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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Apr 24. 2023

이승연: The Manuscripts

실낙원 아래로, 신낙원 위로 (2022 경기 생생화화 이승연 작가 평론)





The Manuscripts  

– 

실낙원 아래로, 신낙원 위로


 



글. 조주리 (전시기획, 미술평론)



“매뉴스크립트(Illuminated Manuscripts)”, 작년에 이어 올 한 해 작가 이승연이 생산해 온 이미지의 밀도 앞에서 나는 사어(死語)나 다름없는 그 말을 곱씹어본다.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화려한 컬러의 LED 패널 표면이 새의 깃대로 만든 펜촉으로 양피지에 꾹 눌러쓴 ‘채색 필사본’ 같다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보드라운 양의 살갗이 돌처럼 단단한 디스플레이로 변모될 만큼의 광대한 시간의 격차가 있지만, 수행이 고단할수록 결과물이 아름다워지는 양단의 세계가 어딘지 겹쳐 보였다고 할까. 조밀하게 구성된 평면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평면이기에 앞서 세계에 대한 이승연의 기록 원고이자, 현실의 욕망과 희망, 초월적인 환상과 가상이 투영된 문학적 발광체다.    



심해 밑바닥에서 안개 자욱한 늪지대를 가로지르며, 행성 저편을 향해 쉼없이 걷고, 날고, 헤엄치다 밤이 되면 다시 뭍으로 올라와 암호 같은 말들로 일기장을 채우는 존재를 마음껏 상상해 본다. 다양한 시공의 문화, 종교, 신화적 상징을 혼성적으로 배치하고 뒤섞어 새로운 이미지과 서사를 만들어 내는 이승연의 작업 태도는 여러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작업 제작에 스며있는 공예적인 태도와 제작 방식, 부분적으로 발현되는 자동기술적인 드로잉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굳어진 양식적 특질, SF적 상상력의 시각적 발현 등 이 각각의 특징들이 중첩되어 작업을 복잡하게 읽히도록 한다. 작업이 갖는 외계성은 단지 매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인터’가 지향하는 다층적 역할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그의 작업 태도를 통해 채색필사가를 떠올렸던 것처럼, 누군가는 주술사와 제사장의 면모를, 또 다른 누군가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을 비중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교도적인 크리처(creature)를 고안하고, 극적인 에픽(epic)을 지향하고, 재현적인 시각 언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델토로(Guillermo del Toro Gómez) 같은 여러 환상가들을 얼기설기 이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의 성향과 기질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오랜 시간 세계의 방랑자이기를 자처해 온 작가의 삶과 일상의 행적을 따라가 본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며 한시적으로 정주하고 떠나기를 반복해왔던 유목적 작가 생활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재료와 가공방식, 그리고 이미지와 서사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왔다. 다음 행선지를 기다리는 기착지 위에서도 부단히 쓰고, 그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하루 하루가 모이고, 스스로가 창안해낸 임의적 도상과 상징 기호들이 계열을 이루면서 그만의 세계관으로 빌드업(build up) 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전개된 이승연의 신작 <신낙원도>와 <신낙원서>는 작가의 필터를 거쳐 새롭게 탈색되고 윤색된 현 세계의 모습이자,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와 그림을 덧붙일 수 있는 진행형 필사본이다. 중세적인 의미에서 매뉴스크립트는 수도자의 절대적 신앙심과 신학적 통찰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시각적 서사이자, 당대의 제작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다. 시대가 요하는 장식적 미감, 필기구와 서체, 제책(製冊) 기술과 같은 가시적 특징뿐 아니라, 만든 이의 기질과 미감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외전을 양산하는 것이 필사본이다. 신화와 성서, 역사적 사건의 한 장면을 한 장의 평면에 압축하여 담아내는 일이 채색화가의 과업이라면, 오늘날 작가의 할일은 무엇이든 마음껏 그리고, 지우고, 되살리는 만능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인 디지털 세계에서 마음껏 페인팅을 실험하는 것, 전에 없던 새로운 서사를 개발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작가가 창조한 인공적 ‘씬’(scene)은 재현보다는 상상을, 통합보다는 파편화를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독자/관람객을 이끈다. 그러나 여백 없이 꽉 들어찬 그의 화면은 여러 세계 문명의 상징과 도상이 한데 응집되어 있어 표면의 화려함과 공간의 밀도에 흠칫 놀라게 한다. 오로라 빛을 반사하는 화려한 색면과 빛이 닿으면 녹아내릴 것 같은 투명하고 작은 아크릴 군상들 앞에서, 이내 우리가 가진 시각적 지식지를 적용하거나 개인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금세 인정하게 된다 



