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의 엄마
유난히도 그는 ‘특제’라는 발음을 강조했고, 금방 음식이 준비됐다. 나는 크라우트가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 시은 누나 핫도그 좋아하는지 안 물어봤네. 좋아해요?”
“네! 엄청 좋아해요. 끼니를 잘 못 챙기는 편인 데다 샌드위치나 빵류를 좋아하니깐요.”
“잘됐네요. 미리 못 물어봐서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편하게 먹겠다. 그죠?”
그의 따뜻한 마음에 행복을 느꼈다. 중학교 이후 처음 느껴보는 안정감이었다.
“누나 혹시, 핫도그 어원 알아요?”
“아니. 잘 모르는데….”
내가 우물쭈물하니깐 그가 바로 얘기를 이었다.
“핫도그가 미국 음식이긴 한데, 사실 독일에서 유래했거든요. 프랑크푸르트 지방에서요. 그래서 독일식 이름이 프랑크푸르터예요. 근데 이게 1860년대쯤 미국으로 왔단 말이에요. 미국에서 이 소시지를 끼워 먹는 빵을 보고, 사람들은 소시지를 닥스훈트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 강아지랑 색깔도, 길쭉한 모양도 비슷해서요. 어느 날 한 신문 만화가가 핫도그 안에 있는 닥스훈트를 보고는 닥스훈트 스펠링을 몰라서 핫도그라고 표기했대요. 그리고 지금까지 핫도그라고 불리고요.”
나는 그 얘기를 듣는 내내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새로운 매력이었다. 자연스럽게 프랑크푸르트의 풍경이, 미국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먹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의 말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상에 그만 나는 빵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너무 재밌어요. 별로 웃기지 않은 얘긴데도 재밌어요.”
“어? 누나 나한테 되게 잘 웃어주는 거 알아요?”
“네…? 아…, 원래. 사람….”
“괜찮아요. 누나 당황한 모습 되게 귀여워요.”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그가 느꼈는지 그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누나 처음 봤을 때 생각나요. 머리는 높게 질끈 묶고 있었고,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앞치마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엄청 순수한 매력을 느꼈어요. 예쁘더라고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 누나 보면 행복해요.”
나는 칵테일 잔을 든 상태로 그대로 눈을 내렸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괜찮아요. 누나 예쁜 사람이잖아요. 내 앞에서는 괜찮아요. 기쁘면 웃고, 슬플 땐 울어도 좋아요. 내 앞에서는….”
그 말에 나는 울어버렸고, 나란히 앉았던 탓에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포갰다. 그날 밤은 그냥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 보니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이후 기억이 별로 없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집에 들어와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여태까지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진 것만 같았다. 24년간 겪은 모든 아픔이 그의 말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헤어지기 직전 나눴던 대화만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누나, 나 어깨 넓어요. 언제든 기대요. 든든하게 누나 옆에 있을게요.”
“좋…, 아…, 요.”
좋아요, 라고 3글자를 말하는 데 울먹이고 또 울먹여서 10초가 넘게 걸렸다. 울기 시작한 이후로 나의 기억에 있는 것은 그 대화뿐이었다. 하늘도 새로운 삶의 출발을 축복하듯 어두운 새벽이 끝나고 새로운 날의 해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사귀기’로 서로 약속하고 선후배가 아니라 연인으로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관계는 삐걱거렸다. 그는 굉장히 체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함께하는 시간 내내 그는 나의 체온을 그의 온몸으로 느끼길 원했다. 일하는 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장과 손님들의 눈을 피해 손으로 허리를 감싸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 나름 장난이었을 수는 있었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춘의동 인근에 있는 공장지대에서 일하셨다.
“야, 이년들아. 애비가 일하고 오면 적어도 밥을 차려놓든가, 인사를 제대로 하든가 해야 할 거 아냐? 집구석이 개 같아서.”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새벽 2시였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였다. 그러면 아버지보다 나이 어린 엄마는 큰 소리에 잠에서 깨 눈을 껌뻑이며 나오던 나를 막고 안방에 꼭 있으라 얘기한 후 고개를 숙이고 혼자 나가 아버지가 흔드는 팔에 꼭 그녀의 몸을 대주어야 했다. 몸에 수도 없이 많은 멍 자국. 그 자국은 엄마를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