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종 작가론 (작가 의뢰, 출판 미정)
불순한 순종, 상상의 쟁투
전후 세대 혹은 베이비 부머(Baby Boomer)세대로 출생한 이순종은 195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고,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청년기와 대학생활을 경험한 작가다. 군부정권이 장악했던 엄혹한 시대의 냉기와 종교적 교리 안에서 자라난 성장기를 회고한다면, 조각가가 되기로 한 이순종의 선택은 다소 별나다. 별났을 것이다.
남성, 아버지, 성당, 군부대, 국가라는 견실한 막으로 결계가 쳐진 안온한 세계에 거처하면서도 늘 성채 바깥의 세계를 간절히 열망하는 일, 일상에서 경험한 작은 미움과 배척의 긴 연원들을 거슬러 상상해 보는 일, 화사한 순결함 배면에 있는 유혹과 방종에 마음을 빼앗기는 길. 상상만으로 세계와 대극하며 불화에 이르는 일이 점차 익숙해진 작가에게 특히 한국 사회는 고통, 불안, 두려움의 발원지였으리라. 작가에게 주어진 예민한 통각과 항진화된 공감 능력은 순종하기를 바라는 세상의 요구 속에서 자꾸만 불순한 존재 되기를 촉진시킨다. 그러므로 이순종이 작가가 된 것은 당위에 가깝다. 적어도, 작업 안에서 순종은 불순하다. 그러한 시선이기를, 불순한 것들을 눈 밝게 알아보기를 자처한다.
졸업 후 작가의 삶을 복기해 보면, 드라마적 요소가 많게 느껴진다. 그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격변기인 80년대 내내 고국으로부터 해리된 삶을 살았다. 유신의 종말과 함께 민주화와 세계화의 열기가 뭉근하게 지펴지기 시작하던, 총 천연의 컬러와 속도감으로 돌아가는 만화경과도 같던 서울을 떠나 황량한 남부 텍사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이국의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2막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국내로 돌아와 토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던 1990년과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좇아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던 1976년 사이에는 약 14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한다. 외딴 곳에 대한 갈망과 귀향 본능이 쟁투하기에 상상 이상으로 긴 시간었을테다.
시대의 한 허리춤을 건너뛴 듯한 이러한 시공간적 간극은 작업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내외부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분명한 긴장감, 이로 인해 내부의 일상을 충실히 견뎌낸, 혹은 크고 작은 변화를 목도했던 사람들의 감성 속에는 ‘자연화’되어 좀체 인식될 수 없는 이상한 ‘포인트’들을 발견해 내도록 하는 한 축이기도 하다. 귀국 후 작가가 호명한 것은 이국에서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기억에 대한 충실한 반추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공간에 대한 적극적 부재증명이었고, 그 시선과 방식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으로 곧장 파고드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로서 본격적인 행보- 주로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통한 신작 발표-가 시작된 90년대 이후 이순종은 맹렬하게 수분을 빨아들이는 마른 화분 속의 식물처럼 그가 마주한 시대를 흡수하고 소화해 나갔다. 청교도적인 미국 소도시에서의 단순한 삶과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서울의 삶 속에서 한국의 재래시장과 거리에서 음란함을 느꼈다고 한 대목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의 틈 바구니에도 용케 살아남은 전통 혹은 그것의 변용들, 싸구려 물건들 사이로 발광하는 키치한 미감, 근현대와 동서양의 편린들이 마구잡이로 뒤엉킨 어떤 풍경에 대한 작가적 서술일 것이다. 이와 함께 미8군에서 젊은 미군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쳤던 경험 또한 이후의 작업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다.
일상적 사물과 풍경에 어린 귀기와 색기를 본능적으로 포착해내는 이순종의 시선은 이내 특정한 형식으로 외연화되어, 다양한 작업 방식으로 나타났다. 미술의 언어가 점차 세계화 되고 다원화 되기 시작한 90년대 당대 미술계의 풍토에서 이순종의 작업은 친절하고 아름다운 대신, 그 낯선 기묘함과 서늘한 에로티시즘으로 인해 의미있는 환대의 대상이었다. 단정하게 갈무리된 모양새 대신, 어딘지 마감이 덜 된 것 같은 비정형의 설치 방식과 불친절한 작업의 단서들은 보는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90년대를 거치며 해체주의적 미술 실천을 공인된 미감으로 제도화 했던 시대적 궤도에 안착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귀국 후 10년이 넘도록 이순종의 작업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다수의 전시에 초대되었고, 작업을 쏟아내는 속도와 함께 매체 구분을 가볍게 부정하는 듯한 대담하며 다종다기한 시도들 또한 인상적이다. 어딘지 날이 서 있어 아리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불순한 순종’ 그 자체를 육화시키는 이순종의 작업들은 제도권 미술 공간과 바깥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그렇게, 지금까지의 작업 이력을 구축해 왔다. 드로잉과 페인팅, 설치, 사운드와 텍스트, 영상, 퍼포먼스로 변주되는 놀라운 확장성, 그리고 급작스러운 단절과 신작으로의 도약하는 창작 주기율은 작업의 메시지나 철학과는 별개의 틀에서, 어느덧 이순종 작업의 특이성을 서술하는 어떤 부분이 되었다.
