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무슨 책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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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성산동에는 수많은 서점이 있지만 내가 독서모임을 하기 위해 정착한 곳은 두 곳이다. 앞서 얘기했던 '책방밀물' 그리고 바로 '무슨서점'이다. 이 동네의 다른 공간들을 알게 된 경로가 책방밀물을 통해서이듯 무슨서점 역시 그랬다. 책방밀물과 무슨서점이 함께 진행한 북클럽 프로그램 '서랍에 여름을 넣어두었다’를 통해 무슨서점을 알게 된 것이다. 북클럽에 참여해 매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두고 『생의 이면』을 읽었다. 라이브 화면에는 익숙한 책방밀물의 지기님뿐만 아니라 무슨서점 지기님 역시 함께 보였다. 그렇게 여름 동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며 무슨서점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당연하게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무슨서점에 방문했고 역시나 반해버렸다. 햇빛이 잘 드는 2층에 위치한 무슨서점은 작지만 알차게 책들을 진열해두고 있었다. 에세이를 중심으로 큐레이션 하는데 처음 보는, 읽고 싶어지는 책이 꽤 많았다. 무슨 지기님은 '온라인에서만 봤는데 이렇게 서점까지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서점지기들의 다정함이란!
그렇게 종종 무슨서점을 들렀다. 주로 좋은 에세이를 사기 위함이었지만 시집을 사기도 인문 서적을 사기도 했다. 꽤 많은 독서 아이템과 웰메이드 굿즈들을 제작하기에 이를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한동안 책을 사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무슨서점을 방문했다. 무슨서점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해보고 싶었으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좀처럼 맞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이틀 시간이 흘러 육 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무슨서점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독서모임의 이름은 '만나서쓰는 한문단클럽'. 정해진 책 한 권을 읽고 만나 이야기하고 글도 써 보는 종합 독서모임이었다.
참여한 날의 선정 책은 메이 작가의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앓기, 읽기, 쓰기, 살기)』였다. 평소 관심사인 질병에 대한 책이었기에 신청하였다. 모임 날까지 책을 읽으며 메이 작가의 내공에 정말 놀랐다. 한 문장 한 문장에 꽤 깊은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질병에 대한 여러 도서를 읽어 보았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만나서쓰는 한문단클럽'은 모임지기 d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d님은 여러 공간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시는데, 그런 종류의 일이 가능함을 처음 알게 되었고 '언제가 나도'를 희망해 보게 되었다. 모임을 하며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의 출판사 복복서가에서 간식과 함께 독서 토론 가이드를 제공해 주었기에 이를 토대로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의 빈약함에 대한 언급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고통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불어, 나는 내가 가진 고통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수도 있겠다. 내가 가진 고통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발언해 본 것이.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를 제외하곤 누구와도 얘기해 본 적 없는 내밀한 고통을 말로 뱉어 보았다. 그리고 짧지만 그와 관련된 글을 진심을 다해 적고 낭독했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나의 고통에 대해 다시 말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내디딘 것은 분명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고백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어찌 보면 독서모임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인 것 같다. 책의 내용에서 파생되는 나의 내밀한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경험해 보았지만 내가 그 주체가 되긴 처음이었다. 다른 곳에선 말할 수 없지만 함께 읽은 책을 통해 비밀을, 기억과 추억 그리고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무슨서점은 나에게 있어 내밀한 기억을 말하고 듣고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장소이다. 따뜻한 공간과 더 따듯한 사람들이 있기에.
내밀한 고백의 경험 때문인지, 그 후로 무슨서점에 더 자주, 다양한 경로로 방문했다. 한유주 작가의 『계속 읽기』 출간을 기념한 북토크에 참여하기도 했고 책방밀물과 무슨서점의 삼 주년을 기념한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놀러 가기도 했다. 특히 삼 주년 기념행사는 동네 서점에서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기획이었다. 다섯 작가 사인회와 세 작가 북토크 그리고 여섯 편집자의 책상 사진 전시까지. 무엇보다 책방밀물이, 무슨서점이 그리고 두 서점이 함께해 온 활동을 전시한 기록은 그야말로 두 서점을 애정해 온 독자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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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주년 행사까지 무슨서점에서 진행하는 두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두 모임 모두 사 주간 진행되는 모임으로 하나는 시 읽기 모임, 다른 하나는 에세이 읽기 모임이었다. 두 모임 모두 무슨서점과 다른 단체가 협업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시 읽기 모임, '시에 더 가까이'는 서울청년센터 마포에서 지원을 받아 열린 것으로 신미나 시인이 진행하였다. 첫 모임은 신미나 시인의 『백장미의 창백』을 함께 읽으며 시 읽는 방법에 대해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첫 모임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에서 『백장미의 창백』을 읽고 필사했다.
