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작은 화면속에 있다. 요즘 부쩍이나 시력이 나빠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멀어져간다. 그랬기에 덩달아 마음도 멀어진다. 무엇을 바라봐야하는지 흐려진다. 목표도 상실해진다. 방향이 없어진다. 그렇게 점점 현실과 단절된다. 그럴수록 힘껏 세상으로 들어간다. 작은 화면을 통해서.
세상이 작아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세상을 담는 눈이 작아지고 있었다. 민준은 안경을 고쳐 쓰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흐릿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나아졌다. 그는 그것을 요즘 들어 자주 했다. 눈을 가늘게 뜨는 일. 세상을 좁혀서 보는 일.
안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벌써 세 달 전이었다.
처음에는 글자가 번졌다. 버스 정류장 안내판, 횡단보도 신호등 아래 숫자,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 그런 것들이 윤곽을 잃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좀 쉬면 나아질 거라고.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화면은 보였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면 글자가 선명했다. 사진이 선명했다. 영상이 선명했다. 세상은 흐릿한데 화면은 또렷했다. 그래서 민준은 점점 더 화면을 가까이 했다. 자연스럽게. 어느 날 문득 깨닫기 전까지는.
깨달은 것은 어느 저녁이었다.
지하철 안이었다. 맞은편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민준은 그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멈췄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 안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민준도 같은 자세였다. 그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터널이 지나갔다. 어두웠다. 자신의 얼굴이 유리에 비쳤다. 흐릿하게. 눈을 가늘게 뜬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는 다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목표라는 것이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몰랐다.
이십대에는 있었다. 희미하더라도 있었다. 서른이 되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 나이쯤에는 이런 것들을 이루어야지. 그런 생각들이 앞에 있었다. 멀어도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이 나빠지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윤곽이 흐려지고, 그 다음에는 형체가 사라지고, 나중에는 거기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방향이 없어지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느려지다가 멈춘다. 그리고 멈춰선 자리에서 손 안의 화면을 켠다. 거기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있었다. 볼 것이 있었다. 갈 곳이 없어도 화면 안에는 갈 곳이 있었다. 만날 사람이 없어도 화면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민준은 세상과 단절될수록 화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힘껏.
어머니가 전화했다. 밥은 먹었냐고. 민준은 먹었다고 대답했다. 먹지 않았다. 통화를 끊고 다시 화면을 켰다. 누군가의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래 보았다. 그 사람의 아침을, 그 사람의 식사를, 그 사람이 걷는 골목을. 부러웠다. 무엇이 부러운지는 몰랐다. 그냥 부러웠다.
화면을 끄면 방이 너무 조용했다. 그래서 끄지 않았다.
밤이 깊었다.
민준은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화면만 밝혔다. 눈이 뻐근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화면을 내려놓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천장을 바라보면 생각이 왔다. 생각이 오면 불편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생각들이 방 안을 채웠다. 그래서 화면을 켜두었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이것이 도피인 줄은 알았다. 알면서도 했다. 세상이 흐릿한데 어쩌란 말인가. 눈이 나쁜데 어쩌란 말인가. 보이는 것을 보는 것뿐이었다. 선명한 것을 붙드는 것뿐이었다.
화면이 꺼졌다. 배터리였다. 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민준은 그 어둠 속에 잠시 그대로 있었다.
조용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창밖에 가로등이 있었다. 흐릿하게 빛이 들어왔다. 초점이 맞지 않는 빛이었다. 그런데 빛이기는 했다. 민준은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선명하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처음으로 생각했다.
충전기를 찾으려다 멈췄다. 그냥 누웠다. 눈을 감았다.
세상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오히려 넓어지는 것들이 있었다. 안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흐려진 것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화면 밖에 있는 것들을. 윤곽이 사라지기 전에.
봄이 오고 있었다. 창밖 어딘가에. 흐릿하지만,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