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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앤 Oct 15. 2019

워킹을 그만두고 다시 맘으로

직장과 육아 사이, 균형 있는 삶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결혼 후 나의 네 번째 직장이었다. 결혼 13년 차, 초등 5학년과 3학년인 두 딸의 엄마인 나는 다시 전업주부가 됐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이의 여름 방학을 앞두고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할 때만 해도 일이 정말 하고 싶었고, 일도 나름대로 즐거웠는데. 일과 가정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느낀 순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후회할 만한 대단한 직장이 아니었기에 쉽게 그만둘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즐거움, 월급의 달콤함도 잠시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처음 직장을 그만둘 땐 무척이나 힘들었다. 경제적 부담감도... 남편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몇 번째 전업 맘과 워킹맘 사이를 갈팡질팡 하다 보니 남편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니 좋았겠지만. 이젠 알아서 하란다. 반복의 힘이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일이 싫어서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워커홀릭인 데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있다. 체력도 멘탈도 나쁘지 않은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유독 약해진다. 집에 있어도 특별히 잘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가 집에 있기를 바랐기에, 나는 늘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한 듯하다. 나의 결핍이 내 아이의 결핍이 아니길 바랐다.


어린 시절 나는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불 꺼진 어두컴컴함과 적막이 흐르는 우리 집. 그 외로운 공간에 홀로 들어서던 순간의 기분, 열쇠를 잃어버린 날이면 집 앞을 서성이며 막막해하던 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엄마가 문을 열어주던 그 순간, 내 얼굴과 온몸을 덥히며 지나가던 그 훈훈한 온기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겐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다.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었구나. 잿빛 우리 집과는 달리 불이 켜진 친구네 집은 온통 노란색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생각한 내가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끔찍이 싫었다. 일하는 엄마를 보며고 자라서인지 집에서 살림만 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참 바지런히 살았다. 


집에서 일하며 아이도 잘 키우는 게 인생의 목표였는데, 두 가지를 다 붙잡고 있기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일도 육아도 제대로 하고 있는 느낌이 없었다. 집에 있다 보니 아이 친구 엄마들과 마실도 다녀야 하고, 어지럽혀진 집 안 청소에 때 되면 밥하느라 일이 뒷전이 되기도 했다. 가끔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일할 공간이 필요했다. 출근을 결심한 계기다.


아침 9시 출근과 6시 퇴근. 풀타임 근무는 사실 자신 없었지만, 초등 5학년 딸아이가 괜찮다고 하기에 용기를 냈다. 그렇게 반년을 넘게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8시 무렵에 함께 나와 회사로 향했고, 아이들도 그럭저럭 잘 적응하는 듯했다. 겨울 방학엔 아침 일찍 보온도시락을 싸서 식탁에 차려두고, 자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출근했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아이들 방학 생활 패턴이면 점심 한 끼만 해결하면 되었다. 저녁은 퇴근 후 8시쯤 먹었다. 잘 지내는 듯 크게 문제없어 보였지만 아이들은 집안에 방치되어 있었고, 숙제는 대충 했으며, 늘 배고파했다. 남편은 늘 바빴고, 나는 늘 피곤했다.


칼퇴근은 왜 눈치가 보이던지, 퇴근길에 차는 왜 이리 막히는지. 아이들은 다녀보지도 않은 학원을 왜 이리도 싫어하는지. 거기까지만 해도 버틸만했다. 한 달이 넘는 방학은 정말이지... 겨울방학은 추워서 외출할 일도 별로 없어 만화책과 영화로 시간을 때웠는데, 여름방학은 답이 없었다. 아이들 데리고 수영장이라도 한번 가야 하고, 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서점 나들이도 하고 싶고. 나도 어쩌면 아이를 핑계 삼아 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벌써 퇴사 후 3개월이 훌쩍 지났다. 집으로 돌아온 내가 사실 아이들에게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이 좋아? 하고 물으니 둘째 딸은 엄마가 간식 많이 챙겨줘서 좋단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거 하나는 잘 챙기긴 하지. 그렇지만 사춘기가 시작된 큰딸은 반갑지 않은 잔소리꾼의 등장으로 가끔 혼자 있고 싶단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고 시큰둥한 답을 내놓았다. 그래 안다 네 마음도.


직장을 관두기로 한 건 결정적 계기는 최근에 책에서 본 이 문장 신경 쓰여서였다.

아기는 품에서 떼지 말고, 유아기에는 손을 떼지 말고, 소년기에는 눈을 떼지 마라.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떼면 안 되는 시기였구나. 아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엄마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아직 엄마를 찾고 필요로 하기에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기로 했다. 다시 직장을 다니고 싶은 마음은 이젠 접었다.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컴백을 반기는 눈치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를 부르며 배고파를 외쳐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예전과 다르게 즐겁게 들린다. 아이가 떠드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가끔은 나를 미치게도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이 애틋한 시기를 아깝게 보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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