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 때였다. 통장 잔고는 이십만원이었고, 여행 가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석 달 했다. 새벽 다섯 시 배달, 오후엔 카페, 밤엔 편의점. 손가락 끝이 트고 발바닥이 부르튼 그 석 달 끝에 모은 돈으로 태국행 티켓을 샀다. 방콕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바보였다. 스카이다이빙이 십오만 원이라니. 석 달 동안 라면으로 때운 끼니가 스물 그릇은 족히 될 텐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 분 삼십 초가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돈을 냈다.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생각했다. '이 바보 같은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땅에 발을 디딘 후에도,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다만 가슴이 뛰었다는 것만 확실했다.
서른다섯 살이 되자 계산이 빨라졌다. 십오만 원이면 한 달 통신비다. 한 달 교통비다. 아니, 좋은 책 열 권을 살 수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 분 삼십 초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이 나를 만족시켜줄 것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바보 같은 돈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 바보 같았던 순간들을 그리워한다. 계산하지 않고 뛰어들었던 그때를. 돈의 가치보다 순간의 떨림이 더 컸던 그 시절을. 지금의 나는 현명해졌다. 비행기표도 한 달 전에 미리 사고, 숙소도 후기를 샅샅이 뒤져가며 예약한다. 가성비를 따지고 효율을 계산한다. 그렇게 아끼고 모아서 더 멀리, 더 오래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 완벽하게 계획된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억에 남는 건 예상치 못한 실수들뿐이다. 길을 잘못 들어 만난 골목길, 비가 와서 들어간 낡은 카페, 배가 고파 아무 곳에나 들어간 식당에서 만난 맛.
젊을 때는 돈이 아까웠다. 지금은 시간이 아깝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는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려 들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값을 매기려 든다. 무모함이 사치가 되는 나이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안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그 십오만 원이 아깝긴 했을까.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묻고 싶다. 그 돈으로 뭘 샀더라면 더 좋았을까, 하고. 하지만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웃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다. 떨어질 각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