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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 Nov 25. 2022

김밥과 주먹밥

아들의 소풍

나는 손재주가 없다. 적당히 금손이 아닌 수준이 아니라 똥손도 이런 똥손이 없다 할 정도로 손재주가 없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때 내게 뜨개질을 가르쳐 주시던 엄마가 고개를 내 저으며 “때려쳐!”라고 하실 정도였을까. 대신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 사람들은 손재주가 퍽 좋은 편인데 그중 가장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바로 이여사님. 우리 엄마다. 지금도 종종 엄마는 내가 입을 겨울옷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땡큐!) 


그런데 어릴 적 엄마의 손재주 덕에 설레었던 날은 꼽자면 아무래도 소풍 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소풍 철이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는 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더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소한 참기름 내를 뽐내며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김밥이 나를 반겼다. 아버지는 “귀찮게 뭘 이렇게 많이 쌌어?”라고 툴툴거리셨지만, 내 소풍날마다 은근히 귓가에 입이 걸리셨던 것을 보면 아버지도 엄마의 김밥이 퍽 반가우셨음이 틀림없다. 하기야, 누가 김밥을 싫어할까? 얼핏 보면 단조로운 모양새나 그 안에 들어간 속만큼 채워진 엄마의 정성을, 어릴 땐 그것까지는 미처 몰랐으나 그 정성은 소풍의 기대감으로 부푼 만큼 고파진 배를 넉넉히 채워주었다.


 물론 소풍 도시락 메뉴로 김밥이 전부는 아니다. 샌드위치도 있고, 유부초밥도 있고, 그 외에 다양한 메뉴가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소풍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이 김밥인 것은 어쩌면 공식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김밥을 참 좋아한다. 문제는 먹는 것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여보야, 이것 좀 봐.”     


큰아이가 다섯 살 때였던가. 어린이집에서 내려온 한 통의 안내서에 나는 다급히 남편을 붙잡았다.      


“왜?” 

“태이 소풍간데.”

“좋겠네? 김밥 싸줘야지?”     

“근데…… 나 김밥 못 싸.”     

“뭐?”     


남편은 나의 폭탄 발언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사실 그렇다. 김밥 못 싸는 것이 죄는 아니었으나 당시의 나는 무려 일 년에 열 번 있는 시댁 제사를 맡아온 지도 벌써 삼 년이 된, 프로는 아니어도 준 프로급은 된다. 자부했던 주부 아니겠는가?(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도 준 프로급은 한참 못 되는 것 같다.) 동그랑땡 같은 손이 제법 가는 음식도 뚝딱거리며 만들어내는 사람이 김밥 한 줄을 못 싼다니. 남편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참기름과 적당량의 맛소금으로 양념을 하고 김에 살살 펴 발라 미리 준비한 재료를 잘 배열해 풀리지 않게 꾹꾹 눌러가며 김밥을 마는 테크닉이란 내 손에 허락된 재주의 범위를 한참을 벗어난 것을.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티비를 보며 한참 재잘거리며 놀던 아들들을 붙들고 물었다.      


“태이야, 서이야. 너희 금요일에 소풍간데. 혹시 도시락으로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소풍이 뭐야?”     

“우리 나가?”     


심란한 내 마음과 달리 그저 해맑은 아드님들의 눈망울이라니. 그럼 그렇지. 답답한 엄마 심정을 알아주기에 세 살 다섯 살 아들들은 너무 어렸다. 카봇을 보겠다는 아들내미들을 달래가며 겨우 정한 도시락 메뉴는 주먹밥과 샌드위치 손수 만든 치킨가스와 문어 소시지. 떨리는 마음으로 장을 본 다음 날, 내일 꼭 일찍 일어나야 해를 수만 번 머릿속으로 되뇌었던 덕일까. 다음날 나는 새벽 4시 알람이 울리기 직전 기적처럼 눈을 떴다. 미리 준비했던 재료로 하나하나 음식을 완성하고 있을 때 어느새 일어난 남편이 부스스 옆으로 다가와 거든다.   

“엄마, 이거 내 거야?”     


아침부터 엄마 아빠의 부산스러움에 잠에 서 깬 아들들이 눈을 반짝였다. 짜식들, 귀엽기는.     


“그럼, 이거 엄마 아빠가 열심히 준비한 거니까. 잘 먹고, 혹시라도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다녀와! 알았지?”     


서둘러 옷을 입히고 동그란 이마에 뽀뽀까지 쪽쪽 해주고 어린이집 차에 태워 등원을 시키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어깨가 뻐근하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다만, 어린이집을 다녀왔던 아들들이 상장처럼 내밀었던 빈 도시락통에서 느껴졌던 뿌듯함과, 여느 집 엄마들처럼 김밥을 싸주지 못했음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도 뭐 어떠랴. 그 햇살 같은 미소를 봤는데. 지금도 나는 김밥을 못 싼다. 하지만 더는 그때의 죄책감을 품지 않는다. 늘 엄마가 해주는 도시락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라는 아들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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