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일곱 번째 글은 울산에서 정세청세 기획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주영 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세청세 활동을 하고 있는 18살 청소년 김주영입니다. 저는 우연히 만난 정세청세를 통해서 저의 한계를 극복하는 멋진 경험을 했고, 지금은 스스로 배움을 디자인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 친구를 따라서 간 정세청세가 저에게 이토록 큰 변화를 가져올 줄을 몰랐어요. 저 자신도 정세청세 이전과 이후의 제 모습을 보면서 놀라곤 하는데요. 그런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기숙사가 있는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일주일 동안 친구들과 항상 함께 지내다가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토요일까지도 학교에 남아 공부합니다. 주말은 오롯이 가족과 보내고 싶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으로서 학원가기에 바쁩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에 반 친구로부터 정세청세라는 청소년 인문 토론 행사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정세청세에서는 조별 토론을 하기에 앞서 서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데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거나, 평소에 자기가 생각하던 걸 말하거나, 방금 함께 본 영상에서 의미가 있는 내용을 통해서 개성 있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김주영입니다”라고 평소처럼 저를 소개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눈빛을 받으면서도, 저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왜 나는 나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를 욕하면 안 된다고 배우지만, 어디에서든 누구든지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많이 봤거든요. 저는 제가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가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많았어요. 심지어 어렸을 때는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고, 어른들을 만났을 때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 소개할 때도 최소한으로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름과 나이와 학교로 저를 소개했던 것이죠. 사실 자기소개라기보다 오히려 자기방어에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던 저는, 당연히 발표하는 것도 안 좋아했어요. 친구들 앞에 나선다는 게 무서워서 학교에 가기 싫을 때도 있었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주저하는 저를 보며 주위에선 웅변학원에 가야 하겠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저의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고, 또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바로 정세청세입니다. ‘토론’이라고 하면 당연히 찬반 토론을 떠올렸지만, 정세청세에서 토론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처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요. 책이나 사랑, 친구, 가족, 사회, 정치, 예술, 문화, 교육, 민주주의와 같은 다양한 주제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세청세의 토론은 답을 한다기보단,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여 의견을 말하고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내 안에 새로운 질문을 갖는 과정이었습니다.
정세청세에서 공부는 세계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공부를 하면서 저는 제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어요. 지금의 저는 앞으로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더 공부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세청세를 하면서 배운 인간다움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꿈은 지켜가고자 합니다.
그런 정세청세의 효과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올해 초 저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정세청세를 하기 위하여 동아리 정세청세를 만들었습니다. 매번 행사가 열리기 전에 주제에 관해서 생각을 정리한 글을 썼어요. 학교에서 연례행사처럼 진행하는 글쓰기와는 분위기가 달랐는데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자기 생각을 써온 동아리 부원들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과정에서 저도, 우리 부원들도 더 깊이 배우고, 더 잘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도하게 된 것이 프로젝트 정세청세입니다.
프로젝트 정세청세는 단순히 주어진 문제의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관련한 문제의식 자체를 청소년들이 직접 주도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기획입니다.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우리 울산팀이 선택한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9년 제3회 정세청세의 주제는 “무엇이 참된 삶인가?”였는데요. 이 주제에 관해서 참된 삶이라는 말을 한 알랭 바디우를 비롯하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마이클 샌델,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말한 리처드 도킨스, ‘자유의지’에 대해 고민한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학자들의 이론을 다시 공부하며 우리 논의에 포함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제가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은 인간이란 ‘자기 의지에 구속된 노예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하여 ‘도덕률’을 지켜야 합니다. 자유와 도덕의 균형 속에서 진정한 자기 삶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삶은 나와 세상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보면, 매일매일 수많은 병폐가 끊이질 않는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 나날이 일어나는 걸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져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나 하나 행동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 자꾸만 묻게 됩니다. 저는 저의 좋음이 세상의 옳음에 가닿는 삶을 꿈꿉니다. 그리고 제 생의 마지막 날에 나는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제게 용기가 부족합니다. 수많은 반대와 기존의 가치 체계에 맞서 제 신념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누군가와 싸우기 싫어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 가슴 속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조금씩이라도 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사소한 변화라도 그것을 일으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세청세의 활동은 제가 그런 의지를 잃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종종 묻습니다.
‘나는 왜 희망하는가? 내가 품은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인가? 헛된 희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진짜 희망이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울산시에서 청소년 의회를 출범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말을 하고 공론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 에이지즘, LGBTQ 등과 관련한 문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우리 사회의 모든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행복이 될 때,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평범한 행복이 분명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정세청세를 할 때마다 항상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들을 친구들과 나눌 때 저는 다양한 다른 입장에서 토론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친구들이 자기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저의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자칫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도 모르는 부분이 많기도 한데 말이에요. 저의 주장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함께 더 잘 소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정세청세는 끝까지 그런 고민을 안겨주는 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세청세를 좋아하는 거겠죠.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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