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kind of peace

음악 속의 평온함, 평온함 속의 강인함

by Katherine

12년째 한결같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질릴 만도 한데 때때로 찾게 되는 걸 보아하니,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결국 한결같을 수밖에 없나 보다.


“지금 당장 그 사람의 음악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은, 뻔하게 올 때도, 혹은 돌연스레 찾아오기도 한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을 때, 생각에 잠길 허구의 공간이 필요할 때, 그리고 마음이 좋은 의미로 또는 나쁜 의미로 가라앉을 때.


올해의 시작도 그 뮤지션 음악으로 열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습관처럼 틀어놓고 있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여전히 생각의 여백이 필요한 상태일 수도 있겠다.


이 사람을 어떻게 글로 소개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4년 전에 썼던 글을 인용하며 시작을 하기로 했다.





tempImageNvVxzd.heic 2022년 '우리나무'에 올렸던 글을 일부 발췌/편집 (*우리나무: 세계 곳곳의 중국 출신 조선족들이 우리말로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는 공간)


올라퍼 아르날즈 (Ólafur Arnalds),

2022년, 그가 또다시 월드투어를 연다고 했다.

올해는 월드투어보다는 유럽 투어에 가까운 스케줄이지만.


그중 눈에 띈 한 곳: Copenhagen, DR Koncerthuset.

2019년, 내가 발렌타인 이브를 보냈던 곳이다.


친구의 초대로 베이징 국가체육장 "새둥지(鸟巢)"에서 MayDay(五月天) 밴드 공연을 본 적은 있지만 그건 그저 우연한 경험이었다.

올라퍼의 공연은 달랐다.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는 뮤지션 보러 갔다, 그것도 나 혼자.


그래서 지금도 기분 좋게 기억한다.

발렌타인 이브를 "올라퍼와 함께" 보냈다고.

1651156816001.png?w=1160&ssl=1 https://olafurarnalds.com/tour-dates/



북유럽 특유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음악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처음 듣는 이름일 수도 있으니, 내가 어떻게 이렇게 이 "덜 알려진" 뮤지션을 좋아하게 됐는지 써보려고 한다. 나만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온 세상에 알려졌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으로.


왜 올라퍼인가?

어떤 올라퍼인가?

아직도 올라퍼인가?





1/3 왜 올라퍼인가?


2013년, 잘못된 직장 선택으로 갑작스레 내린 프랑스 유학 결정.

사직, 시험 준비, 학교 신청, 면접… 합격하고 나서 미친 듯이 영어, 불어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자주 듣던 노래는 노래 어플에서 추천해 주는 "아무 노래"들.


2014년, 유학을 앞두고 한가하면서도 바쁜 백수 생활 중, 언어 교환 사이트로 연락이 된 누군가가 내 음악 취향을 물었다. "아무 노래"들을 보냈더니 긴 침묵 끝에 올라퍼의 노래를 추천받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찾아들었던 올라퍼 음악.

그때 들었던 첫 번째 곡, "Living Room Songs" 음반의 "Tomorrow's Song"이다.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다.


사이사이 "찍-찌이이익-" 문 여닫는 소리를 연상케 하는, 낡은 피아노 발판 누르는 소리가 섞인 듯한 음악, "첫 귀에 반할"만 한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듣다 보니 점차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하루 일과를 끝낸 뒤 아무 생각 없이 듣다 보면 행복하게 차분해지는 그 기분.


떠들썩한 도시 소음에 부대끼다 갑자기 삼림 속 아늑한 나무집에서, 화로에 불을 지피고 흔들의자에 앉아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며, 나무로 만들어진 집 특유의 향 속에서 옅은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땐 레드와인을 한창 즐겼을 때라, 상상 속의 나는 레드와인 한 잔을 들고 있겠지.


2014년 초반엔 아직 외국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단순히 아이슬란드 뮤지션인 올라퍼의 음악을 들으면서 북유럽에 대한 환상을 키워갔었다. 훗날 몇 번 다녀온 북유럽은 상상과 다름없이 평온하고 조용한 곳들이 많았다.



2/3 왜 올라퍼인가?


올라퍼 아르날즈(Ólafur Arnalds)는 1986년 11월 3일생으로 아이슬란드의 Mosfellsbaer에서 태어난 연주가이자 작곡가이다.


