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자유

by 구기리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던 친구는 비행기 표를 샀다. 하늘과 바다를 한 손에 움켜쥔 듯한 사진을 나에게 보내왔다. 친구는 통장 잔고는 휘청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세상을 활보했다. 반대로 난 주말에만 꿈을 꾸며 복권 한 장을 위해 불금만 되면 숫자를 적으려 기나긴 줄을 서고 있다.


친구의 사진을 보며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부러움이었을까, 질투였을까. 아니면 그저 담담한 체념이었을까.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 넘기며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작게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친구는 날았고, 나는 여전히 복권 판매점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본 낭만은 무엇이었을까. 커가면서 배운 획일화된 꿈이었을까. 어느새 비교되며 살아가는 삶이란 게 가여워진다. 때론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 허영심이, 아니 허황심에 사로잡혀 삶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어릴 적 꿈꾸었던 것은 사라져간다.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적어놓은 장래 희망이 뭐였던가. 과학자? 의사? 아니면 그저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꿈들은 어느새 월급날짜와 대출 이자율, 전월세 시세로 대체되어 버렸다. 꿈은 사치가 되었고, 현실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생각의 바다가 끝을 몰라서 잃어버렸던 어릴 적 낭만을 찾아 헤맨다. 생각의 끝이 없으니까 매일 밤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파도처럼 부서지며 답을 찾다가 자꾸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새벽 두 시, 세 시. 시계는 무심히 돌아가고 나는 천장을 바라본다. 저 천장 너머에는 하늘이 있고, 그 하늘 어딘가를 친구가 날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는 좁은 방 안에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날개는커녕 제대로 걸을 힘조차 없는 것 같은 밤이다.

누군가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닌데, 이런 게 삶이란 게 하염없이 슬퍼져 온다.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회사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사회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정작 나를 채운 적은 없었다. 텅 빈 내 안을 들여다보면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내가 지금 쫓고 있는 꿈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꿈이 많은 게 아니라 쫓아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다.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꿈이라기보다는 과제에 가깝다. 삶의 커리큘럼. 누군가 짜놓은 인생 시간표를 따라가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수업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삶의 정답은 없지만 쓰러져도 일어나서 걷는다. 무너지기 위해 걷기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위해 다시 걸어본다. 비록 비틀거려도, 방향을 잃어도, 때론 주저앉아도. 그래도 걷는다. 걷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복권 판매점 앞에 서 있는 나를 친구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아니,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날지 않느냐고, 왜 표를 사지 않느냐고. 하지만 친구는 모른다. 날기 위해서는 땅을 박차고 뛰어오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복권을 산다. 한 주에 한 장. 오천 원짜리 꿈. 당첨 확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숫자를 고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내가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 당첨되면 뭘 할까, 상상하는 그 몇 초간만큼은 자유로우니까.


언제쯤 이런 상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련지 모르겠지만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끝내 잠이 들며 자유로워진다. 꿈속에서만큼은 누구의 시선도, 누구의 기준도 없다. 꿈속에서만큼은 나도 새처럼 날 수 있다. 비행기 표 따위 없이도.


그렇게 나는 오늘도 새벽에 잠든다. 내일 아침이 오면 또다시 땅을 딛고 걸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자유롭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이전 02화가을은 여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