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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Oct 20. 2024

오렌지와 뜻밖의 초대

같이 걸어줘서 고마워

 예상치 못한 선물을 고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나의 반응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이게 뭐야?"

"너 오렌지 좋아한다며? 너 장 보는 사이에 몰래 샀지."

"하하하... 진짜 고마워.. 정말 생각도 못했어."



 슈퍼에서 나 몰래 오렌지를 고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니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나 비싼 자동차가 아니라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진심 어린 관심에 유머 한 스푼까지 더해져 오렌지처럼 상큼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키캐의 무릎은 어제보다 많이 나아진 듯 성큼성큼 걸으며 저만치 앞서간다.  스페인의 따스한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카탈란 소녀들도 키캐와 함께 앞서 걸음을 맞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오르막길에 약하기도 하고 발등 부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걸음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맥주를 주문한 뒤, 샌드위치를 커다랗게 한입 베어 물며 땀을 식히고 있던 그때, 두 사람은 뜻밖의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아란, 아일랜드는 언제가? 혹시 산티아고 끝나면 우리랑 발렌시아에 같이 갈래?"


"알다시피 우리는 발렌시아에 살고 있어. 발렌시아 오렌지는 세계적으로 맛있다는 걸 모두가 알거야. 크리스티앙 아버지가 오렌지농장을 운영하시니까 우리랑 함께 발렌시아에 간다면 네가 좋아하는 오렌지 실컷 먹을 수 있을 거야."


 갑작스러운 제안이 고마웠지만 살짝 부담스러고 계획된 일정으로 거절을 해야 했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산티아고가 끝나면 나는 오비에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초대해 줄 수 있어?"


"아일랜드에서 발렌시아는 멀지 않으니까 다음에 학원에 방학내고 꼭 놀러 와야 해."


"그럼 그럼, 약속할게."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원결의를 하며 맥주 한잔을 비우고 길을 나섰다.


 연속되는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키캐는 이미 먼발치에서 앞서가고 나는 고르지 못한 거친 숨을 내쉬며 뒤따라간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게 카미노인데 내가 걸음이 느리고 계속 뒤처져도 크리스티앙은 늘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준다. 


 강렬한 태양 덕분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느리지만 발끝만 쳐다보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늘 한점 없는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 누군가 나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가려주다. 눈을 찡그리며 햇빛을 피할 때마다 그는 '하와유?' 하면서 스카프를 벗어 햇빛을 막아주고 가끔은 내 가방을 받쳐주어 가방

 무게를 덜어주기도 했다. 나이답지 않은 그의 순수함은 맑은 하늘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두 사람 덕분에 푸르른 산등성이가 아름답게 펼쳐진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굽이굽이 산을 넘고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할 기력도 없어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앉아 있는데 크리스티앙이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같이 걸어줘서 고마워. 아란. 너의 좋은 에너지를 나눠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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