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내 기준에서 악이라 여긴 것들의 진실

포장하지 않아도 안전해

by 꿈을 지키는 등대

내 기준에서 악이란,


함부로 대하는 언행과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것에 대한 비방과 비판 그리고 정죄이다.

이러한 악인이 되지 않으려 하다보니 어느새 내 삶에 경계가 무너졌다.

그래서 나 라는 사람은 당연히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진실과 받아들임과 이해는 기본반응이 되었다.

그로인해 나에 대한 상대들의 존중과 진실의 반응과 받아들임은 방임되었다.나는 그것들이 없이도 모든 것을 품어야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진짜 악은 비판과 정죄가 아니라

내가 사라지도록 방임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존재와 가치관과 신념을 분명히 드러내시며 사랑으로 사셨다.


하지만 나는 가치관과 신념을 사랑으로 포장하며 너를 위한 사랑만 드러날 수 있을거라 여기며 살아왔음을 본다.


더군다나 나는 사람이다.


삶의 순간들과 상황, 그리고 관계 안에서 나로 살아가며 살아남기 위해 나를 지키고 지탱하게 한 가치관과 신념과 욕구들이 있다.

그것들이 정말 내 삶의 보석으로 나다운 삶의 빛이 되는 도구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되어 준다.

그렇지 못한 가운데서의 가치관과 신념과 욕구들은 나의 연약함이 절실이 드러나 나도 너도 넘어지고 상처나고 아프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기준과 잣대가 됨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그 기준을 분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니 하는거다!"

라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방패이고 창이다.


신이 하라고 했는데 그의 창조물인 인간이 어찌하랴?


자신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합당한 이유와 원인이 되어 지켜주는 방패가 되고, 상대에게는 더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던지는 창이 될 수 있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표현이다.

이 순간에도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의 기준과 잣대이다.


하나님의 뜻인지 간절히 분별하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그러한 표현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내 선택을 하나님으로 포장해

내 책임을 피하려는 방어일 수 있다.

포장만 할 줄 알지 돌보지 못하는 연약함일 수 있다.

나를 직면하기가 두려워 숨는 것에 익숙한 사람일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교육의 중심, 강남의 한 교육기관에서 근무할 때이다.

쉼 없는 강의와 코칭과 티칭으로 지쳐 작정하여 쉬었다. 하지만 한 달 즈음 지나자 스스로 불안하기 시작했다.


다시 일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에 기도의 자리를 지켰지만 그 자리에서 조차 이력서의 스팩 조정과 내용으로 내 영혼은 온통 새직장에 대한 계획 뿐 이였다.

그렇게 자리만 지킨 기도로 포장 된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고 돌아온 면접 제의를 당연 기도의 응답으로 여겼다.

면접에서 만난 대표와 1시간이 넘는 면접은 모두 흡족해 했다.

"강사님이 너무 맘에 들어요. 처음 뵙는 분에게 이런 속 이야기까지 한 건 처음이네요!"

가족 여행 계획이 있어 1달 후 부터 출근이 가능함에도 흔쾌히 기다리겠다 하며 환대하는 그곳에 출근하기로 했다.


난,기도의 응답이라며 감사하다며 자신감으로 으시댔다.

그렇게 1달 뒤 업무 첫 날, 알고 있던 업무와 다른점이 많고 무엇보다 나의 교육 가치관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그 날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고 의사 표현을 했다.

그 순간 대표는 삿대질을 하며 사무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순간 얼으붙은 나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다른 강사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분의기였다.

살아오며 가장 큰 공포를 느낀 순간이다.

나의 몸과 입술과 생각까지 얼어 붙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고성과 나무람은 나를 공포로 묶어버렸다.

상대를 모욕하는 언어와 말투 그리고 함부로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내 기준에서는 분명한 악이기에 그것과 직면한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 묶음을 끊지못한 나는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출근할 때마다 공포심으로 너무 힘겨웠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포심때문에 섣불리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때야 비로서 생각했다.


뭐지?

난 분명 기도하고 응답받아서 여기 온건데?

