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by 구기리

외로움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체한 듯 가슴이 막혔다.

저녁 여섯 시, 퇴근길 지하철. 사람들 틈에 끼어 서 있는데 문득 숨이 막혔다. 옆 사람의 어깨가 닿았고, 누군가의 가방이 내 허리를 찔렀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나는 혼자였다. 몸서리치게 적막했다.

집에 돌아와 불을 켰다. 현관에 신발 한 켤레. 냉장고에 혼자 먹을 반찬들. 싱크대에 놓인 컵 하나. 모든 것이 하나씩이었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편지가 있었다. 받지 못한 편지들. 쓰고도 보내지 못한 것들. 가위를 꺼내 편지를 잘랐다. 조각조각 내버렸다. 종이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내 마음 같았다.

한 움큼 모았다. 종이 조각들을. 무더기로 쌓아 올렸다. 지난날의 감정들이 그렇게 쌓였다. 태워버릴 수도 없었다. 아파트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으니까.

못다 한 이야기들이 거기 있었다. 나누지 못한 것들, 말하지 못한 것들. 시간이 지나며 그것들은 썩어갔다. 곰팡이처럼 번져갔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 위로 무언가가 자라났다. 허물어진 자리에서 싹이 돋듯.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를 빌린 무언가였다는 것을.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 적막함을 채우기 위해 불러들인 망령. 그것을 나는 사랑이라 부르며 살아왔다.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졌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저녁. 그들도 나처럼 혼자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일까.

종이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일이면 수거차가 가져갈 것이다. 지난날의 감정들과 함께.

그리고 나는 안다. 내일 저녁에도 나는 이 방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 또다시 체한 듯 찾아올 것이다.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사랑이라 부르며 견뎌낼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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