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이문화 적응기

익숙하면서도 낯선,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야기

by Katherine

한국의 나이문화,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낯설면서도 익숙할 수밖에 없는 문화다.


익숙한 이유는,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에서 내 삶의 절반 가까이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존댓말을 쓰고 언제 반말을 쓰는지, 심지어 애매한 반존대 개념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덕분에 다른 외국 국적 유학생들과 비교하면 언어 실수 확률은 훨씬 낮은 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철저히 나이를 기준으로 언니/오빠 서열이 생기는 한국식 문화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지역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여기에 오니 드디어 전설 속의 “이름+나이” 형식 자기소개를 반복해서 듣고 말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나이를 프라이버시 정도로 보는 문화에서 온 것은 아니기에 적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통성명을 하며 번호를 교환할 때 이름 뒤에 나이를 적는 것, 같은 또래라도 빠른 나이와 일반 나이(?)로 구분을 하는 것, 한 살 차이로 갑자기 언니/누나가 되는 것… 이런 디테일을 눈과 귀로 새로 배워야 했다.


우리 MBA는 사람도 많고 연령대가 너무나 다양하다. 얼굴과 이름 매칭도 어려운데, 거기에 나이까지 기억하기에는 무리인지라 그냥 단순화하기로 했다. 나이 상관없이 20기 전은 모두 “선배님”, 20기 동기들은 “성함+님”으로.




그럼에도 나이를 따지는 문화 덕분에 생긴 메리트도 있었다. 바로, 동갑이랑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친해질 수 있다는 것.


정식 개학 첫 주까지만 해도 오리엔테이션 때 팀원들과의 저녁 모임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어느 순간 “92년생 단톡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었지만, 세상에, 첫 대화부터 다정함이 물씬 느껴질 정도로 모두 친근했고, 긴장했던 나도 금세 그 분위기에 몰입되어 절친과의 대화모드 급으로 말을 편하게 했다.


이후로 수업 뒤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사소한 이것저것 토론을 하면서 더욱 친해졌고, 나는 종종 “92라서 너무 행복해요”라는 생각을 꽤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이 짧은 시간 동안 한국어가 놀라운 속도로 자연스러워진 가장 큰 이유도 이 동갑 친구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아니, 동갑이라면 당연히 친구 아냐?”




“동갑이라면 친구 맞다고 생각하는 건 맞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예전에 그렇게 살아온 적이 없기에, 지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가상 물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이 정도로 정리가 된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다만 “빠른 몇 살” 이런 개념보다는 “느린 몇 살” 개념에 가깝다. 9월에 입학을 해야 하니까 8월 31일 전에 태어난 사람까지만 입학이 가능하다, 이런 정도로 제한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부모님 말고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이다) 유치원을 한 달만 다니다가 바로 초등학교 1학년에 조기 입학했다. 만 5살이 채 안 된 나이에, 두 살 많은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된 것이다.


함께 입학을 했으니 당연히 서로 반말을 하는 친구로 살았던 거고, 그걸 시작으로 학부 졸업까지 동기들 대부분이 90년생(간혹 89년생, 91년생도 있었던 것 같다)이었다. 나이를 강조하지 않는 나라에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나 자신을 90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간혹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면, 중2 때는 어린애 취급을 받으면서 친구가 별로 없었다. 2살 많은 동기들과 어울리려면 2배는 더 잘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자기 암시, 그리고 그에 따른 불필요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까지 따라붙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또 다른 불편함이 생겼다. 베이징에서 많은 사람들과 새로 알고 지내게 되었는데, 학번과 나이가 맞지 않아 생기는 에피소드들 때문이다.


조선족이나 한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릴 때, 후배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존댓말을 쓰는 것, 반대로 나는 후배들에게 반말을 쓰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묘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동아리나 모임에서는 늘 학번에 맞춰 역할이 배정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편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국 이 후배들, 졸업한 지 몇 년 지났어도 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연변 지역 출신 사람들은 “서로 반말한다” = 무조건 친구 = 서로 “야, 너” 하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점은 학부생 때 알고 지냈던 한국인 유학생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어쩌면 더 친해졌던 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분은 88년생이었고, 처음에는 서로 존댓말을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나에게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해서 나는 오케이 하고 바로 “야, 너”모드로 들어갔다 (마침 그가 후배이기도 했다). 한참 친해진 뒤에서야 그가 이 차이를 설명해 주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졸업 후 10년 넘게 별 연락이 없다가 이번에 한국에 와서 다시 만났었는데, 나는 또 습관대로 “야, 너”를 남발했다. 다행히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하고 자연스러웠다.


아마 이런 경험들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에게 유난히 더 깍듯하게 대하는 것 같다. 말을 놓는 순간 정신줄도 함께 놓게 될까 봐^^




솔직히 모든 연령대와 존댓말을 한다고 해서 거리를 두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경솔하게 반말을 했다가는 내가 30년 넘게 익혀온 “반말 = 야, 너”라는 공식에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분들과는 조금만 친해져도 갑자기 “야, 너”가 나갈까 항상 조마조마해야 하고 말조심을 해야 한다.


지금은 “ㅁㅁ님” + “반말” 형식으로 시작을 했지만 이게 내 방식으로 특혜를 요구할 수도 없고, 사람이 평생 적응해 왔던 걸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 소소하게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한 살 차이로 언니/누나, 형/오빠 이런 단어들이 오가는 문화에 놀라고, 동기들이 나를 언니라 부를 때마다 흠칫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언니언니” 하며 졸졸 따라다니게 되는 띠동갑 언니들이 있기도 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문화에 몸 담그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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