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시선으로 말하다

커리어, 정체성, 그리고 서울대 MBA에서의 첫 한국어 발표

by Katherine

2026년 2월 5일,

커리어와 정체성, 두 가지 이야기를 한 번의 특강에 담아본 날의 기록.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은 발표가 있었다.

내가 어딜 가든 '소수'에 속하는 배경인 만큼, '다수'에게 '소수'를 알리는 그런 발표.

내가 특별하다, 내가 잘났다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관심 없거나, 혹은 관심이 있어도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조금 더 알기 쉽게, 솔직하게 풀어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번 주 목요일, 실제로 서울대 MBA 일부 원우들을 대상으로 그러한 특강을 하게 되었다.




특강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무래도 컨설팅 업계에 있은 적 있고 마지막 회사가 Big 4 였던 만큼, 입학하고 커리어 관련 질문들을 받다 보니 언젠가는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또 하나는, 친한 원우들과 모이다 보면 꼭 피할 수 없던 '정체성' 이야기를 나는 술자리가 아닌, 조금 더 진지한 자리에서 짧지만 임팩트 있게 해보고 싶었다.

둘 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나 또한 유명인이 아니기에, 한 번의 특강에 가볍게 녹여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친한 원우들과 대화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됐는데, 그들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다.

비공개 세션으로 하고 싶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돌리겠다며 실제로 꼼꼼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 원우 A.

생각보다 준비를 열심히 할 것 같아서, 비공개보다는 관심 있는 MBA 원우들에게는 열어두고 싶다고 마음을 바꾸자, MBA 단톡방에 깔끔하게 공지 메시지를 보내고 의향 체크, 세미나실 예약 등 행정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준 원우 B.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사이에 끼어 진행해야 하는 만큼 고민해야 했던 샌드위치와 커피를 후원해 준 클럽까지.


단톡방에 어젠다를 올리면서 '특강 선언'을 할 때는 부담스러워서, 시작 전까지 강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25명이나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정도면 이미 충분히 많은 인원이고, 바로 참여 의사를 밝혀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홍보를 하지 않고 조용히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특강을 시작하며 체크해 보니, 다행히도 3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가 강사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고 했다.)


분명 2주라는 준비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수업, 과제 및 기타 MBA 활동에 부대끼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결국 발표 전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장표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스크립트 없이 45분 진행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더 이상의 준비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일단 머릿속으로 해야 할 내용들을 열심히 굴리며 정리하는 시간만 가졌다.





"커리어 인사이트 그리고 정체성"

- Defining Professionalism, Redefining Roots: 프로페셔널의 성장과 자아의 확장


이런 거창한 제목으로 세션을 시작했고, 오프닝과 클로징을 각 5분씩, "주요 프로젝트와 커리어 인사이트" 15분, "'코리안 차이니즈'의 시선: 과거, 현재, 미래"를 15분으로 잡았다.


오프닝은 MBA 원우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해시태그# 형식으로 몇 개 집은 뒤, 나의 타임라인(언제 어디에서 뭘 했냐)을 대충 훑고, 바로 커리어와 정체성이라는 두 본론을 왜 준비했는지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들어갔다.


원우들의 관심사가 궁금해 바로 거수투표를 해봤더니, 커리어 관련 내용보다 정체성 관련 내용에 더 관심이 많다는 반응이 나왔다. 휴, 다행이다. 커리어 부분 장표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지만, 내가 실제로 임기응변을 훨씬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정체성 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주요 프로젝트와 커리어 인사이트" 이 부분은 세 가지 질문으로, 총 3장의 장표를 준비했다.

"부티크 펌도 컨설팅 펌?" "보험회사에게 이노베이션이란?" "컨설팅 안 할 거면서 왜 Big 4?"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각 기업 개요, 주요 경력 및 프로젝트, 성장 포인트, 커리어 고민 이렇게 네 가지로 풀어갔다.

