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MBA를 앞둔 nobody의 첫 한국살이와 캠퍼스 적응기
MBA 오퍼를 받았다는 이유 덕분에, 팀원들과 친했던 직장 동료들의 축복과 선물 세례 속에서 기분 좋게 퇴사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멘토와 지인들을 만나러 베이징에도 다녀오고, 아빠에게는 상하이 구경도 시켜드리고, 같은 빌딩의 조금 더 작은 집으로 이사까지 마쳤다. 8월 1일부터는 풀타임 학생 신분이 되지만 나는 한국에서 먼저 처리해야 할 절차들이 많았기에 3주 먼저 서울에 도착하기로 했다.
외국인 유학생 입장에서는 유학생 비자를 받아야 한국 입국이 가능하지만, 나는 선견지명(?)으로 작년에 이미 F4 비자(재외동포 장기체류 비자)를 받아둔 덕분에 언제든 입국을 할 수 있었고, 입국 후 거소증(등록증)만 신청하면 된다. 집 구하기가 까다로울 수도 있겠지만 부동산 돌아볼 시간은 충분했고, 은행 카드 실명 인증 같은 절차는 거소증이 발급된 뒤 바로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번이 첫 유학이 아니다. 일단 덜 익숙한 문화에 적응하는 훈련은 만 18세도 되기 전 홀로 베이징에 정착하며 충분히 겪었고, 5년 뒤 프랑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도 고생 아닌 고생을 했다. 그런 나에게 "한국유학"이란, 그냥 짐 싸서 상하이 옆 동네에 가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출발 당일까지도 여유롭게 캐리어를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다. 아무리 언어와 문화가 낯설지 않다 해도, 외국 국적은 결국 외국인이고, 행정 수속은 어느 나라든 만만치 않았다.
당연히 문제없을 줄 알았던 거소증 신청에서, 나는 말 그대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미리 예약한 시간에 맞춰 나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지만, "무범죄증명(공증 아포스티유 포함)"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알고 보니, 올해 초 새로 생긴 규정 중 하나가 F4 비자를 받은 뒤 6개월 이내 거소증을 신청하지 않으면 무범죄증명, 결핵검사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출국 전, 상하이에서 550위안(한화 10만 원 이상)을 들여 받은 결핵진단서마저 인정되지 않았고, 보건소에서 다시 검사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온라인으로 순식간에 다 해결해 주는 상하이 주민 서비스, 하지만 증명서를 순식간에 받아봤자 공증, 아포스티유, 그리고 그것을 국제우편으로 받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입학 전까지 거소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거소증이 나오기 전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나는, 카카오페이, 쿠팡은 물론이고 올리브영, 다이소, 교보문고 등 대부분의 회원가입조차 불가능하다. 다행히 선불 휴대폰번호와 visa카드가 있고 네이버와 카톡 기본 기능 정도는 사용할 수 있어 생활 자체는 가능하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사소한 불편들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 외국인놀이 하기 힘드네."
불행 중 다행으로, 집을 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름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해둔 덕분이기도 하고, 인연이 닿은 부동산의 업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중개인분이 나와 동갑인 여성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편하고 친근했다.
그렇게 2주쯤 좌충우돌하다 보니... (1000자 생략)
7월 25일 현재, 이사도 무사히 마쳤고 한국식 분리수거도 슬슬 감이 온다.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자연스레 한국어로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 언어 시스템이 조율되어 가는 중이다 :)
개학은 아직인데, 어느 순간 학교 앱에서의 학적 상태가 재학(1학년)으로 바뀌어 있었고 S-카드 QR코드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교 이메일 계정으로 이메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사도 마쳤고, 거소증 (재)신청도 큰 문제없이 제출했으며, 슬슬 할 일이 없어지려고 하는데 마침 다양한 활동공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잘됐다 싶었다. 이 기회에 보이는 모든 활동에 참여하면서 서울대 캠퍼스에 적응해 보기로 했다. 무더위와 비를 무릅쓰며 캠퍼스를 두 번 정도 돌아다녀보긴 했지만, 실제로 학생의 시선으로 경험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7월 23일(수)부터 25일(금)까지 단 사흘 사이에 온라인 활동 한 번, 오프라인 활동 세 번을 참가했다! (내가 입을 연 적은 없으니 그냥 경청만 하고 왔다고 해야 할까?)
