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관심병사가 될 수 있다.
관심(關心)을 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 사이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한 래퍼의 가사처럼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너와 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물이나 혹은 집단이 될 수 있다.
군대에는 관심장병이 있다. 관심장병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관심병사 뿐만 아니라 관심간부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심장병은 병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리자인 간부라고 해서 똑같이 고충이나 힘든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티를 내지 않을 뿐 겉으로 괜찮은척하는 간부들이 생각보다 많다.
어디든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건 어렵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속에서 집단과 하나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군대라는 조직과 사회의 큰 차이는 자발적 의사에 있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일반 병사들은 헌법에 기초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끌려온 것이지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게 아니다.
약 7년간 지휘자(관)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관심장병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과거에는 A, B, C등급으로 나누어 관심에 등급을 매겼지만 지금은 도움과 배려 두 가지 등급으로 개편되어 관리하고 있다. 판단에 있어 일정 기준은 있지만 주관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부대마다 선정기준은 다소 상이할 수 있다. 경중을 따지고 보면 도움 등급이 더 주변 관심이 필요한 장병이다.
우울증을 겪은 A 이병
금요일 오후엔 전입신병이 왔다. 긴장된 모습에 더블백을 메고 행정반에 앉아 있으면 한 명씩 면담을 했다. 가끔 어찌 된 영문인지 면담 중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괜찮아, 울지 마"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도 눈물이 납니다."
그냥 흘리는 눈물이라곤 했지만 뚝뚝 떨구는 눈물을 보면 본인만의 사연을 툭툭 털어 보내려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대부분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면담 중 이유 없는 눈물을 보였다.
A 이병은 동성애자였다. 심지어 친척 남동생을 좋아했다. 사춘기를 지날 때쯤 본인의 성향을 알게 됐고, 자기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지내왔다. 그런 남 모를 고민이 쌓이고 쌓여 군대에 입대하게 됐고, 표출하지 못하는 속앓이는 가슴속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우울증을 만들었다.
이런 친구들은 군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 본인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관심을 주어야 할 주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 아쉽게도 A 이병은 현역복무부적합(현부심)대상자가 되었다.
조폭 B일병
당직근무를 서고 퇴근 후 단잠을 자고 있던 일요일 오후 4시, 전화기가 울렸다.
군대에서 무소식은 희소식이다. 늘 비(悲)소식은 슬픈 예감을 동반한다. 예감은 적중했다.
"하..중댐, 큰일 났습니다. B 일병 손목 그었습니다. 빨리 부대 들어오십시오"
조폭 출신 B 일병이 손목을 그었다. 사회에서 운동을 했거나 위계질서가 뚜렷한 집단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은 '모 아니면 도'다. 정말 군대에서 잘 적응하거나 혹은 아니거나.
B 일병 평소 행실을 보면 너무나도 잘했다. 특유의 조직생활 노하우?로 윗사람에겐 깍듯했고, 후임들에게는 정말 잘해주는 병사였다. 하지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B 일병이 사고를 쳤다.
급하게 부대에 들어가 상황 파악을 해보니 다행히 자살시도가 아닌 단순 자해소동이었다. 의무대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있는 B 일병과 면담했다.
"중대장님, 전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너무 힘듭니다. 화가 나는데 뭘 때려 부술 게 없어 제 몸에다 그랬습니다."
B 일병은 어린 나이지만 사회에서 나름 직책과 직급이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에선 화나면 때려 부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지만 군대라는 울타리가 자기는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군생활을 잘할 수 있는데 또 군생활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의 심리는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모순적인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날 저녁부터 난 헌병, 기무, 상급부대 인사담당관들에게 시달렸다. 사전에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몇 달 동안 질책을 받았다. 억울한 면도 많았지만 직책에 따른 책임도 감수해야 했다. 온갖 보고서와 야근이 나를 반겼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졌지만 대부분 나에게 관심 주지 않았다. 가끔 생각나는 인생멘토 1소대장 남상사님이 술잔을 기울여줄 뿐이었다.
차후에 잘 해결됐지만 B 일병 또한 현역복무부적합(현부심)을 하고, 사회로 내보내졌다. 현부심을 하는 당일날 B 일병만이 나에게 관심을 주었다.
"중대장님, 괜히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B 일병의 진심 어린 마지막 인사가 그간 모든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작은 관심이었다.
PPT자료를 만들다 보면 서식이나 도형을 참고한다. 참고한 서식에서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 무엇보다 색깔 톤을 맞추기 어렵다. 스포이드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색깔을 따온 다음 주변 색과 맞추는 작업이 추가로 필요하다.
정착된 집단에서 누구나 색깔을 맞추긴 어렵다. 한편으론 자신만의 색깔을 조금 변색시키고, 새로운 색을 맞춰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적응하고 있는 집단이 나랑 운 좋게 맞을 뿐, 우리는 누구나 관심병사(간부)가 될 수 있다.
불교에는 마음의 본성을 본다는 관심(觀心)이 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며 고충 또한 나누면 반 혹은 그 이상이 된다. 마음을 보는 관심(觀心)을 갖고, 관심(關心)이 필요한 다른 이에게 PPT의 스포이드 도구 같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되어보는건 어떨까?
다만,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이고,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다.
인류의 불행 중 상당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행위에서 비롯됐다.
* 출처 : 언어의 온도 - 이기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