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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01. 2024

여전한 네 살.

최유리 [ 숲 ]

꽃들이 빼곰- 얼굴을 드러내며 봄의 향기를 풍겨내는 계절이 왔다.

마스크 사이로 반달모양의 눈웃음을 치며 고사리 손을 흔들고 잔디 위를 아이들 몇 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안녕~ " 인사를 했더니 "나도 있는데~" 라며 또박또박 자기를 알리는 까까머리 꼬마.

몇 살이냐 물으니 하나, 둘, 세엣--넷 손가락을 피며 네 살이란다.


네 살.
딱 그 나이였지.


춘삼월의 끝. 그리고 다가온 사월의 새벽.

몸살을 앓고, 며칠을 앓고 나면 금세 괜찮아지곤 하는 연중행사 같은 기간.

벌써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걸, 오래... 지났음에도 너는 여전히 그 나이다.


나의 귀염둥이들은 노란 가방을 양 어깨에 메고,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은 채, 어린이집을 향해 가곤 했었다.

학교에 늦게 가는 날 딱 한 번 본모습이지만, 내게는 꽉 껴앉고 늘 콕- 깨물어주고 싶은 정말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자기 몸집보다도 거대한 가방을 메고 인사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뭘 그리 즐겁게 어린이집을 가던지, 너무 신나게 가는 뒷모습에 질투도 났었다.


봄에는 길에 핀 꽃을 보며 '이게 뭘까..'라며 하나하나 살피며 산책을 하고, 여름이면 머리통만 한 수박을 쫘악- 갈라 입으로 한 입씩 베어 물고 뚝뚝 떨어지는 수박물을 보며 웃겨서 그만— 배꼽을 잡고 웃어댔었다. 집에서 쿨쿨 잠자다가 바깥에서 웃는 소리를 들으면 쪼르르 뛰어나와 품에 꼭 안기던 아이. 서투른 손길로 양갈래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고 소꿉놀이를 같이 하면 '이게 뭐양', '저게 뭐양'하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묻고, 하굣길에 두 손에 꼭 담아 작은 병아리 한 마리 사서 들고 갔더니 쪼그마한 손으로 병아리를 쓰다듬고는 '예쁘다, 예쁘다' 하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웠다.


아침만 해도 그냥 그런 평범한 하루였는데.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머리맡에서 "죽었어. 죽었어..." 중얼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뚝뚝 떨어지는 눈물. 그렇게 나의 소중한 아이와 나는 영원한 이별을 했다. 잠든 척, 못 들은 척…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눈물에 막혀 내뱉지 못한 그 말이 고스란히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되고야 말았다. 어린 마음에 처음 마주친 이별의 아픔이었고, 죽음에 대한 충격이었다.

하염없이 소리 없이, 그렇게 밤새 울었다.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꺼억 소리 하나도 내지 못했다. 그냥 흐느끼며 온전히 소리를 감추어버렸다.


찰나였지만, 꿈을 꾸었다.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며,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밤이 새도록, 새벽이 와도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깜짝 놀라 깨다 다시 잠들면, 거대한 풀 숲을 헤집고 다녔다.

풀 사이를 구석구석 헤매며 땅을 헤집고 찾아 돌아다녔다.
지금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찾으면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작고 귀여운 아이가...


그때부터였을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

늘 내가 먼저 좋아하지만 이별할까 두려운 감정이 먼저 떠올라 좋아해도 많은 감정 표현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올해는 유독 심하게 아프고, 3월부터 길고 길게 아파하는 것이... 이젠 온전히 벗어날 때가 왔는가 싶다.

꽤나 오래 앓고, 오래 지속된 것들로부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내릴 때마다 벚꽃 사이로 눈을 감고 떨어지는 흔적을 느끼며, 사월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바란다.


어린 나의 꼬마여, 흩날리는 벚꽃에 기대어.

나는 여전히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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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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