수요일 활동은 "창업초기 투자유치와 스타트업 생태계 이해"라는 온라인 창업 특강이었다. 익숙한 Zoom으로 진행되었기에 집에서 분위기만 느껴보려 했는데, 직장인이 아닌 학생 신분으로 듣는 첫 강의라 그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은근 긴장이 되었다. 학부생을 위한 강의 같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카메라를 끄고 있었기에 (분명 공지에는 가급적 카메라를 켜달라고 했는데...) Q&A시간에도 감히 질문을 못 하고 나중에 링크드인으로 연락을 하려고 다짐했다 (아쉽게도 링크드인에서 찾지 못했다).
그리고 심각한 무더위가 계속되던 목요일과 금요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들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학생회관에 가서 문서 출력도 해보고 (내 은행카드들을 안 받아주는 단말기 때문에 이름 모를 학부생의 도움을 받아 50원을 결제하는 "굴욕"을 맛봤다), 서울대 로고가 이쁘장하게 새겨진 에코백도 사고, 책도 사고... 그러다 "미래를 여는 AI 융합 작품 전시회"를 보기 위하여 중앙도서관에 갔다 (이때 내 QR코드가 정상적으로 인식이 된다는 걸 처음 확인했다).
헤드폰을 낀 채로 한 시간 동안 작품들에 몰입했다. 그중 대상 수상작인 "Happiness is intelligence?"를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어지는 다양한 작품들에도 조용히 감탄을 이어갔다. 요즘 흔하고 흔한 게 AI 툴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전공과 개성으로 구현된 결과물들을 보니 이게 진짜 AI 융합이구나 싶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앱의 위치 제약에서 벗어난 한국에 있으니, 나도 본격적으로 글로벌 AI 툴들을 탐색해 보고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앱들을 골라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 후 언덕을 오르내려 음악대학 쪽으로 향했다. 콘서트에 참가한답시고 긴 바지를 챙겨 입었지만, 6시가 넘어도 지속되는 폭염에 거의 실신할 뻔했다. 땀범벅에 초췌해진 내가 간 곳은 음악대학에서 주최한 "2025 WIN ENSEMBLE CONCERT". 다들 멋지게 차려입으셨고, 내 양옆에는 뭔가 음악과 공간에 익숙한 듯한 깔끔한 직장인들이 앉아 있었지만 "괜찮아! 난 학생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80분 내내 눈과 귀, 그리고 영혼을 힐링시켰다.
마지막으로 25일 금요일, 현대한국종합연구단 K서사팀 연속 컬로퀴엄에 참가해 "생존주의, 능력주의, 응보주의: 동시대 K-서사의 악순환적 구조"특강을 들었다. 전날 무더위에 단단히 데었던 터라 오늘은 우산도 챙기고 옷도 신중하게 골랐는데, 교통 노선을 잘못 잡는 바람에 또다시 20분 넘게 폭염 속을 질주하게 됐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도 엉망진창이었다.)
강의실을 찾는 과정부터 자리 잡는 순간까지, 어딘가 어설프고 어정쩡한 사람은 꼭 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교수님께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실 때 모두가 허리 숙여 인사했는데 나 혼자 어안이 벙벙해 두리번거리기까지 했으니 내가 신입생 티와 외국인 티를 동시에 제대로 내고 말았다.
그런데 이 특강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교수님의 내용도 충분히 울림이 있었고, Q&A에서 이어진 학생들의 질문 역시 인상적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달까. 신선했던 이유는, 한국 대학 교육이 주입식이라고만 들어왔지만 여기에서 질문한 학생들은 뛰어난 말빨과 논리로 도전적이면서도 예의 있는 방식으로 질문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나 자신이 마치 녹슨 기계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먹물도 다 말라버린 기분. 10년간 직장에서 발표와 발언을 두려워한 적 없는 내가, 서울대 수업 하나 듣고 와서는 "나는 진짜 nobody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게 내가 굳이 서울대를 지원한, 서울대만 지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학교로 알려진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소통하고, 깨닫고 싶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내 과거를 모르기에, 나는 nobody by default이다.
이제는 새롭게 쌓는 성과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MBA는 영어로 진행되지만, 전공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순간에서 내가 세 번째로 익숙한 언어(성인 이후 기준)로 의사소통을 하며 나를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외국인, 중국인, 그리고 한국에서는 교포라 불리고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Korean Chinese에 대한 편견을 마주할 때면, 잠깐씩 슬퍼지기도 할 것이다.
나는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근심걱정이 많은 이방인이다.
그리고 이방인은 곧 열릴 새로운 세상이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