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2025

by jrajvxjthrkk



2024년이 끝났다. 하루하루 견뎠을 뿐인데, 나의 2024년은 잠과 잠 사이에서 스러져갔다. 내 일을 사랑하고 몰입하여 맡은 바 책임에 충실하라, 그 조언에 따라 이 사회에서 역할을 온전히 해내는 멋진 프로의 삶을 살아내리라 꿈꾸며 보냈던 지난 365일은 피로를 풀지 못해 무거운 몸으로 집을 나서 스트레스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집에 돌아와 아린 눈을 감고 침대에 들었던 여러 날들의 반복이었다. 되돌아보면 즐겁게 보냈던 날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평일은 일하는 시간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감히 하지 못한 채 잠에 들곤 했다. 때로 제대로 된 밥도 챙겨 먹지 못했던 저녁엔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몸을 갈아 넣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동안 몇 차례 번아웃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고는 했지만, 남들보다 늦은 시작을 보충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노력했던 긴 시간의 끝자락에 갑작스레 닥쳐온 조직의 변화로 몇 년 동안 굳건히 발 딛고 서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딛게 되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깨달음을 얻은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정신력의 고갈,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번아웃이 찾아왔다.





11월 말, 좋은 기회로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쫓기는 스케줄 없이 자연 속에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늘 한 몸이던 휴대폰을 제출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가운데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그 여유로운 시간 가운데 때때로 나를 찾아온 건 고통이었다. 참가한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마치 재활치료소에 들어온 환자들처럼, 재난대피소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 이재민들처럼, 모두 나처럼 가슴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품고 고독과 우울 속에서 지쳐버린 자신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발전하려는 욕심을 양분 삼아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그 시간을 좀 더 열과 성을 다해 해내지 않았음을 후회했던 이 모두의 지난날들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우리네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바쳐왔던가 더없이 부질없이 느껴버린 시간을.





행복에 대해서 생각한다. 해저문 퇴근길 던져보던 질문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내 하루는 대부분 행복했지만 되돌아본 자리엔 그림자만 가득했다. 지금 나는 주도성을 잃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행동할 자유를 잃은 삶, 나를 깊이 생각할 시간을 잃은 삶. 한 걸음 내딛는다. 가만히 있으면 한층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아서 그렇게 30분을 걷는다. 마주 오는 사람들도,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모두가 힘들게 버티고 있구나. 그 사실이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의도한 대로 행동할 자유를 잃은 삶. 아무런 방벽 없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이토록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저녁 약속 하나 잡기도 마음이 버거웠던 바쁘게 보낸 지난 일상. 사실 나는 지금껏 진짜 내가 바라고 원하는 바를 마주하기 버거워 그 바쁜 일상 속으로 도피해서 바쁜 척 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쇼펜하우어는 거창한 행복은 고통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행복을 결국 이르지 못할 막연한 미래의 짜릿하고 즐겁고 기분이 고양되는 무언가로 여긴다. 지금을 버티고 견뎌내 승리를 쟁취하는 것. 언젠가 돈을 많이 버는 것, 언젠가 명예를 얻는 것, 언젠가 성공하는 것처럼.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행복일지라. 허탈하다. 그것이 행복이라면 참으로 허무하고, 인생이란 잠시라도 방심하면 곧바로 고통의 절벽으로 추락하는 아슬아슬한 삶이로다.





그럼에도 나는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요가 매트 위에서, 굳어가는 몸을 목소리에 따라 한 뼘씩 비틀어본다. 들어마시는 숨과 함께,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호흡을 느끼며 여기 이 순간에 머물러 본다. 모든 것이 괜찮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가만히 눈앞의 공기를 느껴보는 것. 허상의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것,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 나는 비범한 동시에 평범하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 관조하고,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마음, 판단하지 않는 마음. 평범하지만 비범한 찰나의 순간을 통해 나는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간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서늘하고, 선선하고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소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와, 그 속을 흐르는 개울물과,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 그런 것들이 있기에 나는 살아간다. 언젠가 삶이 다하여 이곳을 떠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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