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독서모임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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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의 몇 번의 헤어짐을 겪고 나서 생각했다.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그런 모임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그렇게 독서모임을 함께할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을 만들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모임을 원해서가 그 첫 번째, 책 사는 것 외에는 추가적인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가 두 번째였다. 물론, 친구들과의 모임 역시 언젠가 중단될 수 있지만 최소한 그게 갑작스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 중단에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납득할 수 있는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중요했다. 적게는 일, 이만 원에서 비싼 모임은 몇십만 원까지, 외부에 참여하는 독서모임에는 참가비가 필요했다. 때로는 이 금액이 부담되기도 했기에 참가비 없이 함께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결국 부담 없이 오래 할 수 있는 모임이 내게는 필요했다.
마음을 먹은 후 독서모임의 멤버를 모집하기 위해 친구 목록을 둘러보았다. 책을 읽는 친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의외로 인원 모집은 한 번에 성공했다. 물론, 주변 사람 중에서 독서모임을 하자는 요청에 관심을 보일 법한 친구를 선정해 물어보긴 했지만 모두가 단번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 책을 종종 읽는 듯한 상아,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서원, 함께하면 즐거울 거 같은 해리까지. 대학 동기 네 사람이 모여 우리만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규칙을 먼저 정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두 명, 경남에 사는 사람이 두 명이었기에 우리는 줌으로 모임을 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 한 권을 읽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정했다. 책 선정은 매달 순서대로 돌아가며 하기로 했다. 책을 고른 인원이 함께 이야기할 질문 서너 개를, 그 외 멤버들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두 개를 준비해 공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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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로 해리가 골랐다. 아마 해리가 가지고 있던 책이라 골랐던 듯하다. 각자 『일인칭 단수』를 읽고 해리가 전달해 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와 만났다. 답변을 적어서 온 사람도 있었고 생각만 해온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먼저 책에 대한 각자의 호불호를 말했다. 그다음으론 해리가 준비해 온 질문, ‘하루키의 작가로서의 장점’과 ‘소설집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단편 혹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단편’ 그리고 ‘가장 좋았던 장면이나 문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외에 상아와 서원이 단편 <사육제(Carnaval)>와 <위드 더 비틀스>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질문의 양과 질이 지금의 것과 확실히 달랐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1회 차 독서모임을 마쳤다.
첫 번째 모임에서 있었던 아쉬움 점을 토대로 우리는 점점 더 독서모임의 규칙과 내용을 정교화해 나갔다.
먼저,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은 두 번째 모임부터는 책에 대한 호불호 대신 책 전체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을 먼저 이야기하기로 바꾸었다. 호불호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뭉툭했다고 느껴서였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미리 정리해 적어 오기로 했다. 질문들 역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집중력을 잃은 첫 순간’ 같은 질문도 있었고 286페이지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서구권보다 더 많이 일하는 한국에서는 집중력을 더 빨리 잃을까?’와 같은 질문도 있었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근대 여성 소설가 지하련의 단편소설들과 임솔아 작가의 신작을 함께 엮은 소설집 『제법 엄숙한 얼굴』을 읽었다. 이 회차부터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질문과 답변을 스프레드시트에 미리 적어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을 하고 나서 우리가 책에 대해 나눈 대화가 휘발되는 것이 안타까워 정한 규칙이었다. 우리는 질문과 답변을 미리 적었고 모임 전 각자의 생각을 미리 읽어보기도 했다.
『제법 엄숙한 얼굴』 독서모임을 하며 재밌었던 일은 모두가 이 소설집에서 동성애 코드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누구도 이 지점에 대한 질문을 적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화 도중 한 명이 이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가 자신도 그렇게 느낀 부분이 있다고 말을 보탰다. 신기한 것은 각자가 퀴어적 요소를 느낀 지점이 달랐다는 것인데, 서로 다른 단편에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기도 했고 같은 단편이지만 서로 다른 인물 관계에서 퀴어 관계를 느끼기도 했다. 한창 사랑에 관심 많은 때라 그랬는지 준비해 온 다른 질문들에서보다 『제법 엄숙한 얼굴』에 동성애 코드가 있는가? 에 대해 우리는 더욱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만약 이 책을 홀로 읽었다면 과연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어 볼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찝찝한 의아함만이 남지 않았을까. 또한 이 책을 읽고 대화한 사람이 나에게 편한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편한 사람들과의 거리낌 없는 대화, 그것이 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각인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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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추천을 받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다 결국 ‘북유럽(Book you love)’이라는 오래된 농담(?)에서 따온 모임 이름을 지었다. 재밌는 이름이지만 조금 진부하지 않은가 싶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북유럽’이라는 우리 모임의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다. 모두가 이 모임을 통해 책을 더더욱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애정을 키워가며 꾸준히 독서모임을 계속해나갔다. 10회 차 전까지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이끼숲』,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같은 소설을 읽었고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망설이는 사랑』, 『에이징 솔로』와 같은 인문•사회 서적을 읽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도서는 『이끼숲』과 『망설이는 사랑』이다.