벅스에서 소개된 올라퍼의 Some kind of peace 음반 설명을 인용하면: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포스트 클래시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로 여겨진다고 한다. Erased Tapes를 통해 "Eulogy for Evolution", "…And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 거실에서 녹음했다고 하는 개인 프로젝트 "Living Room Songs" 그리고 닐스 프람과의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앨런 바킨 주연의 영화 "Another Happy Day"와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의 무대에도 음악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Instagram: Olafurarnalds


차분함이 담긴 얼굴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눈빛, 표정과 스타일까지 전체적으로 편안한 친구 느낌이 다분하다.


인스타그램 영상과 공연을 통해 들은 목소리는 매력적인 중저음은 아니지만, 수줍음에 살짝 스모키한 여운이 배어 있다.


아이슬란드 억양이 섞여 살짝 어눌한 영어 발음이 오히려 개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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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243371548.jpg?w=1160&ssl=1 2019년 2월 13일, DR Koncerthuset, Copenhagen. 힘들게 찍은 사진, 하지만 올라퍼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3/3 아직도 올라퍼인가?


2018년, 2019년 중국 NetEase 어플로 들었던 음악 Top 10

Playlist에서 빠진 적이 없었으니 아직도 올라퍼 맞다.


2020년부터 애플뮤직 어플을 쓰며 연도별 통계는 받지 않았다. Playlist에 라틴음악과 재즈가 늘어도 올라퍼 음악은 여전히 가끔씩 찾아 듣게 되는 안 질리는 음악이다.


"우울한 행복" 느낌의 "Saman", "We Contain Multitudes".

감성에 젖고 싶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듣는다.


"차오르는 행복" 느낌의 "Re:member" (특히 뒷부분), "Ekki Hugsa".

이유 없이 희망에 마음이 벅차고 싶을 때. 흑백 세계에 무지갯빛 무언가가 스며드는 느낌을 받고 싶을 때. 특히 콘서트 현장 첫 곡이자 마지막 곡이었던 Re:member은 뒷부분만 들어도 차오르는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제일 처음 들었던 "Tomorrow's Song"과 같은 음반에 수록된 "Lag Fyrir Ömmu"는 멜로디도 좋지만 뜻 또한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단어를 바꾸고 어법에 맞춰 위챗 상태 메시지에 써먹기도 했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위챗 지역을 허구로 아이슬란드로 바꿀 때, 난 상태 메시지를 아이슬란드어로 바꾸는 패기를 보여줬다.)


외국 문화 사연이 담긴 "Nyepi"라는 노래도 있다. 아이슬란드 사람이 어쩌다가 인도네시아 명절 이름을 딴 노래를 만들게 됐을까? (난 안다, 콘서트에서 직접 설명해 줬으니.)


피아노 소리를 너무 들었다 싶으면 피아노 선율과 목소리의 조합이 잘 된 "Particles", "Take My Leave of You"…


추천하고 싶은 올라퍼 음악이 30여 개는 되는 듯하다. 음반만 해도 이렇게 많으니.


올라퍼의 노래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Derek Walcott의 "Love After Love".


The time will come

when, with elation

you will greet yourself arriving

at your own door, in your own mirror

and each will smile at the other's welcome,


And say, sit here. Eat.

You will love again the stranger who was your self.

Give wine. Give bread. Give back your heart

to itself, to the stranger who has loved you


all your life, whom you ignored

for another, who knows you by heart.

Take down the love letters from the bookshelf,


the photographs, the desperate notes,

peel your own image from the mirror.

Sit. Feast on your life.



다시 한번 "Tomorrow's Song"을 들으며 했던 상상에 빠진다.


삼림 속 아늑한 나무집에서, 화로에 불을 지피고 흔들의자에 앉아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며, 나무로 만들어진 집 특유의 향 속에서 옅은 미소를 짓는 내 모습.





그리고 4년 뒤, 지금의 나.

이 글을 썼을 때 절대 상상할 수 없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생각지도 못한 타이틀로, 전혀 연관 없던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하고 추억을 쌓아간다.


4년 동안 올라퍼도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정말 많이 했었고,

나 역시, 이미 어른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알게 모르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올라퍼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그 시점의 Top 10을 뽑는다 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시점에서 꼭 공유하고 싶은 곳에 올렸다, 덜 다듬어진 짤막한 글과 함께.


아니, 이 사람들... 무반응이네?


역시 내 최애는 혼자 즐기는 게 맞나 보다.


가끔 이렇게 글로 남겨두고, 나중에 꺼내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노력만 하는 걸로.


(Remark: 상처받은 거 아닙니다!)


Ólafur Arnalds & Talos - "We Didn't Know We Were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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