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의 모임 그리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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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모임의 책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장편소설 『요리코를 위해』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책을 먼저 정하고 나서 대면 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던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음산한 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을 것이다.
독서모임을 하기 전, 여의도에서 모여 점심을 먹고 더현대에 방문하여 모임을 하며 먹을 빵을 샀다. 여의도 한강 공원에 갈까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이며 그늘이 없어 더울 거라는 예상으로 선유도에 가 독서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버스를 타고 가 선유도 안으로 들어가니 다행히도 예상대로였다. 그늘도 많고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책을 올려두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곧바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햇볕은 적당히 쏟아지고 바람은 솔솔 부는데 우리는 소설 속 음침한 사건사고와 끔찍한 살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치정과 살인에 대해. 언제부터 범인이라고 예상했는지나 누가 범인일 것이라 예상했는지 같은 추리소설에서 흔히 할 법한 질문부터 두 비인간적 행위 중에 어떤 것이 더 분노를 유발했는지 같은 질문 그리고 소설과 현실을 엮어 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각자 시트에 적어놓은 것을 보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공유했다. 의미 있는 날 기쁘게 읽기에는 조금 음울한 책이었다.
다행히도 그 분위기로 모임이 마무리되진 않았다. 함께 열 번이나 독서모임을 해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을 준비해 갔기 때문이다. 선물은 책갈피와 다음 모임으로 선정해 함께 읽을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은 너무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주었다.
독서모임과 선물 증정을 마치고 나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책 사진 외에도 우리가 만나서 독서모임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었었다. 바람이 꽤 불어 머리가 엉망으로 날렸지만 그마저도 만나서 하는 모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점이었다. 대면 모임을 하고 나니 이 친구들과 다음에도 만나서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는 힘들겠지만 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오래오래 북유럽으로 함께할 수 있어야 했고 이 모임을 만든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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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북유럽 친구들에게 선물할 책이자 함께 읽을 열한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에세이를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까지 북유럽에서 에세이를 읽고 모임을 한 적이 없었다. 기왕이면 잘 쓰인 에세이를 함께 읽고 싶었기에 읽어본 책 중에-거기다 독서모임까지 참여했던- 너무 좋았던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리가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랐다. 이 책에는 백수린 작가가 오래 함께한 반려견, 봉봉을 떠나보내기까지의 이야기가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해리에게도 오랫동안 키운 반려견 봉이가 있는데 언젠가 봉이가 강아지별로 돌아갔을 때,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겠지만 백수린 작가가 그랬듯 잘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떠남은 어쩔 수 없겠지만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이 책을 통해 마음에 새겼으면 했다.
한 달 후 우리는 다시 줌으로 모였다. 시작 전부터 세 사람은 해리를 놀려댔다. 분명 해리는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을 것이고 독서모임 중에도 눈물을 흘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하지만 해리는 절대 울지 않을 거라며 선언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알겠다고 넘어가 주었다. 그사이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는데, 공통 첫 질문인 ‘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별점과 그 이유’로 바꾼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평균 별점은 4.37점으로 아주 높은 평가였다. 긍정적 평가의 공통적인 이유는 일상적이고 따듯한 분위기가 전달해 주는 느낌 때문이었고 휴머니즘을 느끼게 해 주거나 좋았던 문장이 너무 많아서, 작가의 마음과 애정이 잘 묻어나서 등의 비슷하면서도 구체적인 선호의 이유도 있었다.
이어서 물은 두 질문도 작가의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어떤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지’와 ‘남들은 하찮게 볼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공간으로 서원은 시내에 나갈 때마다 호두과자를 사주셨던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하철역의 호두과자 가게를 골랐고 상아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인지 더 강렬히 각인된 비 오는 교실(강의실)을 꼽았다. 해리는 여전히 너무 좋아하는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20년 전 살았던 용호동의 본가를, 나는 지금도 너무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만난, 어릴 때 다닌 성당을 얘기했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물건으로 서원은 집 안을 향기로 채워주는 캔들을, 상아는 크기별로 여러 개 갖고 있는 담요와 20년 된 햄토리 인형을, 해리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뽑은 포토카드를, 나는 다녀온 영화제에서 구입한 배지들을 꼽았다. 공간에 대한 것처럼 결국 좋은 기억과 추억이 담긴 것들이었다. 결국 공간이든 물건이든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기억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이어서 상아의 질문과-자신이 받았던 위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해리의 질문-잠깐 마주한 사람이지만 생각나는 이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갔다. ‘슬픔은 각자가, 자신이 (홀로) 겪어내야만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위로란 무엇일지?’ 물었다.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는데, ‘나눌 수 있는 슬픔과 혼자 견뎌야 하는 슬픔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과 ‘홀로 감내해야 하는 슬픔이더라도 주변의 위로와 격려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이었다. 이상적 위로에 대한 기준 역시 비슷했는데 굳이 많은 말과 감정을 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책과 이번 모임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해리는 눈물을 쏟았다. 해리가 또 언제 눈물을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임 중에 너무나 많이 울어 버려서. 모임 내내 반려견 봉이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무리할 때에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의견을 적을 때 봉봉이와 관련된 얘기는 많이 안 적었다. 더 덤덤하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우리 봉이에 대입하여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참 쉽지가 않았다. 프리랜서인 작가와는 다르게 일을 하는 나는 우리 봉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그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을까… 같이 오래 옆에 있어주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참 미안한… 그런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데… 작가는 봉봉이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고 이 글에서 사랑을 느낀다면 그건 봉봉이 덕분이라고 하는데 나는 미안함보다 고마움이 더 많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정말 많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고마움과 사랑을 더 크게 생각하고 우리가 같이 보냈던 시간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껴야겠다고 조금은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 준 수근이한테 참 고맙다. 작가는 따뜻한 사람이고 그 마음과 감정을 글로 잘 표현한 것 같다. 삶이 힘들고 다 똑같다고 느껴질 때 다시 읽으면 좋을 책 같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이었다.
