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가 되다.
조개의 부드러운 살 속으로 모래알이나 작은 기생충 같은 이물질이 파고듭니다. 조개는 이 침입자를 자신을 위협하는 고통이라 인식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세포로 이물질 주위에 막을 씌워 핵주머니를 만들고, 그 핵을 중심으로 수천, 수만 겹의 얇은 층을 겹겹이 쌓아 올립니다. 고통을 감싸고 또 감싸는 오랜 인내의 시간. 그렇게 바다의 눈물이라 불리는 영롱한 보석, 진주가 탄생합니다.
아이들의 삶에도 예고 없이 날카로운 이물질이 파고듭니다. 어른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 부모의 외면, 친구들의 날 선 장난, 때로는 폭력의 기억 같은 것들입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사소해 보이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친 일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 ‘세품아’에 온 아이들은 보통사람에게는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현실이기에, 저마다 깊은 흉터를 안고 있습니다.
이 상처는 아이를 아프게 하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가 됩니다. 아이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자신만의 껍데기를 더욱 단단히 여밉니다. 누군가는 폭력성으로, 누군가는 우울감으로, 누군가는 과장된 웃음이나 바보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마음 가장 깊은 곳의 핵을 감춥니다. 그렇게 상처는 아이의 성격을 규정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결정하는 비밀스러운 핵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모든 상처가 흉터로만 남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이들은 조개가 그랬듯,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안전한 공간’과 ‘따뜻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비난 대신 이해를 받았던 기억, 실패했을 때조차 믿어주었던 어른의 눈빛,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해냈던 작은 성공들이 겹겹이 쌓이며 상처의 핵을 감싸는 영롱한 진주층이 되어갑니다. 이것은 고통을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과정입니다.
10대 중반인 A는 지능이 부족합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섯 살 아이처럼 물건을 던지며 화를 냅니다. 법적, 신체적 나이는 해마다 오르지만 정신적 나이는 좀처럼 따라오지 못했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또한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어른들이나 또래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쌓이면, A는 놀림감이 되었고 자신을 따돌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세품아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래들은 감정 기복이 심한 A를 불편해했고, A는 점점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움학교 소속인 B가 곁에 옵니다. B는 같이 걷자고 합니다. 햇볕이 뜨거운 초여름의 낮 시간입니다. A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B는 남자답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인정받는 형입니다. 이런 형이 먼저 말 걸어 준 것 만으로 A는 기쁜데 같이 걷자고 합니다. 둘은 세품아 교정을 걷습니다. 아무 말없이 걷기만 합니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고 머리는 뜨거웠지만 둘의 걸음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한시간 정도 걷고 둘은 각자 생활권으로 헤어집니다. 그 날 이후로 A는 표정이 편해졌습니다. 이상하게 마음 씀도 넓어졌습니다. B가 자신과 함께 걸었다는 큰 자랑거리가 생겼습니다. 장난이라도 B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A 앞에서 하면 난리 납니다.
B는 A의 이런 반응에 어리둥절하며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B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상황이 네가 빛나는 모습이고 내가 네게 기대하는 것이다."
B도 어린시절 많은 상처를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친구들에게 아무 말도 안 해줍니다. 그저 옆에서 함께 있어 줄 뿐.
이처럼 오랜 시간 끝에 탄생한 진주는 저마다 다른 빛을 냅니다. 상처의 고통을 아는 아이는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어둠을 지나온 아이는 작은 빛의 소중함을 압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진주의 핵으로 존재하지만, 더 이상 아이를 파괴하는 위협이 아니라,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빛나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이것이 세품아가 아이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모든 이물질이 진주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끝내 아물지 못하고 아이의 삶을 계속해서 할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의 상처를 억지로 꺼내거나 서둘러 진주로 만들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조개가 단단한 껍데기로 자신을 보호하듯,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을 때까지 따뜻하고 안전한 품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습니다. 언젠가 그 상처가 아름다운 진주로 빛날 때, 아이는 비로소 세상을 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