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바닷가에서 자란
열여덟 은숙은 여섯 남매 중 넷째였다.
의당 그러하듯 그 나이에 맞선을 보게 됐다.
훈식은 열 살이 많았고, 처음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가던 말끝에 생일이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이상하게 마음이 기울었다.
그때는 그런 게 컸다.
같다는 것, 겹친다는 것,
우연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
은숙은 그걸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은숙은 그렇게 강원도 탄광촌으로 갔다.
훈식은 광부였다.
누런 봉투에 월급을 담아 날짜를 어기지 않고 가져왔다.
그 봉투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날은 다들 마음이 느슨해졌고,
훈식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은숙은 그 공기를 좋아했다.
가정을 꾸려 산다는 게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봉투는 집에 오기 전에 다른 곳을 먼저 들렀다.
동네 어귀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화투판이 벌어져 있었다.
돈은 여전히 따박따박 나왔지만 방향이 달라졌다.
집으로 오던 길이 조금씩 비껴가기 시작했다.
은숙은 모르는 척했다.
모른 척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은숙이 알게된 어느날
훈식은 둘째를 낳으면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은숙은 그 말을 믿었고, 둘째를 가졌다.
음력 사월 초파일 새벽,
은숙은 절에 가서 빌었다.
훈식의 겉도는 걸음이 이쯤에서 멈추게 해달라고,
더는 흐트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괸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아랫배가 조용히 당겨왔다.
멈칫했다가 다시 걸었고,
산파를 부르고 큰아이를 맡긴 뒤 방에 누웠다.
훈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은숙은 조금 더 참았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초파일에 태어난 아이의 팔자가 세질까 시간을 넘겼다.
그 새벽 한 시를 넘겨 소녀를 낳았다.
그렇다.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