모임 당일, 항상 그랬듯 가장 앞쪽 자리에 앉아-가장 넓은 좌석이므로-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독서모임, 그중에서도 다회차 모임에선 남성 참가자를 보기가 영 힘들긴 한데, 이번에도 홀로 남자여서 조금 더 어색했다. 하지만 모임이 시작되자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우리는 이름이 아닌 단어로 자신을 소개했고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시를 좋아해서, 시를 알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었고 신미나 시인을 좋아해서 참여한 분도 있었다.
『백장미의 창백』 속 시 몇 편을 읽고 신미나 시인의 설명을 들었다.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이란 시는 혼자 읽을 때도 너무 좋아 필사하고 음미했는데 시인의 설명까지 들으니 더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설명 이후 수록된 시를 한 편씩 낭독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음산하고 야성적인>이 가장 좋았지만 이미 함께 읽었으므로 다른 시를 골라야 했다. 좋았던 많은 시 중 마지막에 실린 <목단꽃이 지기 전에>를 낭독했다. 시를 읽기만 할 때와 필사하며 읽을 때가 그 느낌이 다르듯 낭독하며 읽는 것 역시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낭독의 경험도 물론 좋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윤독이었다. 11쪽짜리 장시인 <꼭두전>을 모두가 조금씩 나눠 읽어 보았다. <꼭두전>은 신미나 시인이 아버지의 임종 이후 적은 시로,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낭독하였을 때 참 많이 울었다고 말해주기도 했었다. 그 이후로는 낭독한 적이 없었는데 모임에 함께하는 서울청년센터 마포의 매니저님이 낭독할 시로 골라 모두가 함께 읽기로 했다. 길고 감정적으로 깊은 시이기에 혼자 읽을 때는 버거움에 잘 읽지 못하던 시였는데 모두와 함께 읽으니 끝까지 집중해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모임에선 좋아하는 시집을 가져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가장 좋아하는 시와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준비해 왔다.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낭독했다. 나는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낭독했다. 함께 준비해 간 음악은 영화 <문라이트>의 OST인 <End Credits Suite>였다. 이 시와 음악을 매치한 것은 둘 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서기도 하지만 그보단 겹쳐 보이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라는 시의 구절과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전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라고 말하는 영화의 대사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패치워크 하여 새로운 시를 만들어 보는 활동을 했다.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 수록된 좋았던 시 여럿을 모아 조합해 시 한 편을 만들었다.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감정이 섞여 있는 걸까
여름의 저녁은 수국빛으로 어두워지기에 마음이 단순해졌다.
여러 빛의 무늬들은 천천히
스며들어 와
내게로
이 봄 초록의 성분은 왜 나의 고난보다 희미한가
꽃들의 침묵이 속삭임으로 변하면서 내일이 왔다
침묵이 속삭임으로 변하면서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났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침묵의 소란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비밀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다는 걸 알게 해 준다
시를 단 한 편도 써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미 있는 시의 구절들을 활용해 글을 써보니 부담 없이 지어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런 패치 워크 시 짓기 없이 시 짓기를 했다면 잘 써야 한다는 부담과 못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커 무엇도 쓰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4회 차에선 핸드폰 갤러리 속 사진을 가지고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고른 사진은 눈 오늘 날 보라색 우산을 쓰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찍은 것으로, 사울 레이터의 가장 유명한 작품 <빨간 우산>이 연상되는 이미지였다. 눈이 오는 이른 아침, 엄마와 함께 카페 가는 길을 그린 시를 한 편 썼다. 눈이 오는 모습, 카페 가는 길, 눈이 쌓인 거리를 묘사했다. 이 사진을 고르고 시를 쓴 이유는 엄마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가는 길, 왔을 때와 달리 지름길로 가려는 엄마에게 왜 아까는 이쪽으로 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엄마는 답했다. "눈 쌓인 거, 너 보여주려고 그랬지." '시에 더 가까이'라는 독서모임 덕분에 잠시 잊었던 엄마의 살가운 마음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다음에 참여한 한 달짜리 독서모임은 '무슨 대화'로, '에세이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부제를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사 주 동안 한 출판사의 에세이 네 권을 편집자와 함께 읽는 모임이었다. 내가 참여한 한 달 동안에는 안온북스의 책을 서효인 편집자와 함께 읽었다. 매주 한 권의 에세이를 읽어야 했기에 약간의 부담감도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어 다행이었다.
