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작가 Jul 23. 2022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런던에서 맥주 따르기 5번째 이야기



펍 창립 멤버 중의 한 명인 선임 동료에게 펍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느낀점을 묻자,

"매일 예측 불허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며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일할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일하고 가게 해주세요, 하고 모든 신을 동원해 기도를 드린다. 잔을 정리하다가 잔이 갑자기 깨지기도 하고, 좁은 바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다 동료와 부딪히는 건 부지기수다.

'진상은 없나요?'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문제는 다소 덜하다. 보안요원들이 저녁때부터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취한 테이블에게는 알코올 판매를 금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소란스러울 가능성이 보일 경우 퇴장시킨다.



전날 산 바지인데, 하루만에 더러워졌다



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맥주를 따르고 잔을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뺀다. 맥주만 만드는 게 아니다. 진토닉을 주문받으면 그 자리에서 진토닉도 만들고 와인 보틀도 따야 한다. 음식 주문받기 전에 테이블 번호도 물어봐야 하고. 일을 나열해서 적어보니 많지 않게 느껴진다.

자, 이제 여기서 조건이 추가된다. 3분마다 2명이 기본 3~4잔을 주문한다. 맥주와 음식 주문량은 당연히 늘고 맥주잔과 그릇들은 쌓아간다. 잔이 모자라지 않기 위해, 바지런히 25잔의 500ml 잔을 넣고 꺼내는 걸 반복한다. 손님들이 한 번에 100명이 들어올 때도 있다.

처음에는 미소를 유지하다가 점점 미소가 사라지고 만다. 너무 벅찰 땐 눈이 아니라 가슴에 눈물이 고일 때가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눈에 눈물이 고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3년 전, 대학교 졸업하고 이 일을 했다면 매일 일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꿀같은 30분 브레이크 타임



나 홀로 처음 가보는 지역을 구석구석 누비며 취재했던 경험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활짝 웃으며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아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순탄하지 않았던 지난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오히려 감사하다. 펍 근무는 전혀 다른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문제일지도 몰라, 스스로를 자책할 만큼 우당탕탕 요란스러웠던 경험들에 비해 펍에서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000으로 파인트 한 잔 주세요."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를 무한 번 반복하러,

오늘도 출근합니다 펍에.



작가의 이전글 펍 근무 첫날 소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