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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28. 2023

서서히 괜찮아지는 중이니까

이예준 [ 내 생에 아름다운 ]

엊그제 새벽이었다.

심상치 않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새벽의 고요함을 깨웠다.

쿵쾅거리며 뛰어오르는 다급한 발걸음, 시끄러운 소음, 철문을 쾅쾅 두드리며 다급해진 손놀림.


‘아, 하필… 정신없이 할 일도 많은데…’

순간적으로 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생각의 끝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과 사를 오가는 그 사람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잠시 마음에 눌러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다급하게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플레이리스트를 눌렀다. 불안하면 찾아오는 내 안의 경고음과 함께 어느 곡이든 재빠르게 귓속으로 흘러 들어와 채워주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여보세요, 119입니다. 환자 분, 이미 심정지 상태입니다.
가망이 없어요. 그래도 심폐소생술 계속 진행할까요..."


"… 아… 아닙니다."


미친 듯이 운전해 가면서, 너무나도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통화 속 그에게 건넨 나의 한 마디였다.

나보다 더 당황한 시설장의 다급함을 듣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중임에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 구급대원의 요구에 너무나도 차분하게 나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는 나에게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번복하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진행해 달라고….


생과 사의 선택에 대한 온전한 책임. 몇 개월 간의 피말리던 매 순간, 모든 선택지는 내 손에 들려져 하루에도 몇 번씩 결정을 요구했다. 포기도, 실낱같은 희망의 외침도. 결국은 내가 내리고 책임지는 결정….

왜 하필 나여야 하며, 그게 왜 아버지의 삶에 대한 결정이어야 했을까.

계속해서 내 삶을 따라다니며 죄책감이 되어 버린 선택들...

지극히도 그는 자신의 일에 매뉴얼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겠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온전한 내 책임으로 둔 채….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미친 듯 뛰는 나를 보며, 걱정을 참 많이 해주던 사람…

‘슬픔을 겪으면 아주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지나 보내야 해...’

그가 내게 몇 번이고 말했다. 내게 다가와 진심을 다해 전해 준 따스한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몇 번이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그렇게 괜찮지 못했다. 무엇이 괜찮은 건지, 무엇이 괜찮지 않은 건지 무감정의 상태인 나를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가 말한 그 애도의 시간은 내겐 충분치 않았다. 감정을 내려놓은 채, 나는 무신경 속에 살아내고 있었다.

똑같은 일상, 그리고 반복되는 일. 바빠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몸이 바빠진 만큼 생각을 해야 할 여유는 없어지니까, 오히려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날, 툭--- 그에게서 이 곡이 메세지로 도착해 있었다. 음악에 위로를 받는 나를 너무 잘 알던 그가 마음을 음악으로 전해준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속 깊은 곳까지 힘을 다해 울었다. 속이 시원해지도록,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그 누구도 이젠 곁에 함께 없지만 그날의 기억이, 그날의 감정이, 잔잔한 위로가 되어, 혼자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해주곤 한다. 마음이 가끔 울적해진 날이면 그날의 위로로 잘 살아내기 위해 플레이리스트에서 꺼내 듣는다. 잘 살아내고 있다며 나를 위로할 사람은 온전히 이해할 나뿐이니까…


Today Playlist.

이예준, '내 생에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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