첫 번째 주차의 도서는 정성은 작가의 대화 산문집 『궁금한 건 당신』이었다. 다른 인터뷰집과 다르게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었다. 재기 발랄함을 기본으로 하지만 때로는 큰 감동을 주기도 하는 책이었다. 서효인 편집자는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에세이란 장르에 대한 생각도 나눠주었다.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이기에 가장 내밀한 글 쓰기이기도 하지만 그 경험이란 것도 자신의 기억을 재조립하고 편집하여 쓰는 것이기에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두 번째 모임은 정대건 작가의 『나의 파란, 나폴리』라는 여행 에세이였다. 정대건 작가가 작기 지원 프로그램으로 나폴리에 간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지난 회차와 마찬가지로 책 제작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돌아가며 『나의 파란, 나폴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나누기도 했다. 두 번째 모임부터는 숙제가 있었는데, 에세이 써 오기였다. 2회 차에는 여행 에세이를 써 와야 했고 나는 그 당시 가장 최근에 갔던 독서 모임 친구들과의 대전 여행을 다녀온 것을 써 제출했다. 친구들과의 독서모임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먹고 먹고 또 먹기만 했다는 조금은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글이었다. 에세이를 공유한 후 서효인 편집자는 마지막에 그 주의 장원을 뽑아 안온북스의 굿즈로 제작된 스웨트셔츠를 선물했다. 그다음부터 '무슨 대화' 멤버 모두가 숙제에 아주 열심이 되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세 번째 모임은 전성진 작가의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로, 저자가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중년의 남성 룸메이트와 함께 살게 되며 있었던 웃픈 일화를 그린 에세이다. 처음 알게 된 작가였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특유의 유머와 묵직한 감동 덕분에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에세이 쓰기 숙제가 있었다. 주제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주제를 조금 비틀어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이 아닌 모두와 적당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 관계를 신문지 게임에 빗대어 적었다.
TV에서 연예인들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게임하는 것을 본 적 있다. 신문지 위에 올라가 버티면 되는 간단한 게임으로 매 턴마다 신문지를 반으로 접어 점점 더 살아남기 힘들어지는 방식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올라간 팀이 이기거나 최후의 두 명이 승자이거나 하는 식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좁은 신문지 위에서 마지막까지 버티기 위해 바들바들 떨며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내 과거와 겹쳐 보였다.
...(중략)
지금도 난 신문지 위에 친구들과 함께 올라가 있다. 신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질 테고 그 위에서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이다. 누군가는 그 밖으로 나가야 할 거고 신문지 안의 승자보다 신문지 밖의 탈락자가 많아지는 날도 머지않았다. 누군가가 떨어져야 할 때가 온다면 내가 먼저 나가야겠다. 그 밖에서 다른 탈락자를 기다릴 것이다. 밖에서 다시 만나 두 명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함께 지켜봐야지. 그리고 게임이 끝나면 신문지를 치우고 다 같이 또 다른 게임을 하러 가야지.
아쉽게도 장원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내가 쓴 글에 만족했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 다음을 노려보자고 다짐했다.
마지막 네 번째 모임은 최영건 작가의『사랑으로 돌아가기』였다.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이기도 한 작가의 에세이로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이었다. 기차를 타고 통학했던 시절부터, 집과 동네, 가족, 고양이와 강아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조금만 멀어도 힘든 통학길을 기차를 타고 다녔고 그 시간을 애정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부터 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글까지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집에 대한 좋은 에세이가 실려 있어서인지 마지막 숙제의 주제는 '나의 집'이었다. 나는 <좁고 넓은 집>이란 제목으로 서울 자취방에 대해 적었다.
나는 스스로 변화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서울에 처음 왔던 4년 전과 지금, 나에겐 별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해 왔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사실 나에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 안을 둘러보며 깨달았다.
