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임을 증명한다는 것
#본인인증
2024년 현재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인증을 한다. 주로 휴대폰 번호나 네이버, 카카오, 토스 같은 인증사업자(서비스)를 통해서 한다. 그런데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이 이 방법이 맞는 것일까? (가능은 한 것일까?)
내가 나임을 증명한다는 것..
그럼 "나"는 누구인가? 고등학교 때 논술을 준비하며 논리학을 배운 적이 있다. 사물이나 현상을 정의하는 방법에는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무엇이냐를 정의할 때, 연역적으로 보자면 고양이의 기본 속성을 정의해 놓고 그 범주 안에 들어가면 '고양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귀납적으로 보자면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들이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온전히 있다면 그건 고양이가 맞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런데 만약에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고양이가 반만 있다면 그건 고양이 일까? 비슷한 맥락으로 고양이 머리만 있던지 고양이 발만 있으면 그걸 고양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은행 화폐 교환 기준을 보면 남아있는 면적이 원래 크기의 3/4 이상인 경우는 전액 교환, 2/5 이상 3/4 미만인 경우는 반액 교환, 2/5 미만인 경우는 무효로 처리한다.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고양이도 전체 몸의 3/4 이상 붙어있으면 온전한 '고양이'이고 2/5 미만만 남아있으면 고양이가 아닌 걸까?
법적으로 보자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여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순간부터 사망하여 사망제적 될까지의 기간을 자연인으로 하나의 동일한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본인인증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 범주 안에 있는 것이고. 그런데 중간에 한정치산이나 금치산자가 되어 나 스스로 나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럼 그건 내가 아닌 걸까?
조금 더 들어가 보자면, 어디까지가 "나"일까를 생각해 본다. ****년 **월 **일 생, 부모님 @@@, ### 슬하의 몇 째, 본적 어디, 출생지 어디, 국적 어느 나라, 이름 뭐, 성별 남여XY.. 이것이 나를, 그게 나임을 증명해 줄 수 있을까?
생각과 정신, 마음이라는 게 있다. 나의 육체적 실체와 더불어 나의 생각과 정신, 마음이 있다. 그런데 치매 같은 것에 걸려 이 생각과 정신, 마음을 잃게 된다면 그게 나일까? 비슷하게 코마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의 된다면 그게 나일까?
예전에 듣기로 인간의 세포는 몇 년을 주기로 완전히 재생된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10년 전의 내 몸의 모든 세포는 10년 후인 현재 시점에 모두 재생되어 바뀐 세포라고 한다면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한 인물로 볼 수 있을까? 동일한 인물로 본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기억이나 정신, 마음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보통 영유아기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나도 유치원 정도부터 기억이 나고 그 전의 경험, 기억은 사진이나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반추해 볼 뿐이다. 그런데 신생아들도 보면 반응을 한다. 울고 웃고 부모와 어떤 형태로든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과 마음, 정신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아이의 무의식에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뭔가 연구 결과가 있을 것 같긴 하다.)
현재 시점으로 보자면, AI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만약에 내 기억과 마음, 정신을 완전히 복제하여 AI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게 "나"일까?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알쓸신잡에 나왔던 경희대 김상욱 과학자가 나온 적이 있다.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주에 있는 무기물들이 모여 잠깐 유기물로 존재하는 기간입니다.'
기적적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무기물들이 잠깐 모여 유기물을 이루고 다시 무기물로 변하여 우주의 성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유기물로 존재하는 기간이 기적과 같은 순간이라고.
노무현 대통령도 죽기 전에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나라는 존재도 결국은 우주에 보편적으로 편제되어 있는 여러 물질들이 잠시 집합체를 이루었다가 다시 우주의 성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의 정신, 마음, 존재의 기억은 남을 수가 있다.
기수 아이유가 '마음'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2015년에 나온 곡인데 1993년생 아이유가 22살 때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는지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법적인 자연인으로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실체적 진실로써 나는 누구이고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살아 있는 순간들을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잘만 한다면 나의 정신, 생각, 마음은 여러 가지 형태로 세상에 혹은 후대에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육신은 비록 늙고 병들어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사랑을 나누고 죽어서는 좋은 유산을 남기고 싶다. 단순히 재산적인 유산뿐만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어떤 정신이나 마음을 남기고 싶다. 언젠가는 지구, 우주도 멸망하고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만 내 마음과 정신은 가능하다면 좋은 형태로 남기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