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25년을 기어이 버티고 여기까지 온 우리에게.
올해도 작업, 기획, 생계, 관계, 전시, 지원서, 예산 집행과 그 사이에서 기적 같이 버텨낸 나의 몸에게도 박수를 보내봅시다. 각자 나름의 12개월을 건너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번 설문은 2025년의 미술계 근황과 전망을 나누는 동시에, 우리 각자가 올해 어디까지 갔다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건졌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되돌아보는 작은 놀이입니다.
답변은 12X12 연말 모임 1부 토크 2025 날 위한 문화예술 앙케트 결과 공유를 위해 사용됩니다.
따뜻한 잔 한 잔 들고, 가볍게 시작해볼까요?
※ 통계를 위한 처리 사항입니다.
※ 제공된 정보는 오직 통계 자료로만 사용되며, 무기명 처리를 원칙으로 합니다.
Hello!
To us, who somehow managed to endure all the way through 2025.
Let’s also give a round of applause to our bodies — the ones that miraculously held on through work, planning, livelihood, relationships, exhibitions, grant applications, budget execution, and everything in between. Each of us has crossed our own twelve months, and that alone is no small feat.
This survey is a lighthearted exercise: a way to share the current state and outlook of the art world in 2025, while also reflecting on how far we each traveled this year, what we lost, and what we gained.
Your responses will be used for sharing the results of the 12X12 Year-End Gathering Part 1 Talk: 2025 Cultural & Arts Questionnaire for Us.
So, grab a warm drink and let’s begin gently.
※ The surveys are for statistical purposes.
※ All information provided will be used solely for statistical data and will be processed anonymously.
앙케트 후기
2025년 연말에 수집된 답변들을 2월에서야 다시 꺼내봅니다. 약 사흘 동안 총 115명 이상의 미술계 동료들이 대가 없이 설문에 참여해 주셨고, 그 결과를 지난 12월 12일 저녁, 연남동 모처의 연말 모임에서 공유한 바 있습니다.
연말연초에 쟁쟁한 전문가들이 내리는 미술계 진단과 전망 대신, 창작 일선에 계신 현장 작가들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고 정직하게 기록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물론 소규모 앙케이트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통계적 진실을 대표한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안에 일말의 과장과 허수, 오류가 있겠으나, 그만큼의 뾰족한 사실과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을 테니, 질문을 정리하고 답변을 추수하는 과정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질문 선정은 처음 앙케트를 기획한 JR과 함께, 명민함이 남다른 큐레이터 이연지, 그리고 작가 최가영의 첨삭과 의견을 더해 이루어졌고, 응답자에 관한 간단한 인구 구성 항목과 주요 장르, 한국의 현 미술계에 대한 작가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4지선다 방식과 5점 척도의 틀을 벗어나, 부러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여러 보기를 두었습니다.
더불어 객관식 문항에 담기 어려운 개인의 독자적 인식과 개성적 의견을 수합하기 위해 설문 마지막 파트에는 주관식 문항을 구성하였습니다. 일종의 열린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각각 1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주관식 답변이 본 앙케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고, 예술가다운 시니컬한 유머와 귀여운 엄살, 그 안에 담긴 양가감정, 즉 매 순간 갱신되고 서로 뒤바뀌는 희망과 절망의 코드로부터 무척이나 공감하는 바가 컸습니다. 미러링 그 자체!
대체적으로 응답자들은 한국 문화예술 생태계에서의 다양성과 독창성 부족, 경쟁과 생계 문제, 관행적인 시스템의 경직성 등에 깊은 관심과 문제 의식을 표했습니다. 근래에 볼 만한 전시가 별로 없고, 전시 기획에 관한 집단의 기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고평가와 외부의 저평가 사이의 간극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내년, 지금 시점에서는 올해 더 나은 지원 체계와 창조적 작업의 기회, 건강한 작업 환경을 기대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설문 결과만 놓고 보자면, 미술계 내부의 언제나 반복되는 경쟁적 풍토와 개인의 취약함, 이를 부추기는 예술행정과 창조적 기획의 부박함, 사상과 철학의 부재 등 부정적인 현실 인식이 두드러집니다. 그럼에도 무너진 예술적 자긍심과 생기를 부여잡고자 하는 마음을 행간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한편으론 지금의 생태계가 불만족스러운 환경이지만, 그것을 나서서 내파하거나 집단적으로 저항할 만한 계기가 있지도 아니하거니와,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사실 어려운 문제일 거란 생각도 듭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문화예술 행정이 견인하는 각종 보조 장치와 기금 제도에 기대어 사는 삶에 점점 길들여지고, 그 속에서 관성이 붙기 시작하면서 왠지 무뎌지고 나태해지는 것을 모르지 않잖아요. (저요, 저!) 게다가 무엇이 좋은 작업인지 규명하기도 힘들고, 작업이 좋다면 그걸로 다 괜찮은 건지, 시대가 원하는 추구미에 나를 맞춰야 하는지, 이것저것 참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이제 달포만 지나면, 불현듯 봄이 시작되는 듯한 초조함과 긴박감을 다들 느끼시겠지요. 기나긴 곤궁기 끝에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볼 용기를 쥐어짜내고, 삶의 전선으로 직진하겠지요. 그러나 예술 아닌 것들로 무너진 예술의 시간을 살려냈던 무수한 날들처럼, 올해 또 각자만의 장르를 한 번 개척해 보는 것으로 해요.
작은 붓통에 찰랑이는 카키 그레이 컬러의 지성과 잔뜩 예열된 주홍색 감각을 뒤섞어, 인도 사람이 만들지 않은 인도 영화 내지는 중간에 제작 투자가 끊긴 바람에 지리는 예술 영화로 방향을 틀게 된, (원치 않았으나) 용감무쌍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혼종을 기대하며, 모든 동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건투를 빕니다. 잔뜩 빌어요.
설문 링크 : https://docs.google.com/forms/d/1i85xbJgCha1yCKmaPTQ4ZolrkrcQrkO5-ex1rSolCDQ/edit#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