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과의 만남
‘내 이름은 김시은이야. 맞아. 분명 나는 김시은이야.’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김시은 씨! 김시은 씨! 손님 왔는데 서빙 안 하고 뭐 해요?”
사장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나는 화들짝 놀래 급하게 손님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손님, 메뉴판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요즘 따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일할 때나, 공부할 때, 밥 먹을 때 그 어느 순간을 가리지 않고. 아마도 얼마 전 겪은 그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두 달 전쯤이었다. 최악 같던 삶을 더 최악으로 만든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나와 함께 부천역 인근에 있는 A 막걸릿집에서 서빙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라기보단 아마 악마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친구가 처음으로 A 막걸릿집에 온 것은 4개월 정도 전이었다.
“시은 씨 오늘은 새로운 친구가 올 거야. 우리 식당이 요즘 장사가 잘 되잖아. 그러다 보니깐 한 명 더 추가로 뽑았어. 우리 식당에 일하는 사람이 시은 씨랑 나 둘 뿐이라도, 그래도 시은 씨가 선임이잖아? 잘 가르쳐. 남자애고 시은 씨보다 어려서 잘 잡아야 해. 알았지?”
“네.”
사장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사장이 아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대답 소리조차 못 들었을 터였다.
“시은 씨 부담이 큰 건 알아. 그래도 식당이 잘 되면, 시은 씨도 좋잖아? 보너스도 더 주고 말이야. 그러니깐 조금만 힘내 줘요. 아마도 그 친구는 한 시간 정도 뒤면 올 거야.”
“네…. 네. 사장님”
그리고 40분 정도가 흘렀을 때 땡그랑하고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들어왔을 때 나는 사장이 말한 ‘그 친구’인 것을 직감했다. 아니, 그 소년이 아르바이트생이기를 바랐다. 신기하게도 그에게는 사람에 대한 알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다. 잠깐, 내가 그를 ‘소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짜 소년 같았기 때문이다. 하얀색 얼굴의 적당한 눈. 얇은 콧날에 주근깨 하나 없는 피부.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 몸도 작아 누가 보더라도 소년이었다.
“안녕하세요?”
작은 몸에서 예상외로 탄탄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강단 있는 목소리로 사장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화장기가 거의 없이 머리는 질끈 묶고, 피부는 새까맣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여느 식당 어머니와 같은 느낌의 나와 말이다. 나는 바로 눈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 짧은 순간, 그는 나를 보고 생긋 웃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 아…. 안녀, 안녕하세요?”
그가 들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답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께 들었어요. 여기서 일하시는 분이시라면서요.”
“맞아요.”
“잘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해일이에요. 신해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분명 놀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곁을 두지 않았다. 두려웠으니깐. 하지만 그는 달랐다. 정확히 인사만 했을 뿐인데 그에게는 너무도 다른 느낌이 풍겼다. 두려움은커녕 즐거움과 새로움이. 내 전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꽃향기가. 그래서 놀랐다. 나는 5초 정도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그가 웃으며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맞잡은 손을 두 번이나 흔들었다. 그는 작았지만 재빨랐고, 일을 금방 익혔다. 좋은 성과는 손님들을 더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고, 사장은 기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칭찬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아, 시은 씨. 후임 기가 막히게 가르쳤나 보네. 아주 잘했어요. 그렇게만 하면 돼요.”
그게 계기가 되었을까 나는 자신감이 더욱 생겼고, 높아진 자신감은 일의 효율로 제 모습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A 막걸릿집은 더 큰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들어온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팀’이 되어갔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일과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해왔다.
“시은 선배, 술집에서 일하다 보니깐 늦게까지 일하는 데 힘들지 않아요?”
“그렇죠. 그래도 이렇게 편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곳 흔치 않잖아요.”
여전히 내 목소리는 작았다.
“전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는 알바는 처음이에요. 사실 알바 자체가 처음이라. 하하”
반면 유머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
“그래도 선배랑 일해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즐겁기도 하고, 매일 같은 일뿐이지만 새롭게 느껴져요.”
나는 그때까지도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해일 씨는 이 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에요. 바쁘게 움직이는 건 싫어하고,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한 걸 좋아해요. 선배가 아니었으면 전 이미 그만뒀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선배. 음…. 일 끝나면 두 시이긴 한데, 음. 요 앞에 분위기 괜찮은 바가 있는데…. 그러니깐, 시간 괜찮으면, 음. 아! 회식! 그러니깐 둘만 회식…, 할래요?”
그가 그렇게까지 말을 더듬은 것은 주 5일, 매일 오후 시간부터 새벽 시간까지 한 달 정도를 함께 일을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A 막걸릿집 전체에 퍼져있던 기름 냄새가 마치 꿀을 가득 머금은 꽃향기로 변했다.
“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