변화하는 외연과 변치 않는 고갱이
이순종의 작업이 지니는 형식미와 메시지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근간을 이루는 요소는 작가 자신의 생의 철학을 통해 구성한 에로스와 에로티시즘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해석에 있다. 활발했던 작가 활동만큼이나 작가는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해제를 작업 노트와 에세이, 때로는 학구적인 양태의 글쓰기를 통해 종종 소명해 오곤 했다. 온전히 작업 세계를 이해 받지 못하는 것, 특정한 주제나 형식적 카테고리로 틀 지워지는 것, 예컨대 페미니즘 미술 혹은 조각이나 설치작업, 에로티시즘이라는 키워드로만 단순 획정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마저 그간의 작업 철학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하는 태도는 좀더 총체적이고 철학적인 이해와 자기 공감을 구하는 갈급함으로 이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반복기술하는 소아적 세계관을 넘어서기 위해, 솔직한 자기 분석에 기반한 짧은 노트에서부터 에로티시즘이라는 문화 담론의 거대 역사 안에서 스스로 해왔던 작업의 좌표가 어디 쯤에 자리하는지, 그 근원적인 출발점과 최후의 지향점을 헤아리고자 한 작가적 글쓰기가 그러한 노력의 한 증표이다.
2007년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던 학술 심포지엄의 초청연사로서 이순종은 당시에 에로티시즘에 대해 스스로의 관점과 해석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서구 신화와 문화이론에서 가능한 일반적 해석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감수성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깨비 설화를 언급하였다. 이성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의 감성과 신경증적 에너지를 에로스의 한 특징으로 보고, 전통 무속 신앙에서의 발견할 수 있는 유사한 캐릭터로서 도깨비를 에로스와 연결시킨 대목이다. 은연 중에 샤머니즘을 여성적 세계관으로 상정한다면, 생명과 생멸을 주관하는 에로스 신을 작업을 이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에로스는, 큰 범주에서는 이해불가능한 창조의 에너지이고, 개인의 범주에서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신명, 신기, 미움, 혼란, 히스테리, 치유. 그 모든 것으로 다가온다.
작가적 상상력에 기반한 이러한 해석은 작업의 주요한 모티프 중의 하나인 군대에 대한 접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파시스트적 집단 이미지로서 군대의 이미지를 배격하고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팽팽하게 압축된 집단적 성적 이미지로부터 공포 대신 순정한 쾌감을 느끼는 부분이나, 남성적 위계와 서열의 문화로부터 외려 우스꽝스러움과 에로틱한 엑스터시를 감지하는 감성은 전혀 다른 방식의 페미니즘이자 안티-페미니즘을 동시에 오가는 작가적 양면성, 혹은 이순종 작업의 특이점이기도 하다.
한국적 일상에 내재된 억압과 통증, 그것들이 작은 틈으로 비어져 나온 단서들을 예리하게 발견하고, 작품으로서 발화하고자 하는 작가적 감수성은 여러 결로 드러난다. 때로는 전통적인, 혹은 지금 이 시대에 지배적인 여성 이미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체와 변용의 방식으로, 또는 남성성이 과잉 응축된 군대. 혹은 군대 이미지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탐미의 시선과 조형-놀이로 응수함으로써, 작업 읽기의 코드화를 방해하고, 해석을 지연시키게 한다.
결국 작가에게 있어 에로티시즘은 성애 자체의 발견과 해석, 독창적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지극히 일상적이거나 자연적인 어떤 상태로 인식되어, 결국은 망실되고만 우리 안의 범-불안장애, 뜻 모를 통증들, 타자에 대한 불편함.. 이것들의 이면에 있는 반-기억들을 다시금 야릇하고 발작적이며, 경우에 따라 누추하고 기이한 사물들의 조합을 빌어 현실로 소환하게 된다.
2017년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롭게 쓰여진 작가 노트를 전해 받았다. 짧은 글을 읽고 이내 가슴이 수런거렸다. 오래동안 작업을 해온 작가의 생의 철학을 온전히 공감하기에 너무도 미욱한 탓이었다. 그의 시어들은 분석의 대상이기보다는 아픔 끝에 토해놓은 탄식, 그리고 결연한 희망처럼 쓰여졌다. 이순종은, 회상과 전망을 동시에 담은 글의 말미에서 터지기 직전의 구멍에 날카로운 침을 놓아, 바람을 빼어 헐렁하게, 허술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의식을 사로잡았던 터질 듯 탱탱한 이미지들 내부의 격정과 바람은 물렁하게 무너지고, 이내 잔상으로 남는다.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끼를 발산하는 에로스, 음란하고 변칙적이고 저항불가능한 그 기운에 붙들려 온 연유는, 그 만큼의 불안과 두려움 때문.
이순종은 세상의 옹저(癰疽)를 터뜨리고 싶다 한다. 날카롭게 찌를수록 크게 파열하지 않고, 피식 바람이 빠진다. 기혈이 독에 막혀 기육과 골 사이에서 발생하는 종기들. 아픔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침술은 어쩌면 지금의 이순종에게 절실한 작업 방식일 것이다.
바람 덩어리를 좇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제 덩어리의 분자들을 담담하게, 어디론가 흩어뜨리려 하는 걸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무심히 찌르고 벌려, 다시 물집이 아물고 새살이 차오르게. 천천히 그렇게 옹저 위를 지나갔으면 한다.
도깨비처럼. 무녀처럼. 한 때는 새색시였던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