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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 Apr 14. 2021

이탈리아는 정말 가난할까?

한국에서 떠도는 여러 미신들에 대하여

우리가 이제 이탈리아는 뛰어넘지 않았을까?


최근 한국에 깊게 자리 잡은 미신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이제 이탈리아 정도는 뛰어넘었다." 경제 수치로 따지면 사실 뛰어넘었다고 말하기 애매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우리가 더 나아질 일만 남았고 이탈리아는 나빠질 일만 남은 게으른 남유럽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이 우월하다 이런 주장도 가득하다.


이탈리아 정부는 빚이 많다. 또한 나폴리와 시칠리아 등 남부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은 가난의 현장을 목도하며 해당 지역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 지역이 좀도둑과 사기꾼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한국은 마치 슬럼가와 사기꾼은 없는 것처럼 묘사하며 말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단 한마디의 말로 설명이 불가한 아주 독특한 나라이다. 프랑스와도 다르고, 스페인 하고도 다르며, 물론 영국이나 독일 하고도 매우 다른 구조와 특성을 가지고 있어 짧은 문장으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나라다. 구조적 비효율성과 개인과 기업의 기민함이 아슬아슬한 평행선을 이루면서 국가 시스템을 지탱한다. 쉬운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없다.


이탈리아의 독특한 특성 : 종교적 특수성


이탈리아를 정의할 때 종교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전 세계에서 13억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고, 현재도 이탈리아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톨릭을 빼놓고 이탈리아를 논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단체는 바티칸이며 이러한 성향은 경제적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탈리아가 영향력이 없는 나라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바티칸이 로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로마제국이 분할되고 로마의 가톨릭은 동방의 정교회와 경쟁하며 서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왔다.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황권은 급속이 줄어들었지만 가톨릭을 신봉하는 서유럽 국가(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및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중세에는 부가 집결되는 곳 중 하나였고, 교황청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이탈리아에 수많은 은행가문과 도시국가들이 발흥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탈리아의 독특한 특성 : 중세 무역의 중심지


중세 베네치아가 차지했던 경제적 위치는 현대 이탈리아가 차지하는 경제적 위치보다 더 높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뻘밭을 빼곡한 건물로 채우며 유럽 교역의 중심지가 된 베네치아는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없는 매우 독특한 도시였다. 오직 무역과 제조업으로만으로 허허벌판을 거대한 상업도시로 키워낸 베네치아 인들의 창의성은 이탈리아라는 곳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류역사의 위대한 창조물, 베네치아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이후 수많은 게르만족들의 지배가 이어졌지만 중앙 집권화된 세력을 이루지 못했던 프랑크 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허점으로 인해 이탈리아 반도는 도시국가들의 무한경쟁체제가 시작되었다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처럼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경쟁체제는 이탈리아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세부터 이어져온 도시국가의 전통이 현재까지도 내려와 이탈리아는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지역색이 뚜렷한 나라 중 하나이다. 북부에서 남부로 여행을 할 때마다 마치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중세 이탈리아는 수많은 실력자들이 나타나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까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쟁하며 성장해왔다. 물론 이러한 분열 양상이 이탈리아라는 근현대 국가로의 전환에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고 이른 시기에 중앙집권화를 이뤄낸 프랑스에 비해 문화나 예술적으로 뒤쳐지는 계기가 되긴 하였으나 이러한 도시국가 전통이 이탈리아라는 반도를 중세시대에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에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탈리아가 쌓아온 부는 사실 다 없어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탈리아는 국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금보유고가 세계 3위이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순이고 기관을 합치면 IMF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중세 유럽 피렌체의 플로린과 베네치아의 두카트라는 기축통화를 만들어내고 유통시켰던 곳이 이탈리아였기에 금보유고가 높은 것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경제적 수치로 봐도 세계 8위의 경제규모이고 대체적으로 무역수지도 흑자를 기록하던 주요 수출국이다. 대한 교역도 한국이 적자를 기록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특히 원자재가 아니라 완성품을 교역하는 국가 중에서 이탈리아와의 교역은 지속적인 적자였다. 이탈리아 제품을 찾는 한국 소비자가 한국 제품을 찾는 이탈리아 소비자보다 많다는 것이다.


* 이탈리아의 경제에 대한 부분은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힌 부분이 있어서 더 쓰려면 이야기가 길어지기에 이 정도에서 줄입니다.


이탈리아의 독특한 특성 :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이제는 프랑스나 영국이 유럽 문화의 중심이라는 경향이 강해지는 듯 하지만, 이탈리아가 지닌 소프트 파워의 수준과 질은 한국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로마제국과 르네상스라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국가이다 보니 전 국토가 문화유산으로 덮여 있고, 관광이 전체 GDP에 차지하는 비중이 12%나 될 정도이다. 관광산업은 이탈리아 경제에 있어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자원인 것이다.