오늘날의 코로나에 비견되는 흑사병이 지나간 중세 시대에도 새로운 인쇄술과 그래픽 디자인이 태동하였던 것처럼, 펜데믹 시기에 나온 작가의 작업 또한 시대의 병리와 사회적 불화, 존재의 고독을 양분 삼아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지난 삼 년간 쇠퇴와 멸망으로 점철된 묵시록적 세계관이 미술계를 휩쓴 가운데, ‘새로운 낙원’이라는 표제의 작업이 펼쳐낸 풍경은 작가가 상상하는 세계의 모순적 파편들을 종합해낸다. 선과 악, 죄와 벌, 지혜와 아둔함, 잃어버린 것과 도래할 세계상이 뒤섞여 있는 세상과 그 모습을 꼭 닮은 작업에 대하여, 작가가 ‘신낙원’이라고 명명한 의도가 어디쯤에 있을까. 작가는 하늘과 책장에 그만의 새로운 낙원을 짓는다 말한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형광빛의 달(풍선)과 걸개그림은 점점 뜨거워지는 해수면과 크게 위상을 벌리고, 상승하는 운동감을 빌어 작가가 계시하는 미래의 모습을 실어 보낸다. 얼핏 보면 디스토피아적 이미저리가 지배적인 비관적 작업인가 싶지만, 작업의 서사를 돌아보면 그 속에서도 일관되게 낙관과 명랑, 희망, 아름다움을 희구한다. 소리꾼 이희문의 주문 같은 노랫말 - “세상은 기이하지만 아름다워, 하늘은 어두워도 반딧불이 빛나” 읊조림 속에서 돌이켜 보면 희망과 주술과 제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현대미술의 실천 가치다. 




역설적으로, 올해의 작업은 여행을 통해 발생하던 일상의 탈주가 멈추면서 시작되었다. 창작 방법으로서의 이국으로의 여행은 창작의 지리적 반경을 넓히고, 예술 지식의 지정학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공인된 방식이기도 하지만, 여행과 여행 사이의 공백 기간에 풍부한 작업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글쓰기에서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에 기반한 조각과 퍼포먼스, 영상으로 변주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의 작업은 그저 ‘장식적 차용’이나 ‘특이한 묘사’로 범주화되어 기술되는 데 그치고 말 것 같다. 이승연 작업의 속성이 그러한 통합적 이해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대목이다. 그의 작업을 회화 비평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대적 매뉴스크립트 쓰기의 행위로, 제의적 퍼포먼스로 다시 보고자 하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신낙원도>로 명명한 이승연의 새로운 연작은 근래에 마주하기 어려운 형식의 작업이다. 그의 작업이 갖는 풍부한 서사성과 표현의 상세함으로 인해 현대 회화의 추상화 흐름과 일정한 간극을 만들지만,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장르적 독창성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기이한 책장에서 신낙원도의 다음 챕터를,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을 되찾기를 기대하면서, 함께 흥얼거려 본다. 


“세상은 기이하지만 아름다워, 

하늘은 어두워도 반딧불이 빛나”.



사진 출처: 이승연 작가 SNS 

경기도 안산 김홍도미술관 2022 경기 생생화화 성과발표전 <사이의 언어> 전경 중에서






<The Manuscripts – Under a Paradise Lost and Above a New Paradise> 


Critic: Cho Juri (Curator)



I pondered upon a no-longer-used-concept of “illuminated manuscripts,” facing the density of images produced by Lee Seungyoun this year following last year. This was because I was obsessed with some wild idea that the surface of the colorful LED panel I gazed at was like a “colored manuscript” written on parchment with a pen tip made of a bird scape. There is a wide time gap enough to transform the soft skin of sheep into a stone-hard display, but the worlds of the two extremes where the harder the self-discipline, the more beautiful it gets seemed to overlap. The densely constructed plane is not only Lee’s documentary manuscript of the world let alone a flat plane consisting of lines and planes, but also a literary luminescence projecting real desires and hopes, and transcendent fantasies and virtuality. 


I imagine a living being crossing a foggy swamp from the bottom of the deep sea, walking, flying, and swimming constantly toward the other side of the planet, and coming back to the land at night to fill a diary with cryptic words. My curiosity is aroused by Lee’s attitude of working, which creates new images and narratives by hybridizing and mixing various cultural, religious, and mythical symbols of time and space. Overlaps of all the features make her work complicated in interpretation: the crafty attitude and production method permeated in her work production; drawings of automatism partially expressed; stylistic characteristics solidified through repetitive practice; and the visual expression of sci-fi imagination. The extraordinary nature of her work is induced not simply by a matter of media, but by the multi-layered role which a “painter” aims for. Just as I thought of an illuminated manuscript writer from her style of art, some would find aspects of a sorcerer and a priest, and others would feel that the roles as a storyteller prevailed. 