아닌가?

내 맘대로 여기 온건가?

내 맘대로 온것임에도 불구하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지?


그제서야 진짜 기도를 하는 나를 보났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나를

그 때서야 만난것이다.

그러한 나를 기다리신 하나님을 보았고 이제서야 하나님의 뜻을 들을 준비하는 나를 만났다.


어느 날, 강의 준비를 하는 나에게 또 대뜸 찾아와 이것 저것 지적하며 인상을 쓰고 불만 불평을 하는 대표를 대하는 나의 언어와 태도와 자세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음성이 내 안에 들어왔다.

대표가 인상을 쓰고 들어오는 순간

'잘 들어보자'하는 마음이 나를 붙잡았고,

조근조근 그녀의 말이 귀에 속속 들어오며

내 안에서 나의 태도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녀는 이 기관의 대표야. 그녀와 이 기관이 원하는 방향과 규칙이 있는거야. 그 권위와 자리를 인정하면 되는거야.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야.'


그것은 대표라는 권위에 대한 인정이고 존중이였다.

그제서야 공포심의 시발점이 되는 상황이 떠 올랐다.

대표는 나의 상황을 고려하여 1달을 기다렸는데 그런 내가 하루 근무하고 교육적 가치관이 달라서 일하기 힘들다 하니 자신의 신뢰와 가치관에 상처를 입은것이다. 그녀의 배려가 존중받지 못한것이 괴성의 소리와 공포의 눈초리로 드러난 것이다.


나에게 그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니 나의 말투는 차분해졌다.그리고 상황에 대한 사실과 정황을 정리할 수 있는 과정을 안정감있게 설명하며 대표에게 신뢰와 안심을 주는 나를 만났다.

나의 발언 후 대표는 면접때의 나를 보던 눈빛으로 말을 했다.


"강사님, 어쩌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고 침착하게 이렇게 말씀을 잘 하세요? 이런것은 저도 배우고 싶네요. 아시겠지만 저는 욱하면 잡을 수가 없거든요. 이래서 저는 선생님이 처음부터 좋았다니까요!"


그렇게 관계를 회복 한 뒤 퇴사 했다.


내 가치관과 신념과 욕구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악을 버려야 한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어찌하여 하나님이 바라고 원한다고 단정 짓는가!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메이는 것이다.

메임은 내가 주장할 수 없다.

질문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리고 이끄는 대로 가거나 멈추어 자리를 지키거나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그 모습 그 모양 그대로!


그럼 진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기준과 잣대를 놓고 따르는 사람은 어떠한가?


메여 있는 '나'를 표현한다.

'포장된 나'를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내 교육관과 가치관이 정답인냥 거만했던 나의 표현에 밟힌 대표의 괴성과 몸부림에 공포를 느끼고 나서야 메인 나를 보게되고 그제서야 질문을 했다.


'난 뭘 한 거지?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깨달아 행하기를 원하시지?'


하나님은 나의 포장지가 아니다.

나를 나답게, 그분의 창조 목적에 맞게 빚으시는 손길이다.

포장지로 드러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숨결과 위치와 모양과 향기로 그분의 손길을 드러내신다.

손을 잡으면 누구손인지 아는것 처럼 만지고 보며 알게되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의 손길과 숨결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누구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이 빚으신 내가 주체가 되어 표현하는 그 과정에서의 언행과 자세와 태도의 실천으로 하나님이 드러난다.


내가 악이라 연긴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였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속함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그 악으로부터 정결하다하며 그 악이 나와 맞지 않다 여겼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내가 상대에 대한 무례함과 존중없는 그녀의 자세와 태도를 직면함으로 정작 그것이 나로부터 나온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알게됨으로 인한 공포였다.

이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니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메임은 변함없는 안전함과 보호하심이다.

나의 연약함에서 발현되는 악을 직면하여도 또다시 포장하여 스스로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며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내면을 든든히 채워주신다.

그렇게 채워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합당한 가치관과 신념과 욕구들이 나와 너와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와 국가를 지켜내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창세기

1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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