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해지고 가야 할 길마저 어지럽게 더럽혀진 도로 위 상념을 깨트린 것은 빨간 신호등이다. 그랬기에 시선이 자유롭게 주변을 탐색하듯 움직이다 자연스레 들어온 연인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로를 맞잡은 손과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에서 주변의 공기마저 그들 주위로 투명한 벽이 쳐진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버스 차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언제 가는 나도 저 운전석에 앉아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느 새부터 걷는 것보다 차를 타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 즘에는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졌다. 집을 얻었을 때는 가장 초라했던 시절의 나를 좋아해 주던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했다.
다시 한번 횡단보도를 건너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영원의 순간들을 담았던 어린 시절의 사랑이 불현듯 스쳐와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나와 달리 저 연인들은 영원을 담아 나아간다. 나는 액셀을 밟는다. 가야 할 곳이 있다. 돌아갈 집이 있다. 삶이란 결국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반복되고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