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과거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새벽 2시였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였다. 그러면 아버지보다 나이 어린 엄마는 큰 소리에 잠에서 깨 눈을 껌뻑이며 나오던 나를 막고 안방에 꼭 있으라 얘기한 후 고개를 숙이고 혼자 나가 아버지가 흔드는 팔에 꼭 그녀의 몸을 대주어야 했다. 몸에 수도 없이 많은 멍 자국. 그 자국은 엄마를 대변했다.
“죄, 죄송해요. 나 아파. 미안해요.”
엄마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아버지와 결혼하시면서 한국의 국적을 얻었으나,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의지할 곳은 가정밖에 없는 결혼이주여성이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와 나에게 꼭 술을 드시고 오셔서, 자신의 손을 흔들어댔다. 나는 물론 술만 드시고 온 건 아닌 것도 알았다. 또 부천에서 영등포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영등포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았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영등포를 들리고 집에 오셨다.
“거래처 사람들이랑 미팅하고 왔더니 처자고 있어? 일을 누구 때문에 하는데. 제기랄.”
나는 안방 문을 살짝 열고, 엄마와 아버지를 지켜봤다. 거래처 사람들과 미팅이라, 그것 또한 거짓말인 것을 분명히 알았다. 나는 참 많은 것을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그리고 무방비로 엄마는 맞았다. 맞고 또 맞고, 거의 녹초가 될 때쯤. 아버지는 또다시 ‘제길’을 외치며 본인의 침상으로 향하셨다. 나는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셨을 때가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해도 저녁 9시였다. 그래도 그때까지 엄마와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온 가족이 저녁을 한 상에서 함께 먹었다. 차려진 것은 별로 없었으나 나는 오히려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웃기게도 그 감사도 밥 먹기 시작한 이후로 공포로 바뀌었다. 땡그랑.
“시은아, 아빠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젓가락 좀 줘라.”
나는 주방으로 가서 새 젓가락을 들고 아버지에게 건넬 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시은이 손이 참 곱네. 누굴 닮아서 그러지.”
동시에 내 손을 쓰다듬으셨다. 나는 그 순간 얼어버렸다.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엄마를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더 밥을 뜰 수조차 없었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시길 바라며 일 초, 이 초 시간을 셈했다. 그 시간은 천천히, 느릿느릿 흘렀다. 아버지가 식사를 다 한 것처럼 보였을 때 비로소 나는 안심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시은아, 아빠 술 한잔하게 거실에서 술 좀 따라라."
별의별 말이 목구멍 밑까지 차올랐다. 아마 지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욕이었으리라.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TV를 틀고 술을 그의 식도로 부었다. 또 그의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내 어깨는 곧 안주였고, 아버지의 손 받침대였다. 시간이 흘렀다. 시간에 따른 아버지의 체내 알코올 농도와 안주의 수위는 올라가는 2차 함수처럼 급상향을 그렸다. 엄마는 뭔가 불안했는지 내 옆에 붙어서 내가 아버지에게 술 따라드리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시은아 술 더 따라라.”
“네, 아버지.”
“제길. 세상이 개 같아서, 못 살겠다. 시은이라도 없었으면 어쩔뻔했냐.”
나는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내 허벅지에 그의 손을 올려서 쓰다듬기 시작했다. 엄마가 그때 큰소리를 외쳤다.
“시은 아빠, 하지 마. 안 돼요. 안 돼”
“뭐? 아빠가 딸 좀 예뻐하는 게 안 돼? 또 술맛 떨어지게. 옆에서 난리를 치네. 짜증나게.”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 머리채를 붙잡힌 채 안방으로 끌려들어 갔다. 몇 번의 ‘퍽’하는 소리와 신음. 그리고 아버지의 욕하는 소리. 나는 귀를 막고,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렇게 30분 후 아버지는 속옷만 걸친 채 안방을 빠져나왔고, 나는 집 밖으로 도망쳤다. 방이라고는 안방밖에 없기에. 멀리, 또 멀리 뛰었다.
그의 손이 내 허리, 머리, 어깨, 허벅지에 닿을 때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엄마의 어깨를 세게 누르면서 겁탈하던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고, 내 허벅지를, 손을 쓰다듬던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또 아마도 집에는 제대로 주지 못한 돈을 딴 여자에게 주고, 그 여자의 몸을 쓰다듬던 아버지의 그 망할 놈의 손. 그게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루는 그가 나에게 말했다.
“누나, 우리 주말에 쉴 때 서울 나들이 갈래요? 사귀기로 했으면 함께 데이트해야죠. 헤헤.”
두려웠다. 나의 기억이, 과거가 나를 두렵게 했다. 하지만 ‘함께’라고 하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주었다. 동시에 그에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예쁜 향이 났고, 그 순간 나는 두려움을 잊은 채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번 주 토요일 3시에 부천역에서 봐요. 코스는 내가 계획할게요.”
해맑게 웃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데이트 당일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부천역에 도착했다. 부천역 마루광장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시끄러웠고, 그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