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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Oct 17. 2021

본드형의 화려한 은퇴식

<노 타임 투 다이>

아직 10월 중순인데...

일요일 아침부터 한파 특보다.

보일러로 뜨끈해진 방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다 불쑥 작년부터 미뤄온 그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작년 4월 개봉 연기 후 일 년 반 만이다.


가장 가까운 극장을 찾아

가장 빠른 티켓 1장을 예매하고

시간이 남아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단정히 깎았다.


상영 1시간 전 여유 있게 도착한 극장 안은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휑하다.




어두운 좌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갑자기

'No time to die'의 뜻이 궁금해졌다.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일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일까?


OST를 부른 빌리 아일리시의 몽환적인 노래 가사

대략 이렇다.


Fool me once, fool me twice

Are you death or paradise?

Now you'll never see me cry

There's just no time to die


날 두 번씩이나 바보로 만든 너는

죽음일까? 낙원일까?

이제 넌 내가 우는 걸 다신 못 보겠지

죽어갈 시간조차 (볼 수) 없을 테니까


혹시 본드형이라면 이런 농담을 툭 던지지 않을까?

내 시계(시간)는 명품이라
절대 고장 나지(죽지) 않는다




장면부터 정신없이 터지는

이국적 풍경들.

화려한 액션들.

그리웠던 클리셰들을 보며 마치 집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3시간 넘게 진행된 이번 시리즈는 이전과 달리

너무나 로맨틱하다.


현직에서 은퇴한 본드 중령이

젊고 건강한 여자 후배 007과 만나는 장면에선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여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던

불사신 본드형은

이제는 가족을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루이 암스트롱의  () 끝까지 듣고 극장을 나왔다.


 낭만의 시대를 보내는

가장 화려하고 로맨틱한 은퇴식이자 장례식이었다.


본드형, 수고 많았습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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