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지와 신세동 7층전탑
체화지와 신세동 7층전탑
200X년 여름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하회마을을 뒤로 하고 안동 한지 공장을 지나 안교 3거리에서 풍산읍 외곽도로로 접어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마이크를 잡은 진행자의 설명이 계속되고 있었다. 진행자는 모자를 쓴 30대 남자였다.
“한지의 재료로 여러분이 기억하셔야하는 것은 첫 번째 닥나무와 두 번째 황촉규라는 일년생 풀의 뿌리입니다. 닥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닥종이라고도 했지요? 그리고 황촉규 뿌리로 만든 미끈미끈한 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도 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죠?”
“네~!”
버스에 탄 40여명의 아이들이 입에서 일제히 대답이 튀어나왔다. 진행자는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 오늘 아침 첫 번째 코스 기억나세요? 네! 병선서원이었죠? 그리고 오전에 하회마을을 둘러봤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하회별신굿 탈놀이도 모두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안동한지공장에서 한지도 만들었어요. 아까 여러분이 만든 한지는 여러분과 헤어질 때 나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벽돌탑을 보러갈꺼에요. 그리고 벽돌탑 옆에 독립운동가를 9명이나 배출한 임청각이라는 고택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을 보고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됩니다.”
진행자가 갑자기 좌우를 살피더니 버스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님 버스를 저 위쪽 나무아래에 세워주세요.”
버스는 체화정 앞 삼거리를 지나 오른쪽 나무 아래에 정차했다.
“자! 여러분 버스에서 내릴 시간 적이 여유가 없어서 여기서 설명을 드릴께요. 왼쪽 뒤쪽에 보이는 연못과 정자보이시죠? 저 정자는 1600년대에 만들어진 체화정이라는 정자로, 아주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특히 정자의 문들이 아주 독특하게 생겼어요. 그리고 이 정자의 체화정이라는 현판은……, 여러분 사도세자 아시죠? 아버지 영조 임금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제사를 가르쳤던 삼산 류정원선생이라는 분의 글씨입니다. 삼산 류정원선생은 안동분이십니다. 그리고 체화정에는 하나의 현판이 더 있습니다. 담락제라는 현판인데요. 이 현판을 쓴 분은 여러분이 잘 아는 분이세요.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정조때 분이십니다. 우물가, 대장간, 새참, 타작, 씨름, 서당, 춤추는 아이, 이제 슬슬 누군지 느낌이 오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이분은 안동 안기찰방을 지냈습니다. 찰방이라고 하면 지금의 우체국장과 역장을 겸임하는 그런 직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분이 안기 찰방으로 있을 때 몇 년 전을 추억하며 그린 그림이 또한 유명합니다. 당시 30대였고 그가 남긴 그림이며 자신의 모습이 들어간 자화상입니다. 이 그림의 이름은,”
아이들 가운데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진행자는 잠시 뜸을 드리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단원도입니다.”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손을 들며 이름을 말했다.
“단원 김홍도”
“네! 여러분들 잘 알고 계시네요. 네 단원 김홍도가 저기 보이는 체화정의 또 다른 현판, 담락제라는 현판을 썼습니다. 자 그리고 다시 한번 체화정을 봐주세요. 연못 보이죠? 섬이 몇 개 있어요? 그렇죠? 세 개 있죠. 네 그런데 저는 체화정이 너무 아름다워서 늘 손님들을 데리고 와서 여기를 설명하곤 합니다. 그런데 계속 설명하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어요. 이 연못을 하늘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진행자는 종이 지도를 펴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지도 속 연못은 거대한 병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뭘로 보여요? 병으로 보이죠? 연못을 왜 병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한국에서 가장 큰 병은 이 체화지가 아닌가합니다. 분명 어딘가에 체화지의 전설이 숨어있을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못 찾았어요. 저도 계속 찾아보겠지만 여러분들도 한번 찾아보세요. 불교 책을 살펴보니 체화지의 모양이 마치 관새음보살이 들고 있는 정병 같아서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신기하죠? 자 그럼 이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버스는 다시 도로를 따라 안동시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빨리 가자!”
공기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날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만은 공기를 가르고 사방으로 퍼졌다.
“여기서 좀 더 쉬었다 가요. 너무 더워요.”
아이들의 투덜거림도 무더운 기온 속에서 매미울음 소리처럼 신경질 적이다.
“조금만 가면 탑이 나와! 오늘 코스는 저기가 마지막이야. 조금만 힘내자.”
머리에 모자를 쓴 30대 남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탑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아~, 진짜 저기가 마지막이죠? 저기만 갔다가 가야해요.”
잠시 후 아이들은 눈앞에 거대한 탑이 나타나 놀라웠지만 더위 때문에 흥미로워하지는 않았다. 모자를 쓴 남자는 아이들을 탑 아래 그늘로 데리고 가며 말했다.
“저기는 이 시간대면 바람이 지나가거든. 저기 그늘 밑으로 들어가자.”
그늘로 들어가자 모자를 쓴 사내는 아이들의 시선을 마술같이 손끝으로 모은 후 전탑의 꼭대기로 움직이게 했다.
“엄청 크지? 아까 버스에서 말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벽돌탑이야.”
아이들은 고개를 들어 머리를 뒤로 재치고 있어서 그런지 입이 벌어져서 저절로 감탄을 하고 있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몇 년이나 된 거 같니? 맞추기 해볼까! 추리를 잘 해야 한다.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잘 봐야해! 여기 이 부분에는 시멘트로 되어있네. 이런 흔적도 중요해. 자~ 그럼 한명씩 답해볼까~ 단, 언제나처럼 안내판을 보고 답하기는 없다.”
