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흐린 하늘

by 구기리

장마가 시작되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로 끝없이 내리는 빗방울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함께 따라오는 것은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흩어진 조각들처럼 선명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그 기억들이 빗소리에 맞춰 하나씩 떠오른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갑갑한 감정이 가슴에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 마치 습한 공기가 폐를 눌러대는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분명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난 당신은 어느새 많이 변해있었다. 예전의 그 따뜻한 미소도,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당신의 모습이 아니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사람을 이렇게나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슬펐다. 아니면 애초에 내가 사랑했던 당신이 그대로 남았으면 하는 가여운 바람이었을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당신의 모습과 현실의 당신 사이의 거리감이, 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나를 사로잡히게 하는 것일까.


이성의 끝은 분명히 보았다.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도 감정의 끝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있고,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언제나 이성과 감정 사이에는 이런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감정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 사이의 틈새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일까.


결국은 시간이 답일 것이다. 장마가 지나가듯, 이 무거운 감정들도 언젠가는 흘러갈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이 점점 흐릿해지고, 갑갑했던 마음도 어느새 가벼워질 것이다. 당신의 변해버린 모습도, 내 마음속의 혼란도 모두 시간이 정리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계절처럼 당연하게 느꼈던 감정이 멀어져 가는 것처럼, 청춘의 한 획을 그었던 사랑이 흐려져간다. 아프고 아파했던 쓰라린 시간들이, 울고 또 웃었던 지난날들이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기에 아름답게 끝나지 않은 연애의 끝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진했던 당신의 향기가 얼룩질 때쯤이면, 빗방울이 창문을 흘러내리며 만들어내는 무늬들처럼, 내 감정도 어떤 모습으로 정착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완전한 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마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구름은 하늘에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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