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시작해서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연구가 4개 정도 있고, 미국 대학에서도 연구를 3개 정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supervise하고 있는 연구들 3개가 모두 마무리 단계가 되어 논문을 봐주느라 바빴다. 게다가 연구비는 매 분기마다 작성해야하는 paper work들이 많고, 생각지도 않은 행정적인 문제들과 보완사항들이 끊임 없이 제기되어 일을 할 때마다 다시는 연구비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와서 학교 문을 닫는 날들이 많아 그런 날은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놀고 혼내고 삐지면서 정신 없이 보내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학교에 가자마자 고밀도로 일을 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visitor로 짧으면 몇 개월에서 길면 2년까지 살고 돌아가는 residence에 살고 있어서 다른 분들이 지내다 가시는 것을 옆에서 보게 되는데, 대부분은, 특히 짧게 머물수록 여행과 골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왜 나는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한국에서 하다 만 일들을 하며 바쁘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연구와 일에 희생해야하는 삶을 포기하고 뛰쳐나온 남편에게 이런 상황을 얘기하면 더더욱 "너도 좀 편하게 살지.."하며 안타까워 한다.
그런데 요 며칠 gpt와 대화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고 싶은 취미활동에 대해 생각해 봤었는데,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이런 활동들은 일주일에 1-2번이면 충분하다. 아이가 등교하고 조용한 집에서 창밖이 아름다운 1층에 자리잡은 데스크를 standing으로 세워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논문을 다듬는게 나는 평온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 일들은 나의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성과를 줄 수 있는 일이고, 나에게도 분명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일이다. gpt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여행이나 골프보다 덜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되짚어 주었다. 중요한 것은 “Am I choosing this work, or am I being chased by it?” 이었다.
편하게 사는 것도 좋은 가치이지만, 그것만이 좋은 삶의 척도는 아니다. 나는 배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을 즐기고 일이 주는 성취감도 사랑한다.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시간은 오롯이 아이와 보낼 수 있고, 지금 하는 일들은 이제 대부분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내 기준에서는 균형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한국의 일들이 모두 한국에서 실무자가 열심히 역할을 해주고 있고,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미리 시작을 해놓았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서도 편하게 handling할 수 있는 거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르게 만드시고 각자에게 맞는 plan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잠시 같은 동네, 일터에 머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서로 비교한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pathway에서 잠시 마주쳤을 뿐이다. 아이도 처음에는 이곳에 있는 아이들과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뭘 더 사야 하고, 어떤 숙제는 하지 말아야 하고, 얼마나 더 놀아야 하는지를 주장했지만, 비교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이 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이제는 그런 비교로 나와 다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국에서 아이와 긴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고, 한국에서 안하던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나에게는 이 시간이 정리의 시즌인 것 같다. 이렇게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비교와 멀어질수록 내 삶이 선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