내용은 많이 넣어두었지만, 막상 스크립트 없이 한국어로 풀어내려다 보니 중간중간 방향이 이상하게 흐를 뻔하기도 했고, 분명 괜찮게 포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드립 치며 개그처럼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뭐 어때, 원우들끼리니까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하면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코리안-차이니즈'의 시선: 과거, 현재, 미래" 이 부분 역시 3장의 장표로 준비했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동질감에서 이질감으로 (~2013)", "정체성의 재정의 (2022~)"이렇게 시간 순으로 나눴다.

첫 부분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만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작으로, 조선족이라는 개념이 왜 생겼는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등을 간단히 풀어봤다.

두 번째 부분은 개인 성장의 흐름을 중심으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생긴 고민과 내렸던 결단 등을 이야기했다. 어릴 적 사진들까지 넣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던 것 같다. 한복 입고 백일장 시상식에 갔던 사진을 보니 갑자기 그 백일장을 주최하셨던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님이 떠올라, 그분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발표 중에 갑자기 떠오른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여 세션 끝나고 더 많은 검색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역시 개인 성장의 흐름을 바탕으로, 최근 고향의 변화에 대한 생각과 새로운 발견들을 이야기하면서 슬쩍 "우리나무 사이트" 홍보도 했다. 지금은 공식적인 운영진이 아니기에 굳이 홍보할 필요는 없지만, 한때 이곳에서 정말 많은 훌륭한 글을 읽으며 감탄했던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질 원우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클로징은 오프닝 때 사용했던 해시태그#들로 다시 시작했다.

그 해시태그들을 as-is로 넣고, to-be 즉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를 얘기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겨우 한 페이지뿐인 이 부분을 가장 마지막에 준비하면서, 나 자신을 꽤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보이고 싶은 이미지는 결국 "탁월한 적응력", "글로벌 마인드셋", "진정성 있는 태도" 이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친한 원우 한 명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미션에서 비전으로 이어지는 Why-How-What 공식이 떠올라 그 틀에 맞춰 나의 미션부터 비전까지 정리해 공유했다. 따끈따끈한 버전이지만, 어쩌면 내가 10대 때부터 해왔던 고민과 하고 싶은 일들이 꽤 잘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발표에 담아보기로 했다.




사이사이 드립을 치기도 하고, 잠깐씩 머리가 새하얘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예상대로 거의 완벽한 타이밍에 발표를 마쳤고, "아 나의 시간관리는 역시-"라는 가벼운 자뻑을 시작으로 Q&A를 열었다.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한 질문들도 있었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온 것 같은데 혹시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너무 듣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정작 준비한 답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입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저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을 고민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10대 후반, 어린 나이에 학부를 다니며 대외활동을 할 때 가장 많은 고민을 했었고, 아마 스트레스도 제일 많이 받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지금의 저에게 정체성의 고민은 스트레스가 아닌 일상입니다."


발표를 마치고, 사진 촬영에 동의한 원우들과 함께 같이 기념사진을 남기며 세션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번 발표를 마치고 꼭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게 한국에서 하는 첫 한국어 발표이기도 하고,

단순히 수업이나 프로젝트 때문에 준비한 내용이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담은 발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발표에서 지난 10년의 커리어를 훑는 동시에 나의 정체성, 심지어 비전까지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2026년 2월 5일 목요일은 20년, 30년이 지나도 계속 떠오를 것 같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느껴진다.


장표를 준비하며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실제로 스크립트 없이 진행하다 보니 임기응변으로 말을 이어가야 했던 순간들 속에서도, 새로운 발견이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겠지만, 사전 준비에 진심이었던 원우들, 발표 내내 따듯한 눈으로 무언의 응원을 보내준 청중 덕분에 더 큰 힘을 얻었다.


더도 덜도 말고, 이 발표에서 내가 말했던 대로만 앞으로의 시간이 흘러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