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평 _ Arrival, 2016

문과가 세상을 구하는 방법

by 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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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생명체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질로 구성된 인간은 비물질의 의식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비물질의 의식은 물질로 구성된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나아가, 인간은 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거나, 세상을 바라본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이러한 의식이 함축되어 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자신들의 의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교감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또는 서로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진 생명체를 지적 생명체라고 일컫는다.


인류학자인 사피어와 워프는 인간의 언어 그 자체가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을 역설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학습함에 따라 인간의 사고는 점차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영화 역시 사피어-워프 이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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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12척의 외계 물체가 착륙한 뒤, 언어학자 루이스는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그녀의 임무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소통을 거듭하면서 그녀는 외계인들의 언어를 연구하게 된다.


외계인의 언어는 원형 문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간의 언어와 동일한 구조의 선형 문자와 달리 원형 문자가 가지는 본질적 특성은, 문장이 시작하는 지점과 문장이 종료되는 지점을 미리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해야 하는 언어적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외계인의 언어를 학습하는 장면과 동시에, 루이스와 그녀의 딸이 함께하는 모습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삽입된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 장면을 보며 루이스는 이혼을 하였고, 딸이 있으며, 그 딸 역시 병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서 루이스는, “이 여자아이는 도대체 누구지?”라는 말을 하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해야 하는 외계인의 원형 문자를 학습하면서 루이스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가 보았던 장면들은 그녀의 미래였던 것이다.


따라서 ‘언어가 곧 무기다’라는 외계인들의 메시지는 인간이 원형문자를 학습함으로써 미래를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먼 미래에 인간들이 외계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는 논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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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드니 빌뇌브 감독은 관객에게 그 결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외계인들의 비행선에 입장하며 회전하는 중력장과, 수평적 움직임에서 수직으로, 결국 원형으로 이동하는 화면의 구성을 통해, 관객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선형적 시선에서 원형적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또한 언어 학습(현재) 장면과 딸과 보내는 시간(미래) 장면을 반복적으로 교차 편집하면서 관객들에게 혼란을 제공하고, 마지막의 한 대사를 통해 모든 의문점을 단번에 마무리 짓는 영화의 논리적 구성은 매우 탁월하다.


영화의 원제는 ‘Arrival’, 즉 도착, 도래의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이 제목은 통상적인 영화들과 달리 영화의 시작점이 아닌 영화가 종료되는 시점에 등장한다. 우리가 선분을 그릴 때에는, 그 시작점과 종료점이 명확하다. 그러나 원에서는 시작점이 곧 종료점이고, 종료점이 곧 시작점이다. 영화는 그 제목을 가장 마지막 장면에 삽입함으로써 원형 문자와 그 특성에 대한 설명을 형식적 구성으로도 완벽하게 해낸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또 다른 명작 ‘시카리오(2015)’에서도 콘트라베이스와 첼로의 선율을 사용해 작품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탁월한 음향 구성을 선보인 요한 요한슨의 능력 역시 또 한번 빛을 발했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영화든지 세 번 이상 시청해야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친구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은 혼란이었다. 사피어-워프 이론을 공부한 뒤 영화가 다시 떠오르자마자 시청한 후의 감정은 경이로움이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마지막으로 시청한 후의 감정은 만족스러움이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중에 가장 완성도 높고 예술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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