로 혼낸 것 같아 더욱 괴로웠다.

혼내면서 옷을 잡아당긴 게 순간순간 자꾸 떠올랐다.

하필 동생 생일선물로 사준 나이키 후드티를 입고 있었던 건 왜 기억이 나는 건지.

아까의 내 모습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게 그려졌다.


이미 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결국 무언가에 쫓기듯 씻고, 집에서 나와 동생이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매장을 검색해보니 아빠 회사 근처에 위치해있었다.

불편한 마음에 출근하신 아빠에게 연락해 점심 약속까지 잡으며 맘을 달래는 나였다.


점심을 먹으며 아빠에게 오늘 일을 설명하니 아빤 내 맘과 다르게 웃기 바쁘셨다.

괜찮다고, 너도 그랬고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이미 동생은 괜찮을 거라고.

일단 밥부터 맛있게 먹으라고 오랜만에 아들과 단 둘이 먹는 식사가 좋으셨는지 연신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옷을 사러 가는데 

아빤 이제 일도 안 하는데 무슨 돈이 있냐며 카드를 주려고 하셨지만 

이번만큼은 내 돈으로 결제해야만 할 것 같아 끝내 거절했다.

매장으로 가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모델이 있는지. 너무 내 취향은 아닌지 옷을 한참을 골랐다.

매장 직원에게 물어 물어 괜찮은 후드 집업을 골랐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요즘 중학생이 이렇게 비싼 옷을 입는다고?'

내 생각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이었기에 매장을 둘러보며 다른 상품도 찾아봤지만, 처음 봤던 후드 집업보다 괜찮은 옷은 없었다.

더 이상 고민해도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기에 겨울 코트를 사려 모아둔 돈으로 시원하게 결제했다.


집에 와서도 어떻게 사과를 하고 어떻게 달래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엄마와 동생이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 앉아서 어 왔어? 하는데 동생의 신난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달고나 커피 사 왔어! 커피 마셔!

난 이렇게 괴로웠는데 동생은 이미 다 잊었고 신나게 친구들과 놀고 왔다고 한다. 

역시 아빠는 정확했다.


어떻게 하지? 그냥 넘어가고 옷은 환불해?

아니지. 내 맘은 그게 아니었다.

방으로 동생을 불렀더니 그제야 동생도 아직 심각한 건가? 쭈뼛쭈뼛 방으로 들어온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길래 내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동생도 이미 자신이 잘못한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사춘기를 겪는 누구나처럼 괜한 자존심과 고집에 사과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그랬고, 사춘기 누구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말을 많이 준비했는데 막상 동생에게 말하자니 또 훈계가 되는 것 같아 말을 최대한 아꼈다.


너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오빠도 그렇게 널 혼내면 안 됐어. 
오빠도 사과할게. 미안해. 이건 오빠가 미안해서 아까 잠깐 나가서 옷 하나 샀어. 크리스마스 선물이기도 해.
혹시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가서 엄마한테 사과는 드려.


동생은 당황을 했는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나가서 한 번 입어봐.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더니 엄마한테 안겨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뭘 또 잘못한 걸까?


'엄마. 나 잘못했는데, 오빠가 선물을, 엄마, 엄마 미안해.'

훌쩍이며 말해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동생이었다.


난 내 행동에 대한 사과를 했을 뿐이다.

동생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보단 내 마음이 불편하여 사과를 하고 싶었고 망설였지만 사과를 한 것뿐이었다. 

얼마나 무서웠겠나.

16살 차이 나는 오빠가 훈계한답시고 소리 지르며 나가라고 몸으로 밀쳤으니.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해선 안될 행동이었기에 조금 일찍 어른이 된 오빠로서 늦지 않게 사과를 한 것뿐이었다.

이 사과가 동생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진 잘 모르겠다.

다만, 아침에 발악 발악 화를 내며 혼냈을 때보단 나도, 동생도 느끼는 것이 많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가면 풀리기도 하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갔다면 누군들 마음이 편했겠나.

잘못을 하면 어른으로서, 오빠로서 좀 더 올바르게 성숙할 수 있도록 혼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훈육이 되어야지. 어떠한 방식으로든 폭력으로 다가간다면 

그건 이상 훈육의 의미만 담고 있지 않게 된다.


비싼 옷을 사주며 무마하려는 것이 아닌 내 잘못을 알고, 미안함을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전달하는 것.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많은 것이 서투른 서른 살 오빠였기에,

그래도 어른이기에 늦지 않게 사과하며 진심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엄마도 무슨 돈이 있냐며. 옷값을 주겠다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사고 싶은 코트를 사지 못해 작년 겨울은 또 역시나 패딩을 입고 버텼다.

하지만 맘에 들었는지 겨울 내내 사준 후드 집업을 꾸준히 입은 동생 모습을 보니 맘은 항상 따뜻했다.


어느덧 겨울도 다 가고, 완연한 봄을 제주에서 홀로 맞고 있다.

이 외딴섬에서 주일마다 아이들을 만나 말씀을 전하고 퇴근하는 길이면 어김없이 항상 동생 생각이 난다.

어느덧 동생도 가족보다 친구가 더 의지되고, 친구와 말이 잘 통하는 나이가 됐다.

그런 나이임을 알기에 항상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동생에게 전화 한 번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도 오빠고, 또 더 간절한 것은 제주에 사는 오빠니 가끔 전화해 먹고 싶은 것 없냐, 갖고 싶은 것 없냐 물어보곤 한다.

항상 괜찮다고 하는 동생이지만 무언갈 사주면 넙죽넙죽 잘 받는다.

가끔은 오빠한테 전화도 해주지. 섭섭하기도 하지만 나이답게 커가고 있는 같아 한편으론 안심이 되는 서투른 오빠의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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