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일본의 초등학교는 다 수영장이 있다고 말하면 놀란다. 항상 더운 나라도 아니고 우리랑 위도도 비슷한 4계절이 있는 나라인데도 수영장이 초등학교마다 있다. 초등학교보다는 덜하지만 상당수의 중고등학교도 수영장이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만 보더라도 초등학교에 수영장 있는 학교가 하나도 없다. 너무 편차가 심하지 않은가? 일본이 우리보다 조금 더 잘살기는 하지만 우리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나라인데 말이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생존수영 교육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1955년에 수학여행을 위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태운 시운마루호 여객선이 화물선과 충돌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왔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불행에 아이들이 놓이게 하지 말자는 사회적 변화였다.
우리를 돌아본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생존수영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 뒤로 새로 짓는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건설된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없다. 지금도 교육 보고서에는 초등 3학년 대상 전원 100% 생존 수영교육 실시라는 성공적인 수치가 보일 뿐 실상은 총 10시간에 생존수영 4시간, 기초영법 수강 6시간이 전부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알뿐이다. 사업 완수의 성공적인 보고서를 위해서는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얼마나 아이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시간인지는 알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아직도 세월호 배지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사회의 큰 충격을 준 일이었는데 일상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냐, 모든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난 과도한 진영논리의 정치싸움으로 변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큰 사고가 있어도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는 없다. 진영 싸움은 무상교복, 고교 의무교육 등 자신의 표를 위한 새로운 이슈만 제기할 뿐 과거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 없다.
이번 법무장관 임명 과정도 마찬가지다. 잘잘못을 따지는 과정이 되어 사회가 진일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결국 진영 싸움으로 변질되어 사회가 한 번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결국 목소리 큰 현재 권력과 기성세대가 항상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2030 세대의 아픔을 팔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각자 자신의 정략을 위해 말끝마다 세월호 이야기하면서 그 후 교육 변화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듯이 말이다.
대체 그게 싸울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