해리의 후기를 들으며 깊게 슬프기도 했지만 나의 바람대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더 깊이 새기려 해 다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독서모임에서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룬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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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장점이자 단점은 모두의 취향이 꽤 일치한다는 점이다.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비슷하니 아주 별로인 책이 선정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큰 논쟁을 하기보단 서로 공감하며 대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다양한 도서가 선정되지 않기도 하고 토론의 재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 것 치고는… 꽤 많이 호불호가 갈리고 토론에 열을 올리긴 했지만 말이다.
모임 일 주년인 12회 차부터 2주년인 24회 차까지의 별점 분포는 1.8점부터 4.3점까지 그 폭이 꽤 컸다. 한 작품 안에서 각자의 별점 차이가 큰 경우는 최저점이 2점, 최고점이 5점이었다. 읽은 책의 종류로는 에세이가 2권, 인문서가 3권 그리고 소설이 8권으로 가장 많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두 권을 역시 꼽아보자면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과 하은빈의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이다. 각각 평균 별점은 2.1점과 4.3점이다.
『개인적인 체험』은 내가 고른 책이었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내 별점이 가장 높다…. 이 책을 골랐던 것은 좋아하는 소설가가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추천했기도 하고 고전 문학을 한 번도 함께 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전이 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이라는 소리이므로 실패할 가능성이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무렵 북유럽 멤버들끼리의 밈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에게 혹평을 받은 책을 고른 사람에게 그 책으로 별명을 지어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개체 수근’이다….
이 소설이 불호였던 것은 주인공 ‘버드’가 별로인 사람을 넘어서 최악의 인간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이 이룬 문학적 성취나 전달해 주는 바가 있겠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문제적 인물 때문에 다른 것들이 묻혔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물론 가상의 인물인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싫은 걸 어쩌겠나.
별로라고 해서 모임을 대충 한 것은 아니다. 총 여섯 번의 질의응답을 했고 그중에는 지금 보아도 꽤 재밌는 것들이 있다. 먼저 ‘버드는 자신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하거나 공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각자가 생각하기에 온전히(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있다’는 답을 모두 내놓았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르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들 다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자신은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요소가 복잡히 얽힌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 겪는 일은 없지만 홀로 느낄 순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불호인 또 다른 이유는 결말에서 버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때문이었다. 행동의 변화에 어떤 조짐이나 이유도 보이지 않았기에 다들 이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버드는 왜 갑자기 (좋은 방향으로) 변했을지,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렇게 썼을지 추측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원은 오히려 이 부분이 버드의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상아는 겁이 나서, 해리는 잘 모르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나는 책에 실린 해설에 공감하여 정말 어떤 이유도 없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이유를 찾아보자면 평생 시달릴 죄책감, 불안에서 회피하기 위해서 변했지 않을까 싶은, 서원과 같은 결의 대답을 했다. 어쩌면 오에 겐자부로가 이렇게 급작스런 변화로 끝을 맺은 것이 개인적인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버드의 마음, 결심이야말로 정말 개인적인 것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책과 모임 후기에 대해 말할 때에도 여전히 불호가 가득했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았던 책이더라도 독서모임을 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그 평가가 나아졌는데 이 책은 여전했다. 나 홀로 ‘여러모로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다른 느낌이었는데(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게 독서모임에선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여러 느낌의 책을 읽는 건 좋으니까. 이해 가지 않는 인물에 대한 얘기를 읽는 게 쉽지 않지만 의미는 있지 않을까?’라고 애써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별로였던 책 얘기를 했으니 너무 좋았던 책 얘기도 해야겠다. 하은빈 작가의 『우는 나와 우는 우는』는 22회 차 모임에서, 역시 내가 제안해 읽은 책이다. 평균 4.3점을 받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솔직함이었다.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은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감동을 모두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문학적이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문장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삶, 육체, 장애, 질병은 평소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좋은 질문을 공유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바로 떠올린 질문도 있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질문도 있었다. 질문들의 목록을 보니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쪽이 더 좋은 질문 같다.
두 질문은 ‘장애는 흔히 극복해야 하는 것, 극복하면 좋은 것 등으로 여겨진다. 장애를 꼭 극복해야만 하는 것 혹은 극복해야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게 맞을까?’와 ‘장애를 가진 삶은 모순적인 장면을 많이 보고 느끼야 하며 당장은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언젠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또한 잘 혹은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인 삶이기도 하다. 사는 데, 생존하는 데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준다면 그것을 꼭 받아들여야 할까? 받아들인다 / 거부한다 외에 비장애인/장애인으로서 ‘잘’ 살기 위해 어떤 선택지가 추가된다면 혹은 무엇이 갖춰지면 좋을까?’였다. 북유럽 멤버들과 나누었던 답변을 공유하기보다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대답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정답은 없다. 그래서 더 답을 하기가 힘들겠지만 말이다.
이 모임을 할 때쯤에 우리는 마무리를 하며 다시 한번 별점을 공유했는데, 모임 이후에 책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는 4.3점에서 4.6점으로 변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 그저 나의 독서 인생 중 손꼽힐 정도로 좋은 에세이였다는 점만을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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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까지는 어찌어찌 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도 일 년은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년이나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이 꾸준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매달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북유럽 친구들 덕분이다. 혼자였다면 2년이나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이전까지는 독서모임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는 독서 쪽이라 생각했다. 책을 함께 읽는 모임에서 중요한 것은 읽는다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북유럽 모임을 하면서 독서모임의 어근은 ‘모임’이라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여러 사람과 함께한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