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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뱡인 Aug 12. 2023

나의 구속기 (8)

8. 각양각색 변호사

다음 기억은 저녁이었고, 언니가 동생과 나가서 Steak‘d Shake이라는 체인에서 저녁을 먹고 내가 먹을 것을 싸왔다. 나중에 들으니 이 날 여기서 먹었던 스테이크 샌드위치가 언니의 뇌리에 박힐 정도로 맛있었단다. 나 없이 동생이 언니를 데려가 프렌치프라이, 음료 척척 시켜서 맛난 걸 먹을 정도로 잘 적응했고 언니도 나를 하염없이 딱해하며 미음을 끓여대며 발만 동동 구르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내 맘을 편하게 했다. 언니가 서울에서 번개같이 날아와서 기적같이 내 눈 앞에 있지만 극심한 피로로 간단한 정황 이야기 외에는 더 할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형사 변호사도 찾아가 앞으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가정법 변호사도 찾아야 할 것 같고, 할 일이 많았지만 일단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언니와 동생과 셋이 모였으니 오늘만은 마음 놓고 쉬자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우선 부서의 Director에게 전화해 비밀로 해달라 간곡히 부탁하며 간단히 이런 일이 있었고 변호사도 찾아가 정리하고 앞으로의 향방도 결정할 것들이 많아 몇일만 더 휴가를 내겠다 전했다. 그러라고 하며 이해해 주는 그녀에게 무한한 감사가 느껴지면서 이 와중에 출근 안 한다는 해방감에 금세 기분이 풀렸다. 곧바로 구글과 엘로우페이지를 뒤져 근처에 형법변호사를 찾았고 바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지 않는 변호사를 찾아 약속을 잡았다. 당장 그날 약속을 잡고 가보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허름한 1층짜리 상가에 자리한 미국인 변호사였다. 비서 책상이 있었지만 그가 나를 맞이했고 그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서류들이 내 눈엔 마구잡이로 그의 눈엔 아마 나름의 규칙대로 놓여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상황 설명을 늘어놓고선 나는 당장 이 기록을 없애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의 이런 성질 급한 요구가 이해가 된 건지 아닌 건지 나로선 잘 모르겠는 표정을 하고 그는 우선 Arlington Heights와 State of Illinois에 기록을 확인한 후 expunge 하는 신청서를 넣어야 한다며 기간은 6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우선 retainer를 요구했다. 엄청난 비용은 아니었지만 나의 현금을 이런 쓰레기 같은 일로 낭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 후 멀지 않은 옆 동네에 한인 이혼전문 여성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녀의 사무실은 그럴싸한 빌딩에 위치해 있었고 변호사도 여럿 모여있는 법무법인스러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첫 상담도 $300을 지불해야 나와 만나주는 값비싼 변호사였다. 또 한 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합의와 소송이 있다는 이야기와 별거와 이혼의 법적인 차이를 들었고 이혼의 절차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들었지만 우선 같이 우리의 향방을 의논한 바가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합의를 하게 될 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자산의 분할은 우선 이혼 소송이 들어가면 둘 중 한 명이 일방적으로 빼돌리는 자산은 법정의 도움으로 추적 가능하며 추적 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혼 소송이 들어가기 전에는 최대한 함부로 자산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싸움을 일으키지 않고 합의하기에 좋을 것이라는 흔히들 일반적으로 아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앞으로 공동 자산과 공동 비용을 관리할지 의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듯한 기분에 우선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가를 하니 또 한 번의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편함을 열자 공식으로 접수된 나의 체포 기록을 금세 열람하고선 법정분쟁의 냄새를 맡은 변호사들이 온갖 PR과 마케팅 자료들을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중 눈에 띄는 노란 엽서를 뒤집어보니, 나의 이름, 정면 머그샷과 구형, 그래도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몇 숫자는 가려놓은 내 생년월일이 당당히 엽서 형태로 프린트되어 온 것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만에 하나 잘못 배달되어 이웃에게 가거나 이 우편배달원이 날 알아보면 어쩌라고 그거 편지봉투 얼마나 한다고 이런 식으로 인권을 침해하는지 억울하면서 맘이 아팠다. 고여오는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손으로 그 엽서를 찢으려다 이건 어딘가에 컴플레인을 걸어서 다시는 이런 침해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들어 일기장 사이에 고이 모셔두었다… 훗날 이 엽서는 두고두고 상처가 되어 그와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지만 일단은 모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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