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인터넷폭력을 당하다

늘 행복한 일만 생길 수는 없으니 뭐.

by Katherine

정식 개학 2주가 지났다.

1주 차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즐거웠다. 기분 좋게 인스타그램에 몇 마디 남기는 여유도 부려보았다.

… 취침 시간이 의도치 않게 늦어지게 되는 것만 빼면 전체적으로 즐겁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 앞으로 일정은 점점 더 빡세지겠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풍족해질 기회도 많아질 테니, 좋은 기운이 맴도는 사람들과 늘 함께이고 싶다. …


그 첫 주가 너무 행복했던 걸까? 2주 차는 여러 일이 한꺼번에 꼬여서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학교에서의 시간 자체는 여전히 1주 차처럼 “전체적으로 즐겁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시간”에 가까웠다. 해야 할 일들이 두 배로 늘긴 했지만, 효율을 높이고 우선순위를 잘 세우며 시간관리를 하다 보면 결국 기분 좋은 일로 분류할 수 있다 보니 별 걱정 없이 즐기는 데에 집중을 했다. 솔직히 밀린 과제도, 몸살 기운 때문에 몸과 머리가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는 것도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진짜 나를 당황스럽게 한 건, 나흘간 이어졌고 아직도 완전히 끝났다고는 할 수 없는 때 아닌 인터넷 폭력이었다. 항상 나름 신중하게 발언해 왔고, 타인 정보 유출도 조심한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지난 6월, 한국에 오기 전 회사 생활을 정리하며 베이징에 들린 적 있었다. 4년 넘게 다녔던 회사 북경지사에서 팀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던 다른 동료들도 직접 만나고 싶었다. 물론 직속 상사도 베이스가 베이징인지라 꼭 들려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대화했고, 기대 이상으로 퇴사 선물도 받았다. 늘 고마운 사람들이다.


기왕 베이징에 간 김에 10년 전에 첫 회사의 매니저도 찾아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거의 하진 않았지만, 이번에 내 경력증명서 겸 추천서를 써주셨으니 정식적으로 인사드리는 게 도리라 생각했다. 작은 선물도 준비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상하이에 돌아와 베이징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중국 SNS 샤오훙수에 올렸다. 사진과 함께 짧은 글로 즐거웠던 기억을 적었는데, 그중에는 내가 만난 상사분들 얘기도 있었다. 국적이 모두 달라 국기 세 개를 달고 간단히 감사 인사를 남겼다. 그중엔 앞서 말한 매니저도 있었지만, 다른 두 분과 비교를 할 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형식적인 고마움이 섞인 무난한 표현으로만 적었다.


전혀 문제가 될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이 포스팅이 이번 주, 내게 직격탄이 되었다.

아, 이게 바로 나비효과일까?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MBA 선배님들이 주최한 클럽 이벤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오던 길, 샤오훙수에서 받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낯선 사람에게서 “왜 자기 남편이랑 단둘이 밥을 먹었냐”며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결국 요점은 내 샤오훙수 포스팅이 마음에 안 들고, 자기 남편 부분 삭제해 달라는 요구였다.


솔직히 언제 결혼했는지도 몰랐던 분이라 의아했지만 이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개인정보 유출도 없이 국기 하나에 형식적인 고마움을 담은 그 포스팅이 대체 어떤 부분이 아니꼬왔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어 몇 마디 설명했지만, 대화가 전혀 안 통했고, 오히려 나를 경쟁 상대로 몰아가길래 결국 두 손 다 들고 해당 부분을 지웠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음 날 아침, 장편소설 분량의 메시지들이 또 도착했다. 느낌 상 이런 분과 잘못 엮이면 평생 피곤해질 것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대체 무슨 말을 하냐 자세히 보니, 논리에 안 맞는 말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남편이 나 대신 너를 선택하려 한다”, “왜 가정을 파탄 내냐”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이어졌다.


내가 왜 하필 굳이 필요도 없는 경력증명을 위하여 그때 그 매니저에게 추천서 부탁을 했을까, 정말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싸울 순 없었다.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그 싸한 느낌이, 강경하게 대응하면 내가 손해일 게 분명했다.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자 결국 그분이 원하는 게 드러났다. 중국의 Quora 비슷한 플랫폼에 내가 10년 전에 쓴 댓글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아무도 안 쓰는 플랫폼인데,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분은 샤오훙수에서 하루에 수십, 수백 통의 메시지를 내게 보내고 있었다. 어제는 자기 남편과의 사이를 의심하더니 오늘은 그 중국 Quora 글이 남편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식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다음 얘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정리하고 싶어, 당일 수업과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해당 글을 수정했다.


사실 그 글은, 10년 전 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한 한 컨설턴트가 내 험담을 하자 내가 반박했던 내용이었다. 그중 일부가 이 분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아예 막으려고 정말 공 들여 깔끔하게 다시 정리했다.




이제 해결이 다 됐겠다고 안도했는데, 다음 날 또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내가 새롭게 올린 글에 샤오훙수 계정을 남겼다며 “홍보 목적 아니냐”라고 몰아붙였다. 내가 더 이상 이 플랫폼을 안 쓰니 궁금한 것은 따로 문의하라고 아주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인데. 지쳐서 “혹시 새 글은 다 읽어보셨나”라고 물으니, 태도가 돌변해 “잘 썼다, 어차피 샤오훙수 공개는 개인 선택”이라며 말을 바꿨다.


소름이 돋았다. 언제 또 태세 전환을 할지 몰라 계정 언급을 삭제했다.


주말이 되자 이번엔 2022년에 달았던 해명 겸 달았던 댓글을 지워달라고 했다. 회사 칭찬 글이었는데 왜? 싶어 캡처하고 확인까지 했지만 맞다고 해서 씁쓸하게 지웠다. 선 넘은 회사 PR 같았지만, 더 이상 휘말리기 싫어 맞춰드리는 게 최상의 선택이었다.


몸살로 고생하는 현재 일요일의 나, 아직도 그분의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일단락된 듯하다가도 다시 질문이 쏟아진다. 차단하고 싶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될까 두려워 최대한 매너 있게 대응을 하고 있는데, 이걸 언제까지 견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깨달은 점이 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만 이해한다. 친한 사람이 아닌 이상, 오해는 풀리기 어렵다.

세상에는 작은 일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그분에게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이러는 거겠지.

추천서는 정말 내가 잘 알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멘토에게만 부탁해야 한다. (!!!)

인터넷 폭력을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대응을 하기 힘든 이유는 아마 시간이 부족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 때문에 성공을 해 봤자 더 큰 소모와 상처를 겪게 될 가능성이 커서이지 않을까?


하필이면 집중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시기에 이런 일이 겹쳐 머리가 아프지만, 차라리 빨리 겪고 빨리 지나가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몸살이라도 빨리 나으면 정신력이 이내 회복될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주도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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