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콤플렉스를 모두 앞에서 당당히 말할 때

비로소 나는 성장한다

by Katherine

중국 국적인 나에게도 우리말 이름은 있다. 심지어 중국 신분증에도 찍혀 있는 내 이름.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를 상징하던 그 이름이 오히려 콤플렉스가 되었다.

학교 외부 활동이 많았던 2009년부터는 필명(?)을 자주 사용했고, 영어를 많이 쓰게 된 2014년 무렵부터는 학교와 직장에서 아예 영어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단 법적으로 개명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름 뜻이 안 좋은 것도 아니다.

흔히 있는 남존여비 식 의미는커녕, ‘영웅스러움(英)’과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매화꽃(梅)’이 더해진 힘 있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두 글자를 합치면 — 영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촌스러운 느낌이 싫던 차에 한국에서 전혀 다른 의미 (령매: 灵媒)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아니, 왜 한국에서는 두음법칙 때문에 굳이 ‘령매’를 ‘영매’로 쓰는 거야?!

종교도 없고 무속과도 전혀 관련 없는 집에서 자랐기에, 이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필명을 만들었고, 대학교 시절에는 본명 대신 필명으로 불리는 게 일상이었다. 이후엔 영어 이름을 쓰면서, 본명은 공식 서류 사인할 때 말고는 거의 보거나 들을 일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 연말 갑작스레 서울대 MBA 지원을 결심했다. 3월 정식 지원서 작성 단계에서 영문 이름과 함께 한글 이름을 적어야 하는 칸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한글 이름을 적으면 ‘영매’로 불릴 것이고, 안 쓰면 이상한 한글 표기로 강제 변환될 게 뻔했다 (찌앙이잉메이 이렇게 강제 변환된다면 불려질 때마다 화가 날 것 같았다).

이걸 써? 말아?


결국 이름을 그대로 썼다. 합격 통지서에서 내 한글 이름을 보니, 그래도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1박 2일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님들, 매니저님들, 학생회 선배님들, 그리고 110여 명의 동기들을 처음 만났다. 오전은 일방적인 안내였고, 오후엔 아이스브레이킹이 진행됐다. 팀별로 이름을 정하고 주어진 명사에 어울리는 팀원을 지목하는 게임이었다.


첫 주동권을 잡지 않았던 차에 “The Leader”로 지목이 될 수는 없었고 어쩌다 보니 “Extrovert”로 뽑혔다. 게임이 끝나고 명사 별로 무대에 올라 짧게 자기소개를 해야 했는데, 예전에 준비해 뒀던 자기소개 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즉석에서 말해야 했다.

할 말은 많지만 어떻게 임팩트를 남길까 고민하다가, 이 참에 내 콤플렉스인 이름을 꺼내자고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즉흥적으로 멘트 하나 던졌다. (실제로는 영어였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글로 번역): “여기 계신 한국 학생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서 제 이름을 절대 잊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웃음과 호응 속에, 나는 내 이름의 뜻과 사연, 왜 한국에서만 독특한 이름이 됐는지, 그럼에도 우리말 이름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이유를 최대한 짧게 전했다. 발표를 마친 뒤, 주최 선배님이 자그마한 SNU Bear를 선물로 주셨다. 뭔가 남긴 게 있구나 싶었다.


이 과정은 짧고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20년간 외면하려 애썼던 이름을 내 입으로 해석하고 꺼내놓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과 화해한 것 같았다.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마음이 고요해졌다.

사소하지만 불편했던 정체성의 한 조각을 다시 품은 느낌이었다.


그 뒤로 동기들이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거나, “아, 그때 그분!”하고 기억해 줬다.


이제 드디어, 한 치의 우물쭈물함 없이 말할 수 있다.

“MBA 20기 강영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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