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by 본드형
드라이브 갈까?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언제부턴가

매년 돌아오는 명절처럼

시큰둥해진 결혼기념일 아침이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달리다

봄바람 살랑 부는 북한강변으로 빠져

소문난 청평 돌짜장집에서 거한 브런치를 먹었다.




배도 부르고 이제 어디로 가지...

무작정 차에 올랐는데,

어느새 내비도 켜지 않고 시원하게 펼쳐진 강변로를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다 보니

다른 세상으로 미끄러져 가는 기분이 올라오면서

이 길을 달리던 기억들이 스쳐갔다.


면허 딴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운전 실력에

수동기어 달린 중고 아벨라를 몰고

카세트테이프로 꿍따리샤바라를 크게 틀어 놓고는

경춘가도를 마냥 달렸었지.


어디 맛집이 있는지, 어떤 길이 빠른지

얼마나 걸릴지 몰랐었지만

마냥 신났던 그때가 참 좋았다고


내 옆에 앉아 수줍게 웃던 그녀와

결혼해 애기 낳고 30년을 함께 붙어 살 줄

미처 몰랐다고

여전히 조수석에서 재잘대는 아내 손을 잡으며

앞으로의 30년의 시간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가평대교를 건너

쁘띠프랑스 마을을 지나자 넓은 청평호가 펼쳐졌다.


코로나가 터진 해,

그땐 살아있던 짱이와 셋이 답답한 도시를 탈출해

마스크 벗고 봄내음을 맘껏 맡았던 곳.


청평, 가평, 양평...

태평할 '평(平)'자가 들어간 여기 지명들처럼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강대국들이 벌인 진짜 전쟁들이 줄줄이 터졌다.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세상사처럼

우리 결혼사도 그랬었다.


연인으로 시작해

원수처럼 싸울 때도 있었지만

이젠 친구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다.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이

청평호의 윤슬처럼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