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다는 것은 간을 망치는 것이다. 몸에 전혀 도움이 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는 것은 몸을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찾고 싶어서였을까. 감성적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죽어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죽여 있던 감정이 이성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오늘 너를 죽이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런 날이면 언제나 그랬듯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 하나 잘난 것 없는 볼품없는 나인데 주변에서는 갓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니 이거야 원, 한없이 부담스러워진다. 내가 갓생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내가 언제부터 갓생을 살아왔다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갓생을 산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나란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게으름과 나태함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였다. 아마 죽으면 나태지옥에 빠져 현생에서 열심히 살지 못한 죄값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유의지조차도 어찌 못하는 나인데 어찌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랴. 오히려 무언가 족쇄처럼 통제된 삶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삶이라는 거창한 미래보다는 현실에 더 사로잡힌다. 감정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감정은 아마 사랑일 것이다. 누구를 애타게 보고 싶다거나 그리워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순간이다. 사랑했던 그 감정,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숱한 연애도 해보았고, 혼자라는 시간도 보내보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늘 위태롭다. 혼자라는 것이 익숙해진 요즘, 그래서 더욱이 애타게 사랑을 갈구한다. 과거의 사랑을 영광인 마냥 떠올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지난 사랑이 아름다웠지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랬기에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것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내가 잘못인 걸까. 아니면 상대방의 기준이 높은 것일까. 근래 들어 소개팅도 여럿 했지만 무엇 하나 결실을 맺은 적이 없다. 상대가 원하면 내가 도망가고, 내가 원하는 사랑은 찾지 못하겠고. 나의 기준이 나이가 들어감과 동시에 높아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지난 사랑이 남긴 기준이 이미 높아져 버린 것일까. 그 무엇 하나도 알 수 없어서 여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 마주친 여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과거의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다가올 사랑이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미래를 갈망하는, 그 어정쩡한 시간대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술잔을 비운다. 텅 빈 잔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술도, 위안도, 사랑도. 그저 투명한 유리벽만이 희미한 조명을 반사할 뿐이다. 내일이면 다시 이성이 감정을 제압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었다.
사랑을 원한다고, 외롭다고, 누군가의 온기가 그립다고.
그것이 술을 마시는 진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