서울에서 홀로 살기 시작한 2022년 6월, 집은 깨끗했고 텅 비어있었다. 집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집 주소도 외우지 못했다. 서울에서의 첫 자취에 걱정되고 외로웠지만 조금씩 집에 정을 붙이려 노력했다.
처음으로 집 안에 놓은 것은 토퍼와 이불, 탁상과 옷걸이 같은 것들이다. 집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부터 구비했다. 서울살이는 여전히 재미없었다.
자취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 책이 점점 많아져 바닥에 쌓여갔다. 큰 가구를 사기엔 방이 작으니 종이 책장 두 개를 구매했다. 멋들어진 서재를 마련하고 싶단 로망을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온라인 서점, 무신사, 배달의 민족 등 앱의 기본 주소가 모두 자취방으로 바뀌었다.
재택근무를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책상과 의자, 모니터를 샀다. 큰 창 앞에 놓아 바람을 쐬며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집이 조금 좁아졌지만 일하는 게 더 수월해졌다. 집에서 일할 때 더 이상 눈과 허리가 아프지 않아졌다.
집 안 곳곳에 얼룩이 생겼다. 색이 바랜 벽지와 모기를 잡은 자국들. 처음엔 집에 낀 때에 짜증이 났다. 깨끗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만 집 안에 삶의 흔적들은 계속 늘어갔다. 생활감이 쌓여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종이 책장이 꽉 찬 걸 넘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다. 결국 이케아에서 책장을 주문했다. 벽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가구에 책들을 옮겨 넣었다. 공간이 남으니 책을 맘 편히 사들였다. 어느새 책장에 공간이 부족해져 작은 트롤리를 주문했다. 그 책들을 읽으려 소파도 놓았다. 집 안이 내 취향의 물건들로 가득 찼다. 놀러 온 친구마다 집마저 지수근스럽다고 말한다.
이 글로 드디어 장원을 할 수 있었다. 장원의 이유는 서효인 편집자가 집과 내가 일치되는 글을 가대했는데 <좁고 넓은 집>이 그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소설에 편향되어 독서를 해왔는데 무슨 대화를 통해 한 달에 에세이를 네 권이나 읽을 수 있었고 세 명의 새로운 작가를 접할 수 있었다. 새로운, 그것도 좋은 작가를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정성전 작가의 경우, 모임이 끝나고 한 달 후 신간이 출간되어 바로 읽어 보았다. 『몸을 두고 왔나 봐』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크게 다친 이후의 회복기를 다룬 아주 내밀한 에세이였다. 『몸을 두고 왔나 봐』 북 토크가 무슨서점에서도 열려 참여했다. 무슨서점의 독서모임과 행사들이 항상 그랬듯 웃음과 고백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무슨 산책'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선 케어 브랜드 te와 함께한 모임이었다. 무슨서점의 단골들이 모여 각자 필사할 책을 소개한 뒤 경의선 숲길을 산책하며 거리의 낙엽을 주웠다. 낙엽을 가지고 서점에 돌아와 무슨지기님이 준비해 준 문구들과 함께 필꾸(필사 꾸미기)를 했다. 나는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서 좋아하는 문장들을 옮겨 적고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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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무슨서점에서 함께한 독서모임들에서는 읽고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쓰고 꾸미는 활동까지 다양하게 했다. 평소 써 본 적 없고, 써 볼 생각도 못했던 시를 써 보았으며 일종의 '시꾸'라고 할 수 있는 패치워크 시 만들기까지 해 보았다. 세 편의 에세이를 썼고 장원까지 해보았으며 필꾸라는 새로운 필사까지 해보았다. 무슨서점이 아니었다면 '시꾸'와 '필꾸'를 과연 할 일이 있었을까 싶어 너무 다행이다.
시꾸외 필꾸 역시 즐거운 성과이지만 무슨서점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경험은 단연 '고백'이다. 에세이 중심 서점이라서인지, 좋은 사람들이 무슨서점에 모여서인지-아니 그 모두이겠다- 자연스레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언젠가 '만나서쓰는 한문단클럽'에서 조심스레 꺼냈던 '나의 고통'을 바탕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 만약 그 글을 쓰고 공개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모두 무슨서점이 내게 보여주었던 다정함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