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by 구기리

요즘 가을을 거닐 때면 아무 이유도 없이 외로움이 밀려온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멍하고, 밝게 웃는 것도 버거워진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진 낙엽처럼 마음이 바스라진다.

어느 날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렸다. 자연스레 술을 사는 나의 모습을 보며 꽤 많은 무게가 삶 속에 깊이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술 없이 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외롭고, 만날 사람은 없고, 잊혀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누군가의 연락처에는 존재하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에는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되던 어느 날부터였다. 그랬기에 술을 찾는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었다. 이것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에 의해 선택한 것들이었으니까. 이것마저도 없다면 마음이 더 퍽퍽할 것만 같았다. 비록 좋은 것들이 아닐지라도 이 썩은 것들로 하여금 강제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핑계 삼았고, 술이라는 지독함을 빌렸다. 그렇게 방황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맸다. 무엇을 잃었는지, 아니면 원래 소중히 간직했던 것을 잊어버렸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몽롱한 취기가 왠지 알려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런 밤에는 망각했던 것을 찾으려 술잔을 기울였다. 술잔을 기울일수록 초심은 무감각해져갔다. 감정이 마비되었다.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망각이었다. 내 자신을 찾지 못할 때마다 술은 늘어갔고, 불안함도 함께 커졌다. 중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모든 것들이 약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이라는 핑계를 삼을 수 있어서. 아침이 되면 거울을 본다. 피폐해진 내 얼굴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건 내 책임이 아니라 술의 책임이라고. 술이 나를 망쳤다고. 술이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고.


그런데 술도 웃을 것 같다. 술이 나를 데리고 왔나. 아니다. 내가 술의 손을 잡았다. 몇 번이나.

편의점 앞을 지난다. 여전히 형광등이 켜져 있다. 여전히 술 코너는 가득 차 있다. 손을 뻗을 수도, 돌아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상관없다. 취할 때도 술의 탓이고, 깨어있을 때도 술의 탓일 테니까.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일 같다. 나는 단지 그것을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가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도 감각하지 못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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