『이끼숲』이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으로 두 시간을 넘길 정도로 할 얘기가 넘치는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끊임없이 새로운 얘깃거리가 나오는 책은 모임에서 처음이었다. 『이끼숲』에 대한 감상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책에 대한 전체적 감상은 크게 두 가지 부류였는데, 잘 만들어진 연작소설에 호감과 우울감 있는 세계와 따듯한 캐릭터의 대비에서 느껴지는 오묘함이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면, “천선란 작가는 구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또는 소설 속 인물이 무엇을 구했다고 생각하는가?”이다. 누군가는 코로나와 연관 지어 답변하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는 작중 내용과 인물에 근거해 대답하기도 했다. 우리의 답변은 ‘자신과 자신 혹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로 요약될 수 있어 보였다. 작중 인물들은 서로 맺은 관계를 통해 자신 혹은 타인을 구했고 이는 타인 혹은 자신 또한 구한 것이었다는 의미다.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대답이 나온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서로가 너무 다른데도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다음 질문은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편은?”이라는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흥미로웠다. 수근, 상아, 서원은 <바다눈>을 꼽았고 해리만 <우주늪>을 골랐다. 세 명이 <바다눈>을 고른 이유는 두 인물의 관계와 감정에 몰입해서였고 해리가 <우주늪>을 고른 이유는 한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에 몰입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이런 유의 질문에서 해리는 항상 대세와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독서모임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재미 요소다. 모두가 같은 의견을 내놓는 것보단 서로 다른 의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의 깊이도 깊게 해 준다. 서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근거를 덧붙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까지 짚게 되니 말이다.
『망설이는 사랑』은 제목만 보면 러블리한 감성 에세이 같아 보이지만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이라는 부제목을 보면 바로 그 느낌이 바뀐다. 이 책을 고른 것은 우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을 다룬 책이니 이야기할 것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이 화차부터 우리는 책에 대한 전체적 감상을 말하는 첫 질문을 별점 및 전반적 평가로 바꾸었다. 『망설이는 사랑』에 대한 전체적 평가는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이 확실히 나뉘었다. 신선한 주제를 가지고 단순 연구뿐 아니라 인터뷰까지 진행하여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장점과 연구를 기반으로 했기에 용어나 표현이 일상적이지 않아 어려웠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책의 내용에 따라 질문의 내용이 달라짐은 당연하지만 『망설이는 사랑』에서 유독 그런 경향을 느꼈다. 이전까지 진행했던 모임들에선 대체로 질문과 답변이 말하는 이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에 기반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차에서는 조금 더 사회적인 관점에서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졌다.
“작가는 책에서 꾸준히 캔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건이 있었던 아이돌에게 탈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이나 “저자와 인터뷰이들은 여성 아이돌(걸그룹)이 남성 아이돌(보이그룹)에 비해 더욱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인정하나 제시한 몇몇 예시는 맞지 않는다 느껴졌다. 책 내 사례에서도 여성이기에 논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이 있었다. 답변은 예상했던 대로 나오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를 벗어났다. ‘여성이었기에 논란이 된 경우가 대체로 많았고 이를 책의 사례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답변은 예상되었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나의 예상과 달리 ‘무조건적인 탈퇴 요구도 옳지 않지만 잘못의 종류에 따라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답변이 나와 의외였다.
모임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감상을 다시 나눴다. 읽어보니 생각한 것보다 심오하고 어렵긴 했지만 그럼에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의미가 있는 책이었단 내용이 대다수였다. 모임이 아니었으면 읽어 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평소 관심은 있지만 가볍게만 생각했던 ‘아이돌’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해 볼 수 있어 좋았다는 감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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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다. 세상엔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고 사람들에게 독서는 항상 후순위이니 말이다. 친구들이 흔쾌히 독서모임에 응해주긴 했지만 언제든 연애, 직장 혹은 그 외의 어떤 이유로도 중단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그리고 아홉 달까지 어떤 문제도 없이 즐겁게 독서모임을 했다.
우리는 슬슬 한 번 만나서 독서모임을 해 보자고 의논했다. 만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의미있게 열 번째 모임이 되는, 날씨도 좋을 6월에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24년 6월 1일, 햇볕이 따스한 날 선유도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대면 독서모임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