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있다는 착각
수십 년 만에 구도심에 자주 가고 있다.
약속도 출근도 미팅도 아닌, 순수한 배움을 위한 취미 수업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록들 없이 혼자 가는 도시 나들이인 데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수업이라서 1시간 걸리는 거리도 트램펄린 몇 번 뛰면 순간이동 하는 것 같다.
수업을 듣는 곳은 오래된 지역의 큰 건물이어서 다양한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각종 성인 대상 학원, 스포츠센터, 사무실, 식당들이 일관성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건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안전제일주의자로서 불안정해 보이는 환경에 신경이 쓰였겠지만, 마음이 들뜬 나는 목적지만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엘베에 올라 퇴근 전 마지막 업무 문서에 엔터키 치듯 층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나보다 먼저 타신 어르신들이 머뭇거리시며 층 버튼을 가장 나중에 누르신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범상치 않네. 할아버지들은 사무실에서는 입을 것 같지 않는 원색의 양복을 쫙 빼입고 멋쟁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셨고, 할머니들은 드레스에 가까운 원피스와 구두도 신으셨다.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엘베에서는 검정 레이스 원피스와 깃털 달린 모자를 쓰신 할머니가 천 원짜리가 가득 든 가방에서 지폐를 꺼내 일일이 세는 장면도 보았다. 천 원짜리가 왜 저렇게 많이 필요하신 걸까.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가족형태가 많은 주거지역에 살고 있어서인지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생소한 그룹이었다. 너무 궁금해서 학원에 두 번째 간 날 그분들이 누르는 층에 뭐가 있나 자세히 살펴보니 콜라텍이었다. 심지어 한 층 전체가.
언제 적 콜라텍인가.
수십 년 전에 청소년들이 콜라 마시면서 춤추던 콜라텍이었는데 요즘은 어르신들의 사교장소인 모양이다. 찾아보니 입장료가 천 원이라고. 그래서 천 원짜리가 많았구나.
잠깐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실 내가 듣는 수업에는 그 어르신들보다는 조금 젊지만 비슷한 나이의 어른들이 계신다.
이번 수업을 신청하며 내가 최연장자이면 어쩌지 했는데 이 분들이 계셨고, 심지어 내가 이 분들 사이에서 어린이 취급받으며 귀엽게 다니고 있다. 배우려고 하시는 자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더 비교가 되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학원 수업 이야기와 함께 콜라텍 이야기를 했더니 범생의 대명사 남편이 그랬다.
"왜 그래. 그분들도 인생을 즐기고 있는 거야"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열심히 무엇인가 배우려는 분들도, 한껏 꾸미고 춤추러 나온 분들도 수십 년을 열심히 살아내고 이제 즐기고 계신 것인데.
스스로 나는, 뭔가 배우러 온 사람들만 바람직하다는 정답을 정해놓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춤추러 나오면 좀 어떤가.
이제 좀 즐거울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