세계의 회화사, 조각사 등 미술 분야의 역사를 논할 때 이탈리아는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물론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나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등의 화가들이 있긴 하지만, 1300년에서 1500년대로 생각하면 다른 유럽에서 그럴듯한 화가는 없었고 많은 예술의 천재들은 이탈리아, 그것도 특히 피렌체에서 탄생하였다. 메디치 가문의 관대한 후원도 바탕이 되었겠지만 한 도시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의 천재를 배출해낸 것은 세계사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사례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경제적인 배경이 아니라 국제정치와 철학적 토대 등 여러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1453년 동로마가 최종적으로 멸망하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간직한 수많은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대거 피렌체로 망명하였다. 이미 메디치 가문은 여러 차례 콘스탄티노플의 외교관과 학자들을 영접한 경험이 있었고, 그들이 피신하며 가져온 수많은 인문학의 보고는 단테로 시작된 피렌체 인문학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인문학적, 철학적 지식은 피렌체의 수많은 예술인들과 예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 그려진 수많은 그리스의 흔적들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 묘사된 Delphica, 델피의 무녀. 그리스도의 신성은 이미 그리스 신화에서도 증거되었다는 설명을 통해 고대 인문학과 당시 종교철학을 통합하는 시도의 산물이다.


예술은 후원이라는 토대를 통해 국가의 경제와 함께 성장하기도 하고, 오히려 예술이 국가의 경제에 새로운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비추어 본다면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예술작품과 문화유산을 수없이 간직한 이탈리아가 과연 쉽게 가난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현재의 이탈리아 경제는 어렵다


이탈리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회복이 더디고 구조적 모순들이 경제를 발목 잡는 경향이 없지 않다. 효율적인 정부 지원책이 없고, 인구 노령화로 인해 부가 산업에 흘러들지 않고 복지에 과다하게 지출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정부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만성적인 조세저항에 시달리게 되는 요인이 된다.


이탈리아의 부가세는 22% 수준인데, 상속세가 없는 반면에 소득세와 각종 사회보장세가 높은 편이다. 급여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보니 세후 소득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세금 경찰인 Guardia di finaza까지 운영하며 탈세를 막으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탈리아의 세금경찰, Guardia di Finanza


그럼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복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고 세금을 낮춰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선뜻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 유럽 은행 총재였던 드라기가 금년 2월부터 이탈리아 총리가 되어 추진하는 내역들을 살펴보면 코로나 19 방역이 중심이지만, 중장기 계획에는 조세개혁이 포함되어 있다. 효율적인 세무 시스템을 구축하여 결과적으로는 세금 부담을 낮춘다는 것이 개혁의 방향인데, 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세금의 골디락스,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세금이 걷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드라기의 개혁 방향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도 경제력이 많이 올라왔지만, 결국은 선진국병인 취업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현재 한국 경제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2008년 이후부터 경제성장이 둔화되며 선진국병을 앓고 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딜레마가 상존한다. 근로자의 권익보장이 강화될수록 신규 일자리는 적어진다. 해고가 어려워지고 더 많은 혜택이 기존 근로자들에게 주어지면, 신규 일자리는 감소하고 기업은 채용을 줄이게 된다. 일자리는 민간이 만들고 일자리는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에 달려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대표적으로 경직된 노동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독일이나 프랑스로 떠나는 실정이다.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이탈리아의 기성세대는 별 걱정 없이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면, 그들의 자녀는 새로운 일자리가 없어서 결국 좀 더 사정이 나은 다른 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보며 한국이 배울 점은 무엇일까?


각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고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탈리아 경제는 초호황을 누리며 세계 산업과 디자인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며 그간 누적되어 왔던 여러 구조적 모순들이 표면 위로 드러나며 이탈리아라는 국가의 경제를 발목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90년대 영국은 이탈리아보다도 GDP가 낮을 정도로 심각한 영국병을 앓고 있었고,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대처를 앞세워 민영화와 자산의 매각,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금융 서비스업으로 전환을 이뤄내며 다시금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긴 하다. 물론 대처는 진보진영의 많은 비판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다. 아직 이탈리아에서는 대처와 같은 개혁을 추진할만한 용기를 지닌 이도 없을뿐더러 국민 성향 자체가 개혁에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개혁은 없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다만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신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것이고, 별도의 퇴직 연령을 정하지 않는 이탈리아 근로계약 문화로 인해 젊은 층의 취업난은 계속되지 않을까 한다. 코로나 19로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청년층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40대까지 청년층으로 봐야 할 정도로 Mammone(마마보이)는 이미 이탈리아에서 보편화된 단어다.


한국이 이탈리아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면,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고 정부의 예산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도 쓰여야겠지만 결국 미래세대를 양성하고 그들을 돕는 방향에 더 초점을 맞추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세대가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시점에도 경제적 활동에서 배제된다면 이는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로 변질되게 된다. 일자리가 없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이탈리아의 청년들을 보면서 한국은 절대 이탈리아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는 결코 의미 없는 지출이 아니다. 그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자하는 것이 바로 수많은 유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이탈리아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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