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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출판사아저씨 Oct 29. 2017

[일상이야기] 영업사원의 추억

아날로그 영업에서 디지털 영업으로


데프콘(Defcon)은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의 영문 약자로 대북 전투 준비 태세를 뜻한다. 북한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는 대북 정보 감시 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 상태의 분석 결과에 따라 '정규전'에 대비해 전군에 내려지는 전투 준비 태세이다. 1∼5단계로 나눠져 있고 숫자가 낮을수록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데프콘의 발령 권한은 한미 연합 사령관에게 있으며 우리나라는 평상시 `4'인 상태가 유지된다. `3'으로 올라가면서부터 한국군이 갖고 있던 작전권이 한미 연합사 측으로 넘어가게 되며 전후방 부대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데프콘 3'이 되면 전군의 휴가, 외출이 금지되며 `데프콘 2'가 되면 탄약이 개인에게 지급되고 부대 편제 인원이 100%로 충원되며 `데프콘 1'이 되면 동원령이 선포되고 전시로 돌입하게 된다.     



데프콘 5 : 전쟁 위험이 없는 상태이다. 데프콘 4 :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경우로, 53년 정전이래 우리나라는 이 상태이다. 데프콘 3 : 전 군의 휴가 외출이 금지된다. 데프콘 2 : 휴가 외박 장병들의 전원 복귀로 부대 편제 인원이 100% 충원되고 장병들에게 실탄이 지급된다. 데프콘 1 : 동원령이 선포되는 전시 상황.     

[네이버 지식백과] 데프콘 [Defense Readiness Condition]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2011., 국방기술품질원)     



아침 9시 출근해서 저녁 6시 퇴근할 때까지. 우리 근로자들은 항상 바쁘다. 아니 바빠야만 한다. 바쁘지 않은 자는 바로 잉여인력으로 판단되어 회사에서 버림을 받을 수 있기에 무조건 바쁘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안 바쁜 적이 없었다. 단 하루도 제외하지 않고 바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동료들에게 이 회사는 매일 데프콘 1단계 상황이라고 말하곤 했다. 매일매일 실제 전시 상황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한 동안은 우리 회사만 그런 줄 알았다. 다른 회사는 바쁠 때만 바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유롭게 휴가 가고, 삼삼오오 수다도 떠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회사에 일하느냐에 상관없이 모두 항상 바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영업사원으로 10년간 일했다. 내가 처음 영업을 배울 때는 빌딩타기, 구둣발 영업 등으로 불리는 발바닥 영업이 대세였다. 전화 또는 온라인 상담보다 직접 현장에 나가고 직접 사업장을 방문하여 상품을 제안하고 판매를 하는 것이었다. 방문 과정 중에 당하는 거절이나 봉변은 퇴근 후 술안주가 되기에 충분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 간에 경쟁심보다는 서로 고생한다는 연민의 정이 더 강했다. 


그렇게 영업을 배우고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영업 채널의 변화는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물론 스마트폰 이전에도 온라인 영업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이 그 정점을 찍었다. 사회적인 변혁을 예상하고 그에 걸맞은 영업 채널의 다양함을 추구했으면 좋았겠지만 솔직히 그 당시에는 과거의 타성에 찌들어 다가오는 큰 미래의 파도를 거부하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그 거부의 힘이 새로운 힘을 물리칠 수도 있다는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새로운 물결은 한 동안 저항의 시기를 거치지만 결국에는 시대를 바꾸고 사회를 바꾼다. 



결국 나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변변치 않은 영업 실력이었지만 몇 년간의 영업 경험을 버리기에 너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 발바닥 영업은 별로 의미가 없어졌다. 대부분 기업은 보안시스템을 갖추어 외부자들이 함부로 건물에 입장하지 못하게 가로막았고, 그 외 어디를 방문하던 잡상인 수준으로 밖에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겨우 허락을 받아 입장하여도 만나는 사람 모두 항상 바빴다. 아니, 바빠야만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곳곳에 설치된 CCTV는 근로자들의 자율성을 제한하였고, 허투루 일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봐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당연히 미팅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긴 시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의식에는 사람을 만나서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 의논한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검색으로 모든 정보를 한눈에 파악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앞에서 이것을 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영업 사원은 성가시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 오프라인 영업은 온라인 영업에 비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오프라인 영업을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개인의 시간이 생길 여지가 크다. 상대방과의 미팅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 미팅과 미팅 중간에 남는 시간 등이 항상 생긴다. 그래서 개인적 용무를 처리하기가 수월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바뀌었다. 오프라인 영업 차량 또는 영업 사원 휴대전화에 GPS를 매달아 일거수일투족 파악이 가능하 졌고, 근본적으로 오프라인 영업 자체가 많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개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급한 것은 영상통화 또는 휴대전화로 촬영한 물건들을 서로 보고 이야기 나누며 실제 상품을 택배로 배달하고 끝나고 만다. 그래서 영업사원이 굳이 발바닥에 땀나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오프라인 영업 조직 자체를 줄이는 회사도 많아지고 있다.     



회사는 당연히 효율을 추구하며, 일하는 근로자에게도 일하는 시간 동안 오직 회사를 위해 일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 도중 여유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가롭게 커피나 마시면서 일하려고 한다면 보따리 싸서 집에 가라는 꾸지람이 돌아올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어느 직원이 자신의 업무가 끝났다고 자유롭게 다른 개인 용무를 처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신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빨리 끝냈다는 죄로 다른 직원의 업무까지 떠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영업사원으로 일을 한 게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10년간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처음 영업을 배우고 실력을 연마하던 시절의 낭만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매일매일 데프콘 1단계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매일 데프콘 1단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로 누적은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매일 전시상황을 강요받고 극심한 긴장 속에 생활하는 우리에게 인생의 희열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영업사원이 그립다.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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