모자를 쓴 사내의 말이 끝나기 전부터 아이들의 눈은 탑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한명씩 그늘을 벗어나 땡볕 아래로 들어가 탑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모자를 쓴 사내는 그늘에서 아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자신도 아이들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없을지 사내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모양이다. 키가 제일 작은 남자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시멘트로 된 부분이 있으면 요새 만들어진 거잖아요. 근데, 진짜 오래된 것 같은데……. 아~ 옛날에 만든 것인데 거기에 시멘트를 칠한 거죠?”
사내의 눈이 빛났다. 사내는 아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답을 할 때 무척이나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사내는 아이들에게서 답을 잘 유도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잘 봤어. 자 그럼, 저기 있는 집 보여? 저쪽으로 가보자.”
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탑 옆에 있는 언덕길을 잠시 올랐다. 탑 바로 옆에 있는 산비탈에 집들이 붙어있었다. 언덕길은 그 집들로 올라가는 길이다. 아이들은 언덕길에 올라가 탑과 옆에 있는 고택을 함께 바라봤다.
“저 집도 엄청 오래된 집인데요?”
동의를 구하듯 아이는 말을 걸었다. 마당 안에는 잘 지어진 오래된 집들과 연못이 있었다. 특히 연못이 바로 보이는 위치의 별당이 품격 있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암마두마! 집보다 탑이 더 오래 된 것 같은데요.”
사내의 이름은 암마두마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답사를 주로 다니는 것이 암마두마의 직업이다. 암마두마는 언제나 모자를 쓰고 다닌다. 모자에는 언제나 종려나뭇잎으로 풀여치를 만들어 꼽고 다니는데 오늘은 말라비틀어진 풀여치가 꼽혀있다. 풀여치는 퀴즈를 푸는 아이들에게 선물로 준기 위해 꼽아둔다. 풀여치를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하여 모자에 난 구멍에 풀여치를 고정시켜두었다. 오늘은 더운 날씨에 풀여치가 벌써 말라버렸다. 평소 같으면 풀여치를 더 많이 만들어서 머리에 꼽았겠지만 풀여치를 만들어도 금방 말라버릴 것을 알고 있기에 말라버린 풀여치 한 마리만이 머리에 붙어있다.
“그래! 잘 봤어. 자~ 그럼 여기서 힌트를 하나 더 줘볼까?”
암마두마는 연못에서 탑으로 움직이던 시선을 아이들에게로 돌려서 아이들의 대답을 유도했다.
“예! 힌트 하나 더 줘요.”
아이들 쪽으로 암마두마의 눈길이 옮겨지자 암마두마는 힌트를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탑은 원래 어디 있지? 탑이라는 게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아~, 암마두마 그러니까요. 절이잖아요. 탑은 절에 있어야하는데. 음…….”
한아이가 대답을 하자 다른 아이가 손가락으로 연못이 있는 집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그럼 원래 저 집이 절터였겠네요. 맞죠? 절이었는데 절은 없어지고 탑만 남았는데 저 집이 그 뒤에 지어졌겠네요.”
“대단한데. 자~ 덥다 이제 내려가서 보자. 저기 그늘에 가면 이 탑에 전해오는 전설 이야기 해줄게.”
잠시 구름이 아이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그늘을 만들어줘서 시원했지만 구름이 지나가자 다시 강렬한 태양이 피할 곳을 찾도록 만들었다. 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탑 옆에 있는 그늘로 들어갔다.
“얘들아! 그런데, 탑이 옆으로 기울지 않았니?”
암마두마의 물음에 아이들은 곧
“네! 철길 쪽으로 기울었어요.”
“옛날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거 알고 있지? 그때 여기에 철길을 만들었어. 안동역에서 기차를 타면 이 철길로 해서 청량리역까지 갈 수 있어.”
사내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곧바로 아이들에게 답을 해주질 않는다. 한번 다른 지식을 전달하고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방법을 취한다.
“무거운 기차가 계속 다니다 보니까 이 벽돌탑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란다. 앞으로 잘 보존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도 있어.”
사내는 아이들을 탑과 철길 사이 그늘로 데리고 가 바닥에 아이들을 앉히고 벽돌탑에 전해 내려오는 목수와 도깨비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따라오는데 석균이만 탑에 붙어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이제 가야한다. 빨리 와! 버스타고 집에 가야지!”
석균이는 사내 쪽을 돌아보더니 다시 한 번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을 바라본다.
“가야한다니까? 거기서 살꺼니?”
석균이는 그제서야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탑을 한번 돌아보고 나서야 달려왔다.
“암마두마 그런데 탑이 이상해요.”
암마두마는 탑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도 당연히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버스로 가자.”
사내는 아이들을 재촉해서 버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안동에서 청량리로 가는 기차가 무서운 속도록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석균이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 후 다시 한 번 벽돌탑 쪽을 한동안 바라봤다. 벽돌탑은 기차가 지나가는 것에 전혀 동요하는 것 없이 서있는 것으로 보였다. 석균이는 아직 탑이 수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버스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려 친구들을 따라갔다.
사내와 아이들이 탑에서 멀어지고 기차가 탑에서 멀어지자 탑의 한 쪽 모서리 벽돌 몇 개가 후드득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