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4 소화기내과로 입원
남편은 응급실에 온 이후로 점점 더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땀을 계속 흘리고 있어서 그런지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다.
병원오기 전에 농담 삼아 ‘병원 올 때는 두 발로 와도 나갈 땐 네발로 나간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너무 후회가 됐다. 애써 부정했지만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소화기내과 교수님을 뵐 수 있었다. 소화기계 쪽에선 유명하신 교수님인데도 남편의 CT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갸웃하셨다.
대장 쪽을 보는 외과교수님도 함께 오셨는데 두 분이서 고개를 갸웃갸웃하시며 작년 CT와 연신 비교를 하셨다. 그러면서 소화기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작년만 해도 이렇게 깨끗한데.. 1년 만에 CT가 왜 이렇게 된 거지? 근데 피검사가 기분이 나쁘다.. 엄청 기분이 나빠..‘라고 하셨다. 그땐 ‘뭐가 기분 나쁜 거지?‘ 했는데 연륜은 무시 못한다고 교수님께서 뭔가 촉이란 게 왔었나 보다.
일단 교수님은 원인파악을 위해 응급실에서 위내시경과 십이지장내시경을 시행하자 하셨다. (대장은 장청소를 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십이지장까지만 하는 걸로..)
참고로 응급실에서 하는 내시경은 수면마취를 하지 않는다^^…
남편은 내시경실에서 검사(검사라 읽고 고문이라 부른다)를 받고 나왔지만 결과는 깨끗했다.
입원 후 얼마 안 있어서 복부 CT판독도 나왔다. 판독상에는 [직장의 림프종 또는 암]이라 나왔고 남편이 암이라는 것을 처음 인지 한 순간이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남편옆에는 시어른들이 계시고 나는 집에서 친정엄마와 입원물품을 싸고 있었는데 듣자마자 엄마랑 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때생각만 하면 눈물부터 난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우리 재이가 아직 9개월밖에 안 됐는데? 앞으로 우리 식구는 어떻게 살지? 보험은 뭐가 있지? 우리 남편 너무 불쌍하다.. 그래도 재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들이 얽히고섥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는 남편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시어른들께 재이를 맡기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것 같다. 환자옆에서는 울면 안 되니까. 보호자가 단단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하지만 병실에서 남편을 마주했을 땐 또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남편은 계속 땀을 흘리느라 약간 몽롱해 보였는데 복부 CT판독을 얘기해 줘도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열심히 모은 돈 320만 원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이 사람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그때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은 ‘암이구나.. 나는 죽는구나.. 우리 재이는 어떡하지? 아내가 혼자 재이를 키워야 하나? 아내가 재혼하려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며 이젠 괜찮으니 자기가 준 돈 다시 돌려달라고 울며 웃으며 얘기했다.
그때는 그날 이야기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 했다. 이런 사소한 일상이, 대화가 이제는 너무 소중하다.
나는 남편이 배를 타고 있는 동안 독박육아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재이가 너무 이쁜데 하루하루가 너무 고단하여 남편이 미운적도 있었다.
나만 남겨두고 배를 타고 있는 남편은 나만큼 힘들지 않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다.
근데 이젠 남편이 불쌍하다.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고 열심히 배 타고 내려서 재이랑 매일 놀 생각에 부풀어 있었을 텐데.. 암진단을 받고 누워있다니..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불쌍한 내 남편, 그래도 다행이다. 결혼하고 암에 걸려서.. 이렇게 내가 옆에 있어 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