I might also think of illusionists of different styles including Hieronymus Bosch, John Ronald Reuel Tolkien, Louis Hector Berlioz and Guillermo del Toro Gómez in that her work devises pagan creatures, pursues dramatic epics and seeks for a reproducible visual language. This is because trying to understand an artist’s disposition and temperament still provides important clues. I might also trace her life trajectory and everyday life as she has long claimed to be a wanderer of the world. Her nomadic life as an artist, who moved from city to city and repeatedly settled temporarily and left the place, has naturally led to expanding the diversity of materials, processing methods, and images and narratives. It must have been a journey of building up her own view of the world as she wrote, painted and produced something wherever she was, even on a stopover waiting for the next destination day by day, and her self-created arbitrary icons and symbols came to form seriality. 


Lee’s new works developed throughout this year - New Paradise Painting and New Paradise Bookshelf - are newly bleached and colored images of the current world through her filter, and are ongoing manuscripts where new stories and paintings can be added at any time. A manuscript in a medieval sense is a highly visual narrative based on the absolute faith and theological insight of monks, and a medium that compresses the production skills of the times. It is a manuscript that produces spinoffs depending on the temperament and aesthetics sense of the creators, while touting visible features such as the decorative aesthetics required by the times, writing instruments, typefaces, and bookmaking techniques. While colored manuscript painters had to compress a scene of myths, the Bible and historical events onto single planes, artists in today’s world are given the mission to experiment with painting freely in the digital world - an all-around Palimpsest that freely draws, erases, and revives anything – and develop a new narrative nobody has thought of before. As can be seen from her work, the artificial “scene” created by Lee draws the readers/audience into a new a new phase through imagination rather than representation, and fragmentation rather than integration. However, her pictorial plane packed with no white space is a combination of symbols and icons of various world civilizations to the point of surprising the audience with the splendor of the surface and the density of space. Standing before the flamboyant colored planes reflecting the aurora light, and small acrylic figures that seem to melt when light touches them, we might immediately acknowledge that applying our visual learning or projecting individuals’ inner self is challenging. 


Just as new printing and graphic design were born in the Middle Ages, when the Black Death being analogous to today’s COVID-19 was rampant, outcome of artists that came out in this pandemic era are also the results of artistically nourishing inspirations, that is, the pathology of the times, social discord, and solitude of existence. The scenery unfolded by Lee’s work titled A New Paradise encompasses the world she imagines at a time when the apocalyptic view of the world that boiled down to decline and destruction over the past three years has swept the art scene. What would be the intention of Lee – although it would not have to be clear-cut – in naming A New Paradise for her work that resembles a world of good and evil, sin and punishment, wisdom and dullness, and the image of the world that has been lost and that is to come are topsy-turvy as well as the world itself? She said that she builds her own new paradise in the sky and on the bookshelf. The fluorescent moon (balloon) and hanging paintings, which rise high up in the sky, carry up what she envisions for the future, being driven by the sea level getting increasingly warmer and upward movement going further away up high. At first glance, dystopian imagery seems to prevail over the seemingly pessimistic work, but looking back on the narrative of her work, it is obvious that it consistently seeks optimism, cheerfulness, hope, and beauty. Lee Himun, a renowned traditional Korean singer recited, “The world is strange but beautiful. Even if the sky is dark, the fireflies shine.” The lyric is a reflection on how hope, sorcery, and ritual are the practical values of modern art that have long been forgotten.


Paradoxically, her work for this year began when her daily escape made possible through travel came to a halt. Traveling to foreign countries as a part of creative work methodology is an authorized way to widen the geographical horizon of creation and break down the geopolitical boundaries of artistic knowledge, but abundant work might also pour in during the time of break between travels. However, if she fails to keep up with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and expansion from writing to digital painting to sculpture, performance, and video based on them, her work might end up being categorized and described as “decorative appropriation” or “unique description.” It is paradoxical that the attributes of Lee’s oeuvre is home to elements of different sorts that interfere with or delay such integrated understanding. That is why I propose to revisit her work in the act of writing a modern manuscript and ritual performance, instead of approaching it through the lens of criticism of painting. 


Lee Seungyoun’s new series of A New Paradise is a form of work that has been rare to find in recent years. It creates a certain gap with the abstract flow of modern painting due to the rich narrative and detail of expression in the work, but it also generates the indescribable originality of a genre. I would hum myself with expectation for the next chapter of A New Paradise on her uniquely created shelf as well as for the memories of a lost paradise to return: 


"The world is strange but beautiful. 

Even if the sky is dark, the fireflies shine."








https://www.youtube.com/watch?v=0Wn_PurHPBw&t=15s

https://www.facebook.com/reel/68246778357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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