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년 이후, 같이 오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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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차 모임을 하는 날, 우리는 대전에서 만났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기차로 두 시간이 걸리는 공평한 장소였기에 대전을 골랐다. 물론 맛있는 빵을 잔뜩 먹기 위함이기도 했다.
북유럽 독서모임의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이지만 그보단 먹고 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만나자마자 소국밥에 소주 한 병을 들이켰고 카페로 가 수플레 팬케이크와 에그타르트,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배를 적당히(?) 채우고 나서 이번엔 독서모임 전에 선물 교환의 시간을 가졌다. 누가 봐도 선물로 보이는 큰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기에 다들 언제 줄 거냐며 성화였다. 각자에게 주고 싶은 여름 책 한 권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책 한 권, 무슨서점에서 구한 책가방 그리고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한 키링을 선물했다. 서원은 스페인 여행 갔을 때 사 온 무늬가 아름다운 냄비 받침을 선물해 주었다. 한참을 선물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젠 정말 독서모임을 해야 하겠는데?’ 싶어서야 말을 꺼냈다.
24회 차의 모임 책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였다. 궁금하던 책이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은 멤버도 있었고 제목과 사뭇 다른 느낌의 책 내용에 당황한 멤버도 있었다. 대체로 책의 중반, 보노보의 사례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동안 읽어온, 어떤 이론을 소개하고 제안하는 책들에서 느꼈듯 이런 종류의 책은 발상과 근거는 새롭고 흥미롭지만 결말은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발전 방향이나 해결 방안까지 연구자들이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안하는 이론과 그 근거가 매력적일수록 마지막까지 훌륭하길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자동화, 비대면, AI 등 인간적 유대감이 약해지는 이런 시대에도 다정함이 유효한 진화 전략이라 생각하는지 묻는 것이 첫 질문이었다.
서원의 여전히 유효하다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다정함이 유효한 전략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이것이 ‘연결성’이란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AI, 자동화,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인해 고립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크게 연결을 갈망한다.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일상을 구경하고(브이로그)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에게 바로 마음을 표현한다(버블). 이는 문명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연결되고 싶은 욕구는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 오히려 그 중요성이 대두된다.’라는 의견에 꽤 큰 공감을 하였다.
다음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하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내집단을 향한 다정함이 외집단을 향한 배척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다정함을 ‘선’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정함에도 한계선이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건강한 다정함은 어디까지일까?’였다. 다정함을 ‘선’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누군가를 배척하게 되는 다정함은 다정함으로 볼 수 없다’는 엄격한 잣대를 부여한다면 언제나 ‘선’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정함의 정도에 대해선 모두 ‘다정함에 한계선을 정해야 하는 게 안타깝지만 필요함은 분명하다’는 의견이었다. 그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다정함을 받는 상대의 태도와 관계에 집중했다. 내가 전달하는 다정함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고 서로를 잘 아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정함을 발휘하는 데 그렇게까지 피곤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다정함이 다정함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음에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대한 평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다정함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새롭고 의미 있었지만 후반부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짙었던 탓이다. 이 책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다면 더 좋았을까 가볍게 대화하기도 했다.
모든 부분에서 만족을 주기도 너무 어렵고 모두를 만족시키기도 참 어렵다. 그렇지만 내가 읽은 책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독서의 경험까지 아쉬워지는 것까진 아닌 듯하다. 책이 아쉬운 것과 독서가 아쉬운 것은 조금 다르다. 보통은 이 둘이 함께 가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그랬다. 책 자체에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무언가를 읽어낸다면 독서까지 아쉬워지진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책에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기에 이런 태도를 취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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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29회 차 모임을 앞두고 있다. 그사이 세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철학서를 함께 읽고 이야기했다. 그중 한 권은 압도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고 한 권은 몹시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북유럽 안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도 않고 모두 같은 의견으로 말이다. 우리 모임에선 아무래도 소설을 읽고 나누는 게 잘 맞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소설은 읽고 나서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읽는 재미와 더불어 무엇을 이야기할지 준비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항상 소설이 가장 즐겁고 뜻깊었다. 그래서 선정 도서의 비율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듯하다. 심지어 29회 차 모임 도서 역시 소설, 『싯다르타』이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한다. 소설을 위주로 계속 모임을 해도 괜찮을지 말이다. 꽤 큰 취향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기에 편하긴 하지만 그 편함이 주는 아쉬움이 있다. 새로움이 필요하다. 비록 그 새로움이 고난을 준다고 해도 말이다.
단 한 번의 고난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이나 있었다. 읽는 것 자체가 힘든 책도 있었고 수월하게 읽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는 책도 있었다. 대부분 ‘새로운 책을 읽어 보자!’ 혹은 ‘독서모임 아니면 못 읽을 책을 읽어 보자!’는 생각에서 고른 책들이 그랬다. 그런 책을 읽고 나눈 후에는 항상 재미와 감동이 어느 정도 보장된 소설을 골랐다. 자연스레 이전의 책과 비교과 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자꾸 망설여지는 듯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도 혹시 별로일까 봐, 시간 낭비가 될까 봐 주춤하게 된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려 할 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기왕이면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싶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문제 될 건 전혀 없는 사고의 흐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콘텐츠를 향유하는 내게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내 눈에 좋은 것만 계속 보면 당장은 즐겁겠지만 나의 취향과 사고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물론 좋은 것들 사이에서 더 좋은 것 수준의 발견은 있겠지만 그 정도가 한계이다. 이 책이 왜 좋은지 설명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읽기 싫은 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 독서를 포기하게 되면 그것만큼의 최악의 결과도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다양하게 읽어보려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비록 실패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읽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독서의 경험이 좋지 않았더라도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진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는 이런 책하고는 잘 안 맞는구나’하고 취향을 정리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 30회 차 모임 도서 선정을 맡은 내가 솔선수범을 보여볼까 한다. 어떤 책이 좋을까? 나는 나름 좋아하지만 다른 북유럽 멤버들은 잘 읽어오지 않았던 시집을 읽자고 해 볼까? 아니면 우리 모두 어렵게 느끼는 과학 도서를 해 볼까? 무엇이 되었든 잘 읽지 않았던 책을 다음 모임에서 읽어야겠다. 그리고 기왕이면 익숙지 않은 독서이지만 의미 있는 독서모임으로 이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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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얼마나 오래 북유럽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3년, 4년, 5년… 어쩌면 그 이상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3주년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햇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졌다. 함께한 추억이 있고 기록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기왕이면 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참여해 온 독서모임들 모두 그렇다. 학교에서의 모임도 지금은 사라진 장소에서의 모임도 현재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의 모임도 친구들과의 모임도 모두 내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법부터 함께 읽을 책을 고르는 방식을 배우고 다양한 종류의 독서모임을 찾고 스스로 독서모임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까지 어느 한 모임에서의 경험도 쓸모없지 않았다. 조금씩 배웠고 나아갔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해온 모임들이 서로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이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독서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읽지 못했을 책들, 알지 못했을 기쁨,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정착한 모임 들과 작별하게 될지, 또 어떤 새로운 독서모임에 나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시기에나 나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책이 계속해서 있다면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