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돈을 준다고?

이거 아니면 안 읽었겠지만

by 지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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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지원해 주어 참여한 독서모임에선 대부분 고전 소설을 읽었지만 다른 분야의 도서를 읽었던 적도 물론 있다. '통섭'을 주제로 『통섭의 식탁』, 『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을 선정해 읽었고 페미니즘을 주제로 『페미니즘의 도전』과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내가 책 선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도서를 읽으며 다양한 분야의, 몰랐던 분야의 도서를 읽게 되는 재미를 이 시기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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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란 주제는 아마 그 당시 떠오르는 화두였던 듯하다. 그런 트렌드에 민감한 같은 과 동기가 이를 빠르게 캐치해 읽어 보자 제안하였고 당시의 난 통섭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좋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통섭에 대해 빠르게 다가간 덕분에 남들보다 더 잘 알게 되었을까? 혹은 뭣도 모르고 읽은 탓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을까? 정답은 '기억나지 않는다'이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함으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긴 하겠다.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독서모임 자체는 열심히 운영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정기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주간 보고서를 돌아가며 꽤 공들여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활동 종료 후 제출하는 최종 보고서를 처음으로 글이 아닌 영상 형식으로 만들었다. 학교의 독서모임 지원 프로그램은 각 모임을 지원해 주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가장 성실히 운영하며 정기 보고서와 최종 보고서를 잘 작성한 팀을 선정해 상장과 상금을 주었다. 다른 구성원들과의 모임을 운영할 때는 '지원금만 받아도 충분하니 굳이 애써서 도전할 필요까진 없다'는 주의였지만 통섭을 중심으로 한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기왕 하는 거 1등 해보자!' 하는 마인드였다. 그렇게 대본을 짜고 카메라를 빌려 독서모임 후기 영상을 촬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수 모임에 선정되지는 못했다. 당차게 도전하긴 했지만 사실 색다른 것은 없었다. '영상'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있었지만 그것도 우리에게나 새로웠지 이미 많은 팀이 사용한 형식이었다. 그렇다고 영상의 기획이나 컨셉이 독특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질문과 답변을 짜 인터뷰하는 것을 찍어 편집했을 뿐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우수 모임에 선정된 것이 아쉽지 않게 느껴진다.


완성도가 높진 않긴 해도 당시 찍었던 영상이 남아있다면 좋을 텐데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영상을 주도해 찍은 친구와 다른 모임원이 과cc였기에 헤어진 후 자연스레 삭제된 건가? 싶기도 하다.

아쉬운 결과이기도 하고 남은 결과물고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 목표를 잡고 열심히 도전해 본 것에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독서모임이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도전해보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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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도서를 주제로 한 모임은 교지 편집부에서 진행했다. 2017년 2학기, 교지 편집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새 멤버로 합류한 것이었기에 이미 신청이 끝난 그들의 독서모임에서 난 정식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모든 활동을 같이 했다.(지원금으로 밥은 같이 먹었으니 정식 구성원이 아닌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긴 했다.) 교지 편집부에서 선택한 두 책 중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82년생 김지영』은 이미 읽은 적이 있었고 『페미니즘의 도전』은 태어나 처음 알게 된 책이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먼저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이 책 뭐지?'였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모든 챕터가 다 좋았지만 마지막 <군사주의와 남성성> 부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주장이 나왔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부분을 열심히 읽고 감명받았기에 그 당시 수강했던 한 법학 수업에서 다룬 징병제에 대한 토론에서 책의 내용을 잘 써먹기도 했다.

당시 교지의 편집위원에는 여성의 비율이 높았고 대부분 나보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잘 알고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 모임에서 나는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배우는 데 집중했다. 독서모임을 나가다 보면 그 책, 분야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독서모임을 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라는 걸 처음 배웠다. 이때, 괜히 아는 척 나서지 않고 묵묵히 들었던 나를 조금은 칭찬하고 싶다. 독서모임에 나가다 보면 그다지 깊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는 척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 경험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난 아량이 넓은 사람은 아닌가 보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먼저 읽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것은 꽤 훌륭한 선택이었다. 두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순서를 그들이 전략적으로 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책에 이어 두 번째 책으로 모임을 진행할 때 느꼈다. 한 주제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 못지않게 어떤 책을 먼저 할지, 어떤 순서로 책을 읽고 나눌지 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그러고 보니 이때 참 많은 걸 배웠다.)


이전에 혼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와 두 번째로 읽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몹시 달랐다. 물론 한 번 더 읽으면서 그 감상이 어느 정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한정하기엔 부족했다. 처음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는 이야기 자체, 서사를 따라가는 데 그쳤다면 두 번째로 모임을 준비하며 읽을 때는 여성의 시선에서, 차별적인 부분을 민감히 감지하며 읽으려 노력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도 당연히 더 잘 보였다. 스스로 좀 더 민감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나 역시 발제를 준비해야 했기에 더 열심히 읽은 것도 있긴 했다. 나보다 이 주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며 교지 선배들이라는 생각에 질문을 꽤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책을 향하는 내 시선을 바꾼 것은 이전의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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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가 이 두 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통섭'이란 주제로 책을 읽었을까? 『페미니즘의 도전』을 스스로 찾아 읽고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소설을 읽는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분야로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좋지만 반대로 평소 관심이 없었거나 어려워했던 분야의 책을 독서모임을 통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통섭이나 페미니즘 이후, 학교 밖에서 여러 독서모임을 거치며 과학 도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기도 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읽어야 하며 얘기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그 내용을 익혀야 한다는 약간의 강제성이 있었기에 이런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독서모임을 통해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재밌고 유익한 것은 아니다. 내가 페미니즘이나 과학에는 조금이나마 눈뜨게 되었지만 통섭이나 자기 계발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얻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독서에서 한 문장의 즐거움과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면, 토론에서 새로운 의견을 듣는 경험이라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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